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지금 이시간, 나는 중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젊든지, 더 늙든지 중년으로부터 뛰쳐나가고 싶다. 왜냐하면, 이글을 쓰는 나자신과 영화에 경계를 긋기가 쉽지 않아서다. 누가 내 개인의 비밀한 마음을 묻는 것도 아닌데, 꼭 내 이야기를 걸쳐야 할 것 같다. 중년 아줌마의 마음속에 있는 아직도 남은 이성에 대한 흠모나, 사랑하고 싶고 받고싶은 그런 마음을 고백해야만 할 것 같다.
중년의 사랑은 커튼 저너머로 볼수 있는 희미한 자욱이다. 그 커튼 뒤의 경험을 겪든 안겪든 언제나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금지된 사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로라는 “불행히도” “사랑”에 빠져버린다. 두 아이의 엄마, 자상한 한 남편의 아내인 그녀가 우리들을 대신해서 사랑의 심연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왔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그 심연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자칫 지금까지의 인생이 헝클어지고 과거와는 전연 다른 삶으로 떨어질뻔 했다. 그 다른 삶은 두 집안의 파장으로 인한 가족들의 상처와 결국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행복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변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영화는 1945년 영국의 밀포드 기차역이 주무대가 된다. 흑백영화로 찍힌 밀회의 원 제목은 “Brief Encounter”로 “짧은 만남”으로도 번역될수 있을 것이다. 역의 시간은 5시 30분을 전후하고 있다. 그리고 두 남녀. 서로 다른 방향에 사는 두 남녀가 5분 간격으로 떠나는 기차를 타고 각자의 집에 간다. 서로 모르는 동안에는 꾸준히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로라는 매주 목요일 쇼핑도 하고 책도 빌리고 영화도 보러 밀포드에 나간다. 말하자면 밀포드는 읍내쯤 되는 것 같다. 그날도 가벼운 외출을 끝내고 기차를 타러 나갔다가 석탄먼지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의사인 알렉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렇게 잠시 마주쳤던 그들이 몇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 친하게 된다. 의사는 일주일에 한번 병원진료를 위해 밀포드에 오게 되고 그녀의 가차가 떠나기 5분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자신의 집에 가기 때문이다. 가차역은 그들의 아지트가 되는 셈이다.
함께 영화도 보고, 점심도 먹고…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대로 그들은 만남을 이어간다. 남편에게 지나가듯이 낯선남자와 식사를 했다고 말하고, 남편에게 집에 초대하자고 해보기도 한다. 그때까지는 남편도 큰일로 치부하지 않았고, 로라도 “지인”을 하나 만든셈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부인이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한점 의심이 없다.
결국 로라는 남편, 친구들에게 거짓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처음엔 수줍게, 죄책감을 갖고서 시작되지만 나중엔 타인의 시선까지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하면서, “사랑에 탐닉”한다.
어느날 알렉의 비어있는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낼뻔 했는데, 마침 친구가 일찍 돌아옴으로 로라는 “새양쥐”처럼 빠져나가야만 했다. 참담함을 안고서. 그녀는 그날 공원에서 늦도록 앉아있으면서 “정리”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로라를 만나 “20대의 청년으로 돌아간듯” 열정적이고 쾌활했던 알렉 의사는 사랑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결국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아프리카행을 결정한다.
로라는 읍내에서 정기적으로 책을 빌리고 약국에서 나는 이상한 향취를 좋아하며, 가끔 홀로 영화를 보는 매력적인 여인이다. 생일파티 행사로 말싸움하는 제 아이들의 훌륭한 심판관이 되기도 하는 현명한 엄마이면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남편을 가진 행복한 여자였다.
알렉은 예방의학에 관심있는 “이상주의적” 의사이다. 로라에게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때 로라는 그의 “빛나는 열정”에 반하고 만다. 탄광이 있는 밀포드에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이유는 진폐증같은 환자를 연구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들의 헤어짐은 예정대로 왔다.
“오늘밤 당신의 기분을 알아요. 우리가 추하다고 느끼겠죠. 우리에겐 각자의 가정이 있고 갈길도 서로 달라요. 죄책감이나 부정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치뤄야할 대가는 너무 크죠. 아무리 용기를 낸다 해도 이런 갑작스런 이별은 잔인해요.”
이래서 이들은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함께 갔던 다리에도 가보고, 음식점에서도 서로 할말이 없다. 마지막 대합실에서 최후의 몇분을 남겨놓았는데, 마침 그녀의 수다쟁이 여자친구가 나타나 합석을 한다. 수다쟁이에 의해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로라는 독백형식으로 남편에게 말한다. 그간 있었던 일을. 결코 그에게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이래선 안돼. 이 비극 속에 빠져있어선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자신을 추스려야 해.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 행복도 절망도. 인생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진 않아. 오늘 일을 신경쓰지 않을 때가 올거야. 편하게 미소지으며 정말 어리석었어, 라고 할때가.아니 그런 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언제까지나. 내가 죽는 그날까지.”
이것이 로라의 독백이다. 간신히 되찾은 현실과, 사랑에 빠져있고 싶어하는 그녀의 욕망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흑백으로 찍은 영화는 다른 철로를 타야만 하는 두 남녀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롱코트에 모자를 쓴 로라와 바바리코트에 신사모를 쓴 알렉은 런던의 향취를 그대로 전해준다. 그둘을 통해 사랑의 환희와 즐거움, 기다림, 고뇌뿐 아니라, 참담함, 비루함, 추함까지 모두 잘 담아냈다. 불륜을 그린 영화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Unfaithful”을 재미있게 봤다. 단한번의 일탈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는 과정..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일탈일뿐이었지만. 어쨋든 “금지”된 것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것을 여러 영화에서 현실에서 우리는 추적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특이하다면, 어렵게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 점이다.
만나는 것은 끝이지만, 사랑은 죽을때까지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그들의 현실은 서로를 알지 못했던 때와는 사뭇 달라지겠지만, 최악은 면했겠다.
아직은 순수함이 남아있던 20세기 중반 작품이라 그럴까? 그 활화산같던 사랑을 꺼뜨려 그들을 돌려놓은 작가의 의지가 소중하다. 이때 로라의 남편을 주목하게 된다.
그녀가 독백한다. “죽고싶었어요. 당신과 애들 때문에.” 그녀의 남편 프레드는 아내의 긴 독백 과정중 평소에 하던 대로 낱말맞추기를 하면서 그녀를 바라본다. 평소와 다른 아내의 태도를 보면서, 마치 그녀의 독백을 다 들은 사람처럼 “당신이 먼길로 간 것만 같았는데, 나에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들의 사랑은 또 다른 차원이었던 것이다. 눈빛과 행동만 봐도 서로를 알수 있는.
어쨋거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꿀 일이 아님을 이 영화를 통해서 또한번 깨닫는다. 그러게 청년의 때에 죽도록 사랑할일이다. 사랑해도 되는 자유로운 때가 인생에서 그리 긴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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