이번의 뉴욕여행 계획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때 우리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여행의 동기라는 것이 도무지 웃지 않고는 못배길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막내딸 미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16살이 내일모레라지만, 아직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아이의 모습인데, 그 아이의 친구 결혼식 때문에 가야한다니,
그를 어떻게 그리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나 한점 보탬이 없이 바로 미리의 친구 결혼식 참석차 뉴욕여행의 깃발을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뉴저지쪽에서 본 맨하턴 모습. 빌딩숲으로 들어가면, 인간들은 한마리 개미가 된다.
20살 캐네디언 아가씨와 21살 아메리칸 청년의 만화같은 결혼
미리의 친구 타마라는 현재 20살, 21살을 향해 가는 소녀같은 아가씨다. 그 아가씨와 미리의 만남은 근 4년간이나 된다. 미리의 인터넷 친구로, 스카이프로 대화를 하는 사이였다. 온타리오 촤담이라는 곳에 사는 그녀와 원거리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 미리 12살, 타마라 17살 때부터였다. 시간이 흘러 미리는 타마라의 결혼식 들러리, 그중에서도 결혼서약서에 증인으로 사인까지 하는 maid of honour로 신부를 시종일관 보조하고 돕는 그런 역할을 해야했다. 타마라의 남자친구인 마이클은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살고있어서 결혼식도 그곳에서 치러졌다.
만화를 좋아하는 그들의 만남이었다지만 타마라의 결혼이야기는 정말 만화같은 구석이 많다. 우선 타마라는 미국거주 조건을 얻기위해 캐나다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하면서 오랫동안 수속을 해야했다. 결혼식 날짜를 정할 때에 미리는 우리에게 친구 결혼식에 갈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미리가 올수 있도록 그쪽에서는 봄방학으로 결혼날짜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6개월후 먼후일의 일이기도 했지만, 미리가 간절히 원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했다. 게다가 타마라는 당뇨병 환자이고, 그녀의 집안에서는 아무도 결혼식 참석을 안한다는 사실도 놀라왔다. 마이클의 이모가 결혼 planner가 되어 주관하고 있었다. 우리쪽에서도 결혼식 참석이 너무 힘든 문제였지만, 타마라와 마이클은 그보다 더 큰 난관들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맨하턴 버스터미날(Port Authority)에 마중나온 마이클, 타마라 예비신랑신부와, 이들의 들러리가 될 송미리양.
처음에는 남편이 운전해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미리의 드레스가 미국에서 배달되어 와서 입어보니, 너무 적었다. 다시 보내고나니, 또다시 우편으로 보내기엔 시간이 각박하고, 완벽하게 고쳐서 입으려면, 미국에 일찍 당도해야 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남편은 가게일과 한의원일을 다 팽개치고 갈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오랫동안 머리싸움을 한 결과, 봄방학이 시작되는 첫날 루미, 미리와 내가 버스여행을 하는 것으로 낙착이 되었다. 아직 어린 미리를 혼자 미국에 보내는 것은 차마 할수 없는 일인 것 같아, 고려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맨하턴 다시 도전
최종적으로 여행계획이 잡힌 것은 루미와 나는 뉴욕 맨하턴 구경을 5일간 하고, 나머지 이틀은 결혼식이 열리는 롱아일랜드에서 묵으며 결혼식 참석하고, 미리는 타마라의 집에서 결혼 준비를 도우며 같이 있기로 했다. 우리가 뉴욕하면 맨하턴이 있는 뉴욕시를 떠올리지만, 뉴욕주에는 뉴욕시말고도 롱아일랜드 시등 많은 도시들이 있다. 이번 여행의 포커스는 뉴욕주 맨하턴과 맨하턴 동쪽으로 잇대어 있는 얇고 길게 뻗은 섬, 롱아일랜드 도시이다.
미리에겐 "너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참 문제가 많다"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못했다. 타마라의 부모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결혼식이라 타마라에게는 자신의 참석이 큰 위로가 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한번 약속한 일, 깨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딸의 친구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여행계획을 세우노라면, 선뜻선뜻 판을 깨고 싶은 "심술보"가 자라나곤 했다. 우정을 지켜나가는 데는 때때로 큰 비용이 든다.
타마라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미리를 만나러 작년 우리집을 방문했었다. 그들의 첫번째 오프라인 만남이었는데,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만남이어서 불안하기만 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떻겠느냐의 내 말에 미리는 오웬사운드라도 가서 영화도보고, 저녁도 먹고 해야한다며, 셋이서 나갔다가 차사고를 당했었다. 병원에서 전화와서 그들을 데려다 놓았던 일, 마이클은 뉴욕의 집으로 전화했는데, 그의 어머니의 혼비백산한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았었다. 셋다 무사했고, 오로지 차만 부서졌었는데, 그런 계기가 서로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기를 바랬던 건 나의 소망일뿐이었던 것 같다.
