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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뉴욕3.. 맨하턴의 숨구멍들

 

보행자들, 신호위반은 다반사

 

신호등은 있지만 군중들이 하는대로, 적당히 무시하면서 걸어다니는 곳이 맨하턴 길들이다. 안전하다 싶으면 빨간 신호등에도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 한두사람이 움직이면 모두들 몰려서 길을 건넌다. 일방향 통행로라 한쪽길만 살피면, 교통에 큰 지장을 안주고 길을 건널수도 있다. 몇초를 못참아서, 신호를 무시하고 떼지어 움직이는 군중들 속에서 가끔씩은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며칠후 내가 운전사가 되고보니, 이건 참 너무하군 싶다. 생각이 0.1초 안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를 경험해보니, 역시 신호를 지키는 것이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 지켜져야 할 일이었다.

 

맨하턴 거주자들은 누구할 것 없이 1분1초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만큼 경제의 엔진이 쉼없이 돌아가고 있는셈이다. 여행자들도, 여행값을 빼내느라 제 시간들을 촘촘히 쓴다. 그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무섭고 신기하다. 만약에 어느 한군데서 질서를 깨뜨리면, 이 거대한 맨하턴이 심장마비에 걸릴 것같다. 신호도 요령껏 어기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면서, 그 둘사이에 줄타기한다. 맨하턴이 동맥경화에 걸리는 날은 수많은 인파들이 모이는 날들이다. 말하자면 각종 경축일등.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절정을 이룰 것이고, 이번 방문길엔 3월17일 세인트 패트릭 데이가 끼어있었다.

 

세인트 패트릭데이는 아일랜드인들의 최대축제일이다. 영국의 식민지지배를 400백년간이나 받은 아일랜드인들, 아직도 영국의 한 지방같은 느낌이 드는 그 아일랜드인들의 축제일인 것은 이해하지만, 맨하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맨하턴은 어두컴컴한 날씨, 일상적인 주중을 소화하기에 그런대로 적합한 그런 용량이다. 축제인파가 모이면 혈관 곳곳이 막히기 시작한다.

 

17일 아침, 맨하턴에서 롱아일랜드로 가기위해서 차를 빌렸다. 차를 빌리는 데도,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미 인터넷으로 이틀간 빌리기로 하고, 렌트회사를 걸어서 찾아갔더니 보험증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보험은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내 보험을 들어준 회사의 전화번호를 가게를 지키던 미키 아줌마에게 얻어서 직접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보험회사 직원인 킴의 높고 깔깔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나온다. 대충 사정을 설명하고, 보험증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킴이 렌트회사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보험서류를 팩스로 보내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틀간 보험료로 150달러를 날릴뻔한 사건이었다. 차 빌리는 값보다 더 비싼 보험료를 내면서 차를 타야했다면, "검소여행" 지향에 큰 오점을 남길뻔했다. 이럴때 시골마을에 살고 동네사람에게 차 보험을 들었던 것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이런 황당한 부탁을 서슴없이 해준 킴에게 여행후 만나서 고맙다고 다시 인사를 전했다.

 

어쨋든 그렇게 어렵게 빌린 차를 타고 맨하턴을 들어가기로 했다. 롱아일랜드로 가려면 맨하턴을 통과하지 않을수가 없고, 센트럴 팍(Central Park)에서 쉬었다가면 좋을 것이라 작정했기 때문이었다. 차를 빌려타고 민박집으로 가서 짐을 싣는데, 같은데서 민박하던 여학생 2명이 큰 가방을 끌고 집에서 나온다.

 

일행2명중 한명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라 하였다. 어디로 가느냐고 했더니, 맨하턴 포트 아쏠리티(버스터미날)로 간단다. 나는 그들에게 "태워줄 수도 있지만, 첫 운전이라 겁이 난다. 그냥 버스타는 게 낫겠지요?"하면서 그들을 보냈다. 이미 맨하턴의 복잡함을 알고있는지라 운전대를 잡는 손이 떨리고 있던 중이었다.

