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리나(1957년 촬영)
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오드리 헵번, 험프리 보가트, 윌리엄 혼든
세계명화 4번째 작품으로 사브리나를 골랐다. 아무리 명작이라해도, 보지 않으면 어찌 알랴.
죄와 벌, 밀회, 대지 다음으로 보게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막내와 함께 골랐다. 98편중에서 우리 둘의 마음에 든 것은 분홍신과 사브리나.. 막내는 인터넷으로 검색하겠다 하였다. 사브리나는 오드리 헵번이 주인공이다. 로맨틱 코메디로 영화가 분류되어 있다. 나는 로맨틱에다가 코메디라니, 당장 그걸 보자 하였다.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를 처음 대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리뷰까지 읽고 그 영화를 보기를 작정한다.
첫 장면이, 친절한 해설로 시작한다. 미국 롱아일랜드 북쪽에 아름다운 거대한 저택이 소개된다. 막내의 친구가 사는 동네, 우리는 올 봄 그 롱 아일랜드에 갔다와서, 갑가기 영화가 더욱 친근해진다. 롱아일랜드에 갔을때 그런 저택중에 하나를 방문하고 싶었었다. 미국 옛 부자들이 살던 그 저택들은 현재, 관광객들에게 이모저모로 공개되고 있었다. 값비싼 숙박시설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기념관 등으로 관광객을 끌고 있었다.
사브리나가 살았던 그 저택은 옛 부자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보게 해주었다. 심지어 나무병을 고치는 의사까지 있는, 수많은 하인들과 주인들을 돌봐주는 집사들과 차고를 관리하는 운전사까지.. 사브리나는 8대의 차를 관리하던 운전기사의 딸이다. 라러비 가문으로 불리던 그 집안에는 두 아들이 있는데, 큰형 라이너스는 집안을 지키고 키우는 사업가로, 동생 데이비드는 염문이 끊이지 않는 플레이보이로 등장한다.
라러비 집안에서는 시시때때로 파티가 열리는데, 사브리나는 그 파티를 동경해 항상 훔쳐보곤 한다. 그녀는 또한 라러비 가문의 둘째아들 데이비드를 짝사랑한다. 그날밤도 파티를 훔쳐보는데, 데이비드는 한 여인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는 한참을 춤을 추다가 그녀를 실내 테니스코트장으로 데리고 가서, 와인을 나누며 사랑을 속삭인다. 데이비드가 테니스코트장으로 가면서 사브리나와 부딪치지만, 데이비드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그녀는 삐쩍마른 촌스런 운전기사의 딸일 뿐이다.
다음날이면 파리에 가야할 것을 사브리나의 아버지 미스터 페이차일드씨를 통해 알게된다. 그의 딸은 파리 요리학교에 등록되어 있다. 사브리나는 사랑을 놓고 떠나야 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와한다. 그녀는 그날밤 유서를 써서 아버지 침실에 들여밀어놓고, 차고로 간다. 아버지가 관리하던 8대의 차를 시동을 켜고, 그 개스에 중독되어 죽을 심산이다.
이제 성인이 바듯 됐을 사브리나가 질식할 무렵, 라러비가의 큰 아들 라이너스가 그녀를 발견하여 살린다. 사브리나는 사랑의 홍역을 겪고 파리로 건너간다.
요리에 취미없던 그녀는 건성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유력인사인 할아버지.. 그녀는 그에게서 세상, 사랑, 요리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운다. 영화에서는 제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드러난다. 2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그녀가 돌아온다. 그녀는 편지의 마지막에 아버지께서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실지 모르겠어요. 가장 세련된 여자를 찾으세요, 이렇게 말한다.
롱아일랜드에 돌아온 사브리나는 더이상 촌스런 여자가 아니다.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애벌레에서 나비로, 부엌데기에서 공주가 된 신데렐라 아가씨처럼 완벽한 탈바꿈을 했다. 버스정거장에서 사브리나를 본 데이비드는 단번에 그녀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주는데, 그녀의 집이 자신의 집인게다.
데이비드는 사브리나를 파티에 초대한다. 그녀의 파티 출현은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숨을 쉴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그의 연애 공식에 따라 데이비드는 그녀와의 사적인 만남을 위해 테니스장으로 가있으라 한다. 바로 그때 그의 형은 동생을 잡아둘 계략을 세운다. 왜냐하면 집안의 사업을 위해 그가 결혼해야만 하는 여자가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라이너스는 동생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시간을 지체시킨다. 그러다가 와인잔을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를 의자에 앉히고, 그로 인해 유리 파편이 엉덩이에 들어가 데이비드는 사브리나하고의 테니스장 만남을 지킬수 없게 된다.
형은 동생 대신 사브리나를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와 떼어놓고자 하는 심산에서 시작된 만남이다.
약간의 음모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영화는 이런 일들을 참으로 매끄럽게 처리했다. 형 라이너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는 사브리나에게 최대한 정중한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사브리나는 데이비드를 사랑하지만, 라이너스와의 만남도 진심을 다한다. 라이너스와 정이 들려고 하는 순간, 사브리나는 그와의 만남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사랑이 움직이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나 보다.
