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하는 날
최인석 장편소설
문예중앙
소설의 주인공 장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보면서 이 소설을 살피기로 하자.
장우는 어려서부터 영특해, 젊은 나이에 어느 정도의 부를 이룩한다. "경매를 통하여 시가의 60퍼센트 선에서 구입했고, 세입자를 쫓아내는 데에 천만원 정도가 들었다. 팔면 이억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이다. " 본문에 나와있는 대로 이익이 되는 건물(아파트등)을 사놓았다가 되파는 수법으로 상당한 부를 일군다. 그의 곁에는 처남 두영이 있다. 장우의 어릴때 친구로 그의 오른팔이 되어 그의 일을 돕는다. 그러나 그의 인간성은 야비하고, 무자비하다. 장우의 건물 위층에 살면서 건물관리도 하는데, 그 건물에 사는 연숙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녀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그녀의 일상을 훔쳐보기도 한다.
장우의 아내 서영은 물질적으론 결핍함이 없지만, 아들이 자살로 숨진후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하는 절대 고독한 여인이다. 서영은 좋은 엄마되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승주가 얼마나 외로온 존재였는지, 그녀와 남편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자비하고 어리석은 부모였는지, 그들의 가정이 아이가 성장하기에 얼마나 부적절한 곳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남편과의 사이도 봉합될 수 없는 간격을 갖고 있으며, 친정 부모와 오빠는 남편 장우에게 수많은 빚을 지며 살고 있다.
장우가 만나 연애하게 되는 수진..과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기를 이룬다. 장우는 삶은 싸구려로 살지만, 빛나는 웃음을 지닌 수진이의 옛 고향 오빠로 수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관심은 그저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가진 여자를 향한 뭔가 파괴하고 싶은 충동일 수도 있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켜주고, 차를 사주는 등 아주 쉽게 공략해, 둘만의 밀회장소에서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그렇다 하여 사랑? 거울 속의 장우가 킬킬 웃었다. 그는 수진을 사랑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결혼한 후 어느 시점에 그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수진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지만, 장우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질이 뒷받침된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은 수진에게 장우의 씀씀이와 폭발적인 애정의 표현은 그녀를 꼼짝못하게 만든다. "지금 그녀에게 이 사랑보다 더 명백한 것은 없었다. 이처럼 생생하고 뜨거운 것은 없었다. 길지 않은 그녀의 생애 최초로 그녀는 삶을, 현실을, 그녀 자신을,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사랑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상곤... 수진의 남편이다. 냉장고 고치는 열악한 일을 하는 노동자. 어느날부터 아내 수진이 변화하게 되고, 자신이 범접할수 없는 "값비싼" 여인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회사는 파업으로 들어가고, 상돈은 아내의 벌이에만 의지해야 되는데, 아내가 팽창시켜놓는 부에 서서히 길들여져가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어느날, 아내의 잠자리 거부로 손찌검을 했다가 아내가 집을 나가버리게 된다. 그 아내 수진은 장우가 사준 아파트로 사라진다. 수진은 최후통첩하듯이 장우와 수진의 애정행각이 담긴 사진을 남편에게 보낸다. 밖에서는 농성에, 파업에, 안에서는 아내의 바람과, 집나감등으로 상곤은 지칠대로 지쳐간다.
두영이 스토커처럼 감시했던 연숙은 영화감독 대일과 사귄다. 백화점 화장품 판매원인 그녀는 남자친구 대일의 유식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다. 급기야 "호치민"에 대한 무식이 탄로나자, 연숙은 대일을 떠나간다. 연숙은 두영의 소개로 수진과 헤어진 장우의 새 여자친구가 된다.
장우의 정욕적인 생활을 책에서는 이렇게 묘사했다. "자동 세차장의 궤도에 올라선 차처럼, 그는 서서히, 또는 급히 미끄러져 어딘가로 흘러갔고, 그러면 자동 세차장 궤도의 비누처럼, 물처럼, 걸레처럼, 술과 여자와 섹스와.. 그런 것들이 무리없이, 적절한 비율로 잘 조정되어, 시차를 두고 그의 몸에 부드럽게 뜨겁게 급하게 천천히.. 휘감겼다가 사라져갔다."
수진은 그간 만났던 여자와 달랐다. 수진은 아내처럼 굴려고 했다. 집이 아닌 밀회의 장소를 집처럼 꾸밀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장우는 수진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또 그녀가 임신을 하고, 그런 다음에 그녀를 버렸다. 그건 그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간 만나왔던 여자들과 그 이상 나갔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끝내기로 한 것이다.
수진은 장우에게서 버림받은 후 아파트에서도 쫓겨난다. 장우의 오른팔이면서 문제가 될일을 처리해주는 두영이에게서 협박을 받고, 아무런 것도 건지지 않고 내빼게 된다. 나중에 그 소식을 전해들은 장우는 약간 다른 감정이었던 수진이었기에, 처음에 화를 냈지만 결국은 "이 싸발놈아 우린 왜 이렇게 야비하냐. 그러게 말이다. 이 야비한 놈아. 수고비도 안줄거냐, 이 야비한 놈아? 수고비는 통상대로 계산해줄 거다, 이 야비한 놈아."이런 대화로 서로를 묵인하게 된다.