이리하여 루미와 내게 완전 백지의 맨하턴 입장권이 주어졌다. 그 백지에 채워넣기만 하면 된다. 지난 연말에 맨하턴을 방문했다가 "저주"를 퍼부었던 기억이 내겐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에서 가장 정신없는 곳에 대해서 오만정이 떨어져있을만도 한데, 맨하턴을 다시 방문해야만 한다니, 이 무슨 운명인지 모르겠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다. 우선 묵을 곳을 알아봐야 했고, 볼것과 탈것등에 대해서도 살폈다. 그리하여 얻은 대체적인 골격은..
5일간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집에 머문다. 민박집은 가격이 저렴하고, 일단 좋은 점은 집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살만하다. 맨하턴 내에 있는 민박집들은 자리도 많이 없고, 또 비싸기도 했다. 결국 뉴저지쪽의 맨하턴과 가까운 곳으로 민박집 예약을 했다.
나머지 이틀은 차를 빌리고, 롱아일랜드쪽 호텔에서 숙박하기로 한다. 호텔예약과 자동차 렌트 예약을 인터넷으로 마쳤다.
맨하턴 뮤지컬도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한장당 100달러를 줘야 구할 수 있어서, 직접 가서 표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뉴욕행과 돌아올때의 토론토행은 그레이 하운드 버스를 타기로 한다. 일주일 전 표값이라 그런지 그렇게 비싸지 않다. 일인당 100달러란다. 편도 50달러, 겨우 기름값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예매를 하는 데는 물론 인터넷 사이트의 도움과 크레딧 카드면 충분했다. 그리고 장소와 장소를 검색하는 데는 구글 맵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롱아일드 호텔에서 결혼식장까지의 거리와 걸리는 시간을 알아낼수도 있으며, 민박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렌트카 회사의 차를 빌릴 수도 있었다. 주소만 있으면 모든 것들의 인터넷 검색이 가능했다.
맨하턴에서 할일등은 블로그에 소개된 글등을 읽어가며, 방문목록에 한두개 포함시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보는 곳도 좋지만, 특별히 그곳에서 하고싶은 일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토요일날 새벽차를 타기 위하여 금요일 엄마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금요일부터 그 다음주 일요일 새벽까지 총9일간의 여행의 막이 오르려고 한다.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뉴저지와 뉴욕이 나뉜다. 사진 오른쪽은 우리가 민박했던 곳, 뉴저지쪽에서 본 풍경,
왼쪽 빌딩숲으로 매일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을 반복했었다.
토론토 시외 버스터미날에서 뉴욕 맨하턴 터미날까지는 근 12시간, 그 시간 동안 일어났던 버스풍경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그들..
버스풍경
남자 1.. 버팔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탄다. 아예 빈 좌석을 다 채우기 전에는 떠나지 않으려는 듯, 오랫동안 버스역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덕에 혼자 앉아가던 호사를 버려야했다. 벙거지 모자를 쓴 40대 남자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나는 복도쪽, 우리 애들과 나란히 앉았고, 그를 창쪽으로 들여보낸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여자 핸드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보기힘든, 파란색 둥근 씨디 플레이어를 손에 들고 있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다. 이어폰이 싸구려인지, 아니면 너무 큰 소리로 음악을 튼 것인지, 소리가 밖으로 삐집고 나온다. 그를 흘끔흘끔 뒤돌아보는 눈초리들이 이곳저곳서 그에게 꽂힌다. 그래도 그는 음악에 빠져 열심히 잠을 잔다. 음악 씨디는 한바퀴를 다 돌았는지, 이제는 "지익 찌이익" 소리만 내며 헛바퀴를 돌린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없이 정신없이 잠을 잔다. 버스 뒷편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시 돌아가던 키큰 젊은 흑인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친다. 그는 가만히 있다. 나는 조금 긴장한다. 그레이 하운드 버스 "엽기사건"이 왜 떠오르는지 모른다. 옆좌석의 남자 머리를 잘라서 들고내렸다던 그 중국인 남자의 이야기..