 

짐을 다 싣고 떠나려는데, 여학생 둘이 다시 돌아온다. "짐이 너무 커서 버스타기가 어려워서요, 좀 태워주세요" "어머나, 사고나면 제 책임아닙니다요"하면서 그들의 가방을 실었다. 여학생 둘은 "저희들 보험있어요"하면서 호호 웃는다. 민박집 부엌에서 만나 몇번의 대화를 나눴던 이쁜 그녀들에게 도움을 줄수 있어서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링컨 터널을 무사히 건너는 것인데, 링컨 터널로 들어가기 까지 한두어번 동네를 돌고, 간신히 터널에 도착해서 앞차에 대서 섰는데, 나중에 보니 그곳은 현금으로 통행세를 받지않는 표가 있는 정기통근자들의 대기선이었다. 우리차가 머뭇거리자, 뒤차들이 클락션을 올리고 난리다. 통행세가 8달러였는데, 저 멀리 경비복을 입은이가 아주 귀찮다는 듯이 그냥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그녀들을 버스터미날에 내려주고, 그날 센트럴 공원에 들렀다가 다시 롱아일랜드로 빠져나간 것은 거의 곡예에 가까운 신기를 발휘해야 했다. 마침 그날이 세인트 패트릭 데이 행사가 있는 날이라, 거리는 초록옷을 입은 사람들로 넘쳤고, 길은 막아놓아서 20분이면 빠져나갈 것을 뱅글뱅글 2시간 이상을 돌아다녔다. 운전자로서 보니, "웬수같은" 신호안지키는 보행자들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막아선 보행자에게 크략션을 올리며 우회전하기도 하고 차와 차 사이, 사람과 차 사이가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곡예운전사가 나의 모습일지는 정말 몰랐던 일이다. 나중에 검산해보니, 그 복잡한 맨하턴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모두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었다. 외투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차를 보고 보행자도 운전자도 서로 놀라지 않는 곳이 바로 맨하턴이었다.

 

복잡한 거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맨하턴이 그렇게 복잡하기만 하다면, 도대체 사람이 있을 곳인가 회의하는 사람들을 위한, "숨구멍"들이 곳곳에 있음을 말하려고 한다.

 

센트럴 공원

 

우선 센트럴 공원. 뉴욕가기전 맨하턴 생성기를 다룬 다큐를 봤는데, 맨하턴뿐 아니라, 센트럴 공원도 모든 것이 사람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런 기초지식이 없었다면 누가 그 방대한 공원을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이 만들었다고 생각했겠는가. 이 공원은 맨하턴의 59번가를 중심으로 109번가까지 이어졌으며, 좌우로는 5번 애비뉴로부터 8번 애비뉴까지 직사각형의 공원이다. 큰 호수가 3개, 작은 연못이 또 그 만큼 있고, 수십명이 올라가 놀수 있는 바위산이 곳곳에 포진해있으며, 언덕과 언덕들, 수백년은 되었을 것 같은 나무들이 흐드러진 이곳은 뉴요커들의 정신병 치료센터라고 누군가 말한바 있다. 바쁘고 꽉 짜여진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일광욕하고, 조깅하고, 점심시간에 만나서 데이트하고,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겨울엔 스케이트도 타고 온가족의 소풍지가 되는, 입장권없이 들어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뉴요커들의 놀이터인 것이다. 그 누구도 인공냄새를 맡을 수 없는 몇백년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같은 그런 센트럴 공원은 맨하턴의 자랑거리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센트럴공원을 마차로 도는 사람들.

 

 

연못에는 많은 오리들이 있고..