수진은 버림받은후 집에도 가지 못하고, 거리의 여자처럼 떠돈다. 술을 마시고, 죽지 않을만큼 음식을 먹고. 식충이처럼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느날 결국 아이가 유산된다. 상곤은 피폐해진 수진을 보게 되고,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장우에게 가서 "우리가 그럭저럭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가끔 연립주택 옥상 올라가 천막 쳐놓고 삼겹살도 구워먹고, 나무 화분에다가 상추나 고추도 키워먹고, 그렇게 사는 꼴이 그다지 속상하더냐? 그것도 아깝더냐? 그것도 너 같은 놈들한테서 훔친 것 같더냐? 그것까지 뺏어가야겠어? .....(중략) 정말이다, 노예를 만들어. 우릴 노예로 만들어줘. 그러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살 수 있을 거 아니냐. 노예가 아닌데 노예처럼 살려니까 정말 힘든다."그를 의자에 붙들어매어놓고 피토하듯 연설한다. 그가 사랑해서 데려갔다면, 수진을 그정도로 망치진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는 것이다.
상곤은 농성에 합류한다. 사장 부부가 서로의 이름으로 회사를 분리해 노동자의 임금을 깎고 권리를 박탈하려는 시도에 대항하는 격렬한 농성을 지붕위에서 하기로 한다. 누구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그 농성에서 둘이 지붕에서 몸을 날린다. 상곤은 후배의 몸을 깔고 떨어져 구사회생한다.
수진은 지은 죄를 씻을길 없지만, 남자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들른다. 그리고 상곤 어머니(시어머니)의 냉대에서 불구하고 상곤이 그녀를 주저앉힌다. 그들은 큰 상처들을 안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갈 것 같다. 그리고 하나, 자신을 거리로 내몰려는 장우에 대한 배반감으로 그의 여자친구 연숙을 겁탈했던 두영은 연숙이 설치한 카메라에 잡혀 강간죄로 체포된다. 이 장면은 권선징악이 통해서 시원했다. 두영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음모로 몰려는 계산을 치밀하게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설치했던 카메라까지 들통나 여러가지 죄목으로 죄값을 치루게 된다.
나름 긴 길을 걸어온 소설은 수진의 딸 주미양의 플래시몹을 마지막 광경으로 막을 내린다. 그 자리에는 장우와 서영부부, 그리고 플래시 몹을 담으려는 영화감독 대일이 곁에 있다. 대중과 멀어졌던 대일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대한문 앞 광장에서 같은 시간에 모두들 같은 동작의 춤을 춘다. 길가던 사람들이 멈추고 그 춤을 구경한다. 주미의 취미이다. 남들이 신기한 눈으로 보는 모습과, 행사 시작전과 끝난후 대중속으로 스며들어가 없어지는 것등, 나름대로 쾌감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다. 이렇게 광장에서 서로 만나고 또 헤어진다.
소설은 나름대로 정리가 된 듯하다. 긴 길을 걸었던 그들이 각자 자신이 서야할 길에 있는 듯 보인다. 상처 투성이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앞으로 잘 나갈 것만 같다.
최인석 "연애.. 하는 날"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만나지 않아야 할 두 세계의 인간들의 만남을 통하여, 사회구조를 철저히 해부했다. 서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사랑"이란 말로 포장되어 진 것이라는 걸 소설은 말해준다. 소설의 주인공 장우에게서 그래도 선한 것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기대가 어긋났고, 수진은 자신이 다 망가질때까지 자신의 감정을 사랑으로 믿고 있었다는 슬픈 현실도 목격한다.
영화감독 대일과 연숙도 조화가 되지 않는다. 물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란한 언어를 사용하는 대일의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연숙은 역시 사랑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없는자 있는자가 그랬던 것처럼 유식한자 무식한자도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누기에는 부적합해 보인다. 그러니 제대로된 사랑이 어디에서 자랄수 있나 회의가 인다.
어쩌면 주인공이 진짜 주목한 사람은 상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의 초반에는 힘이 없고, 부인하나 지키내지 못하는 "찌질이"로 그렸을지라도,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농성장의 주요인물로 늦게서 합류하게 됐고, 자신의 목숨을 던질 만큼 순수한 정의를 보여준다. 그는 아내를 용서하고, 그 아내의 순진함을 이용한 장우에게 심판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용서받을 의지가 없는 아내에게 용서의 손을 내미는 것도 상곤이다. 상곤이 있기에 이 소설이 절망으로 가라앉지 않고, 희망의 끄트머리를 잡아챌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한국사회가 암울하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을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 회사는 농성을 하면 그런 비정규직들을 채용하고, 불법체류자들도 싼 임금으로 부려먹는다. 상곤은 정규직인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착취를 묵인한 면은 사용자와 어떤 면에서 공범이라는 생각을 같게 된다. 물론 사용자들은 기발한 방법들로 고용자들을 부리고 임금을 삭감하고, 파업을 봉쇄한다. 지붕위에서 죽거나 말거나 그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연애 소설이라는 뉘앙스를 주는 소설 제목만으론 점칠 수 없는 무겁고 애타는 주제들이 소설에 포진해있다. 이 책을 사게 된 이유중 하나가 이창동 감독의 추천서 때문이었는데, 그는 "이 소설은 오늘 우리 일상의 세목들을 CCTV 카메라처럼 적나라하고도 정밀하게 재현하면서, 이 세계의 난폭함과 부도덕이 어떻게 우리 내면의 병든 욕망으로 새겨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두영이 아파트에 몇곳에 설치한 몰래카메라처럼 우리의 현실이 곳곳에서 촬영당하고 있는 것처럼 찍혀있다. 돈이 없으면 비굴함으로, 돈이 있으면 욕망으로, 그리고 유식하면 대중과의 소외로, 무식하면 몸을 이용해 이익을 채가려는 발버둥으로.. 장면과 장면을 아우르며 인간사회를 정밀묘사해 놓았다.
순진하고, 사랑을 추구했다가 모든 것을 잃었던 수진이란 여인에게서.. 물질과 욕망을 "사랑"으로 잘못 받아들였던 그 여인에게서 우리는 연애와 사랑이란 기호가 내포한 수많은 독소를 재빨리 갈파해내야 할 것이다. 환한 웃음을 잃어버린 그녀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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