그는 정신없이 자다가 깨서 다시 씨디를 뒤집는다. 그러고는 작은 핸드백에서 향수같은 걸 꺼내서 몸에 치이익 뿌린다. 좋은 냄새가 난다. 그 냄새와 그가 어울리지 않는다. 조금 후에는 일회용 사진기를 꺼낸다. 사람마다 사진기를 갖고 있는 요즘이지만, 일회용 사진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는 가끔 차창너머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무얼 찍는지 모르겠다. 차가 정차했을때 옆에 서있는 다른 차를 찍는 것도 같다. 차창밖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담아내는 것 같진 않다. 그러더니 조금후에 "드득 드드득' 무언갈 긁는 소리를 낸다. 일별하니, 일회용 카메라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긁어내고 있다. 까만 몸통으로 만들려는가 보다. 어차피 한번 사용하고 버릴 건데, 왜 스티커는 열심히 떼어내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잠시 깨어있을때 다시 그 키큰 젊은 흑인이 온다. 그가 "음악소리가 너무 크니, 좀 줄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 음악소리가 큽니까" 하더니, 소리를 좀 줄인다. 이제는 귀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가 좀 줄었다.
여자 1.. 차를 타면서부터 전화를 들고있었는지, 차를 타고나서 전화를 어느 곳에 했는지 모르겠다. 내 앞에 옆에 앉은 그녀는 연신 누구와 대화를 한다. 캐나다에서 미국쪽으로 넘어오니, 내 전화기에는 1분에 2달러라고 찍힌다. 한 통화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그녀는 몇시간이 넘게 통화를 한다. 통화가 끝나더니, 잠에 빠져든다. 한참 후에 잠을 다 잤는지, 다시 전화에 손이 간다. 그녀의 한번의 통화는 거의 몇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나는 그녀보다 상대방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하루종일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스피커폰을 켜놓고 전화를 할까? 설마 직장은 아니겠지? 집에서 하루 쉬는 중인가 보다. 애인일거야.. 버팔로에서 뉴욕에 이르는 6시간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잠을 자든지, 전화를 하든지 둘중에 하나였다. 나중에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전화를 끊지 않고, 전화하면서 가방을 챙겨서 나갔다. 밖에서 보니, 전화하면서 가방을 끌고 사라진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중국계 미국인 그녀, 내 생전에 그렇게 전화를 오랫동안 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 무제한 전화프로그램을 쓰는가 보다, 나중에 아이들이 품평을 했다.
커플 1.. 키큰 흑인 남자(남자1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던)와 풍성한 흑인여자 한쌍이 내 옆의 앞에서 앞쪽에 앉았다. 두 사람이 똑바로 앉아가기에는 버스의 좌석이 나무랄데 없지만, 두 사람이 뒤엉켜있기에는 버스좌석은 너무 좁지 않나 싶다. 여자의 다리가 복도앞으로까지 쭉 나와있더니, 나중에 흑인남자의 엉덩이가 복도쪽으로 한참 나와있다. 그둘은 아주 심하게 엉켜있었는데, 다행인 점은 그들의 엉킨 실제 모습이 좌석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버스.. 국경에 도착하니 버스운전사가 방송을 한다. 차 트렁크에 실은 짐을 내려놓을테니, 차안에 있는 짐들과 함께 끌고가서 이민국에서 조사를 받으란다. 여권을 준비하라고.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갈때 꼭 거쳐야 하는 일이건만,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다. 짐까지 다시 다 검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콘베어 벨트에 다 올려놓고, 다른 이물질이 없나 체크한다. 40여명이 넘는 승객들과 짐을 다 검사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린다.
승객들은 원하면 차 뒤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인 여행사에서는 화장실은 절대로 쓰지 못하게 하고, 휴게실에 도착하면 모두 내려 볼일을 보게 했는데, 화장실 사용을 자유롭게 하니, 훨 마음이 편하다. 첫날 갈때는 냄새가 그다지 나는 지도 모르겠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갈때보다 더 오래 걸려선지, 목적지 도착 2-3시간전쯤부터는 냄새가 고약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뉴욕행 버스 이야기로 돌아가서, 국경에서 약간 지체되는 바람에 제시간에 도착할지 애매한데, 뉴욕 근방에서 차가 고장이 났다. 운전사는 "트렌스미션 문제인 것 같은데, 좀 기달려보라"는 방송을 했다. 버스가 고장나면 어떻게 되는가? 술렁거린다.
그때 남자1이 한번 나가보겠다고 말한다. 내가 창밖으로 보니, 웬 꼬챙이 같은 것을 가지고 버스 뒤로 왔다갔다 한다. 한참 뒤에 운전사가 쫓아나가고, 둘이 뭔가를 의논하면서 고치더니, 차에 시동이 들어온다. 남자1이 고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차에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비불량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더 이상은 내가 이해를 못하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받던 그 사람이 차를 고쳤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란다. 미리의 친구가 뉴욕 터미날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그가 고맙다. 우리뿐이겠는가? 설렁설렁한 운전사보다 그가 더욱 믿음직스럽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그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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