시대는 1950년대. 하인과 주인의 관계가 엄연히 있었다. 사브리나의 아버지는 딸의 사랑이 상처를 입을까봐 걱정한다. 그의 주인인 라이너스와 대화를 한다. 그는 평생 인생이 리무진의 좌석과 같다고 생각해왔다. 뒷자리와 앞자리가 있으며, 뒷자리와 앞자리 사이에는 창문이 있다는 것을. 그의 주인은 뒷좌석에 앉아야만 하고 운전사와 그의 딸은 앞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이너스는 그에게 자신의 계획를 설명한다. 사브리나를 다시 파리로 보내는 작전이다. 그녀가 파리에서 잘살수 있도록 모든 뒷받침을 한다는 생각이다. 암묵적인 사브리나 아버지의 동의를 얻는다.
사브리나는 나중에 그의 계획을 알게 된다.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라이너스는 "동생이 결혼해야 할 상대가 있다. 플라스틱 사업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고 말한다. 사브리나는 "인생을 꽤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며 파리행 티켓을 달라고 한다. 사브리나는 그들로부터 헤어질 것을 결심한다.
한편, 엉덩이가 치료되고 사브리나를 만난 데이비드는 그녀의 사랑이 형에게로 간 것을 감지한다.
마지막 장면은 형은 아우에게, 아우는 형에게 새벽이슬이 맞도록 볏짚을 옮겼던 초등학교때 읽었던 우화가 생각난다. 형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플라스틱 사업을 포기하려 한다. 플라스틱 사업을 위해선 사탕수수 재벌가의 여성과 동생이 결혼해야만 했던 것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여 사업을 키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동생에게 파리로 떠나라며, 티켓을 주었다. 합병을 포기하려는 순간, 동생 데이비드가 나타난다. 그는 약혼자(사탕수수 재벌의 딸)와 결혼하겠다며, 합병계약서에 사인한다. 그러면서 형에게 말한다. 형, 사브리나가 기달려. 빨리 가봐.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그 항구를 향하여 라이너스가 열심히 뛴다.
사브리나는 홀로 배에 타고 있다. 철이 없었던 자신의 사랑을 짚어보는 참이었을까? 그때 라이너스가 나타난다. 파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우산을 들고. 사브리나는 그에게 말해왔었다. 파리에서는 비를 흠뻑맞아야 한다고. 파리의 멋을 알고, 새로운 자신을 찾으려면 그렇게 해야한다고. 라이너스는 우산을 지나가는 사람의 뒷주머니에 걸쳐버린다. 사업가에서 사랑을 잡은 로맨티스트가 되려는 참이다.
정말 그 옛날부터 사랑받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재벌가 남성과 서민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2년 동안의 공부와 파리에서 배운 낭만적인 분위기, 그리고 세련된 외모가 사랑했던 사람의 시선을 끌게 했다. 사업과 결혼했던 것같은 라이너스의 마음까지 잡을 수 있었던 그녀의 기품..도 돋보였다.
20세기인데.. 영화에는 이 말이 많이 나온다. 신분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할때이다. 하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사브리나가 보여줬다. 21세기인 최근의 많은 드라마에서도 이런 소재가 자주 이용된다. 재벌을 만나본 적 없는 내게는 참으로 비현실적인 소재이지만, "돈"과 "사랑" 사이에서 둘 관계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사실, 이 영화의 절반 이상의 공로는 사브리나로 분한 오드리 헵번에게 있다. 그녀가 파리에서 고향으로 돌아온날, 하얀 모자에 까만 정장, 그리고 아름다운 강아지 한 마리.. 그야말로 눈부신 장면이었다. 그것뿐인가? 그녀의 걸음걸이, 말소리, 입은 옷, 그 모든 것들이 사그락사그락 빛이 난다. 그녀에게서는 "돈"이 있고 없고가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 누구라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그 "파워"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뿐만은 아니다. 라러비 가문은 절대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와 데이비드와 떼어놓기 위한 작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이 치졸하지 않다. 강한 플라스틱을 만들어 세상에 보급하려는 라이너스의 열정이 읽혀진다. 그는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돈"만을 위해서도 아니고 "권력"을 위해서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사업을 한다고 대답한다. 긍정적인 모습의 사업가상이라고 해야할까?
로맨틱 코메디라는 이 영화의 분류가 딱 어울린다. 사브리나도 그렇고, 라이너스도 그렇고 세상에 있을법하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또한 꿈꿔보고 싶은 인간형들이다. 세상에 한명쯤 있을 오드리 헵번의 미모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고, 라이너스의 리더쉽과 사랑을 위한 행진도 그렇다. 영화는 웃음의 소재들도 많이 마련하고 있다. 와인 글라스에 엉덩이 다친것, 그 다친 엉덩이를 위해 플라스틱으로 중간에 구멍뚫어 만든 해먹(기둥에 매달아 놓은 침대), 그 해먹에 누워있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데이비드...
아카데미 드레스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만하다. 오드리 헵번이 신었던 굽낮은 신발은 현재도 "사브리나 슈즈"로 발레리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60여년도 전에 촬영된 영화가 오히려 현재보다 더욱 품위가 있다. 옷뿐이 아니고, 갈등을 풀어나가는 대화법도 훨 고귀하다. 같은 소재로 다뤄지는 최근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돈많은 이들"이 대단히 손해보는 것 같은 그런 시끌벅적한 대응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지나간 영화를 보면서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을 잡아놓은 필름의 위대성을 다시한번 느낀다. 이럴때 이런 의문은 든다. "누구나 사랑할만한 여자"는 과연 어떤 운명을 지니고 살아갈까? 그걸 감당하는 일은 보통의 마음가짐이어선 안될 것인데.. 이러면서 평범함에서 위안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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