 

석양에 밖에서 찍은 센트럴공원과 빌딩

 

센트럴 공원에 들어서면, 예쁘게 장식한 마차들이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손님들을 기다리는 마부와 말들이 공원의 정취를 북돋는다. 공원을 돌다가, 어느 지점에 서니, 갑자기 훈훈한 느낌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하면서 주변을 보니, 다른 곳은 파란 새싹이었던 봄의 전령 크로커스가 이쪽에선 꽃을 피웠다. 양지바르고, 바람을 덜타는 지역인가 싶다. 겨우 언덕 하나를 넘었을뿐인데, 바람의 온도가 다른 걸 느낀 것과 동시에 그곳에선 이미 꽃을 피우고 있어서 짧은 감탄사를 발한다. 쌀쌀한데도 많은 이들이 있고, 플롯,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거리 곳곳에 있다. 풀과 잔디와 꽃과 나무가 어우져질 봄부터는 얼마나 더 생기가 돌지 이제 작게 들고일어나는 크로커스 보라꽃들을 보며 상상한다.

 

도심공원

 

센트럴 공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 곳곳에 파라솔이 있는 노천휴식터도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브리안트(Bryant)  공원이라고 이름지어졌던 분수대가 있는 그 공원도 기억에 난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사람들을 품듯 늘어서 있고 이제 새싹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그것들이 꽃을 피우면 볼만하겠다. 루미와 나는 점심을 싸가지고 밖에서 먹기도 했는데, 그럴때면 도심 공원이 우리에게 안락함을 주었다.

 

 

도심 곳곳에 있는 노천휴식터

 

 

36번가쯤에 있는 Bryant 공원.

 

 

첼시 마

 

 

도심공원뿐만 아니라 첼시마켓도 쉼터로 거론할만 하다. 첼시마켓은 한 뉴욕 블로거의 소개로 알게됐다. 8번 애비뉴와 15 스트릿 부근, 그러니까 다운타운에 속하는 지역인 Chelsea에 위치한 첼시마켓은 큰 건물 한채였다. 이 안에 들어가니 40여개의 점포들이 있고, 고풍스러운 내부 디자인이 돋보였다. 가게들도 범상치않았는데, 말하자면 대형 베이커리, 바다소금등을 파는 양념 전문점, 작가들의 카드,엽서작품이 많은 서점, 신선한 과일 야채 가게, 각종 레스토랑등이 밀집해있고, 복도는 고풍스런 전시회장같은 분위기다.

 

 

 

 벽돌로 만든 장식문.

 

 

 

 울퉁불퉁한 나무바닥에 수많은 니스칠을 한것같은 바닥, 실내지만 실외 풍경같기도 한 복도 양옆으로 점포들이 있다.

 

 

돌의자와 석조조각 작품들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더욱 반질거린다.

 

 

아마도 큰 공장이었는듯. 많은 구조물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ATM 현금 기계조차 이곳 환경에 어울리게 디자인되어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었다.

 

첼시마켓은 특별히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사진들이 벽마다 걸려있었는데, 주제는 넘어지는 사람들을 잡은 컷들이었다. 계단에서 미끄러질 것 같은 사람, 벼랑에 위험하게 서있는 사람, 넘어지는 찰라의 자전거를 탄 사람등등 묘한 스릴이 있는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그 의자들. 돌로 다듬어 만든 것 같은 무쇠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의자들이 예술품처럼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었다. 어떤 공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의 기계들을 제거하지 않고 보존해서 현대와 근대가 섞여있는 것같은 첼시마켓은 그 안에서 하루종일 있는다 해도 심심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데나 앉아서 책을 읽든지, 가져온 음식을 먹든지, 그렇게 자유롭게 열린 공간이었다. 첼시마켓이 준 또하나의 미덕은 모든 것에 "돈"을 요구하는 맨하턴 거리에서 마음놓고 쉴수있고, 한가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돈을 내고 해야했던 박물관과 전시회장 같은데서는 낸 만큼 얻어내지 못하면, 뭔가 섭섭한데, 이곳은 그 모든 것들을 상쇄시켜주었다. 그러고보면, 정말 나는 "돈"과 "가치"의 함수관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 돈"이 들어갔던 공연, 예술작품 관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