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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행복한 "작은 키"의 기적.. 김영희씨

그녀와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만나기전에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 같다.

이런 정보가 다음 만남에서 속도를 높일 수 있을까? 그녀는 조금 억울하다. 상대방을 알지 못하는 채로 자신이 너무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하, 이런 사람들을 "스타"라고 하나?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 시작한다. 김영희씨는 아주 작은 별이 되었고, 조만간에 더 큰 별이 될 것 같다.


스타를 만난 날은 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줌마들의 파티장소였다. 장사하는 아줌마들이 주로 오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어떻게 왔을까? 초대를 받았을까? 아니면 표를 구입해서 왔을까, 지금 드는 궁금증이다. 편의점 소속 아줌마들이 1년에 한번 만나, 대접받고 끼를 발산하는 날, 실업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여성의 밤"의 깜깜한 조명 아래서였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 빈좌석이 있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앉게된 경위는 모르겠다. 대부분 지역별로 모여앉는데 말이다. 그녀는 내 테이블에 앉았던 옆 마을 언니와 아는 사이였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내게 둘의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보내달라고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그런 사실조차 잊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녀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한 첫 장면은 초청 밴드의 연주 아래 춤을 추는 자리에서였다. 그녀는 무대 밑에 모여든 사람중에서도 춤추는 모습이 가장 신명이 났다. 고개를 까닭이면서, 리듬에 따라 흔드는 모습이 당장에 시선을 잡았다. 춤을 추는 것도, 춤을 바라보는 것도 관심밖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녀의 몸사위에서 눈을 뗄수 없었다. 그녀는 음악이 바뀌자,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와 몇몇의 아줌마들은 그녀를 가운데 넣어놓고 그녀를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흥이라도 따라잡으려는 노력이었을까, 춤추는 것이 신이 났다. 몇번을 그녀와 춤을 췄는데, 얼마후에 그녀는 다른 팀에 의해 납치되어, 우리 팀을 버렸다. 우리는 대장을 잃은 졸병들이 되어, 오랜만에 올랐던 흥을 잃고 뿔뿔이 헤어졌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춤을 잘춘다"고 감탄의 인삿말을 하였다. 그녀는 "춤을 배우고 있다"며, "스승님이 저기 계시네.."하며 손으로 한명을 가르켰다. 그녀도 수준급이었다. 춤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면서, 내게 손가락으로 스텝을 가르쳐준다. 나는 금새 잊어버렸다.


그녀는 춤뿐이 아니라, 생긴 모습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었다. 쌈빡한 짧은 머리, 조명에 잘받는 딱 맞는 옷을 입은 것과 반짝반짝하는 눈빛등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날 나는 초면인 그녀 때문에 그 시간을 꽤 즐기게 되었었다.


나중에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언니에게 들으니, 그녀는 회계사이며, 자신들의 인컴보고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대개 그 정도의 소개를 듣고 인사를 더 깊게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녀가 가끔 생각났다. 블로그에 여성의 밤에 대한 글에서도 그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인간적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랬는데, 어느날 평소처럼 인터넷을 글따라 다니다가, 그녀의 기사를 보게 됐다. 그녀의 이름 하나 알고 있었는데, 가끔은 민첩한 내 레이다에 걸린 것이다. 최근에 그녀가 책을 냈다는 것이다. 제목은 "행복한 기적". 짧은 기사였지만, 그녀의 중요 인생역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소개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다. 그녀는 회계사여서, 전화번호를 찾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러나 나를 뭐라고 소개할 것인가? 그녀에게 "그날 파티에서 만났던 그 여자"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내 오지랍"에 머리를 흔들면서도, 지구가 깨지기야 할까, 전화를 넣었다. 발신음이 떨어지자, 우선 미안하다고 말한다. 장거리통화라고 전화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다시 전화가 왔다. 무척이나 사무적인 그러나 쾌활한 목소리다. "사업" 때문에 전화한 것이 아닌 나는 약간 주늑든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결론은 "책 낸 것을 축하한다. 책을 읽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의 팬이다"로 시작하여, 여차저차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먼데 시골에 사는 것도. 그녀는 전화받은 전날 한국에서 돌아왔다 하였다. 그렇잖아도 책 이야기등 한국의 "아침마당"에 출연해 녹화하고 왔다고 했다. 2월2일자로 방영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전화로나마 안면을 텄다. 언제 만나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주체적인 노력으로 하나의 인연을 만들었다.


그녀가 나온 아침마당을 시청했다. 2월2일자 아침마당은 "목요특강" 이란 방식으로 진행됐다. 캐나다에서 온 김영희씨가 아나운서와 짧은 인터뷰를 하고, 강의식으로 그 자리에 모인 선별된 방청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었다.




출판 기사에 김영희씨가 제공한 사진이라고 올려져있었다. 

프로는 이렇게 제대로된 사진을 제공하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작은 키


"키작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김영희씨에 의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눈에 띄이기 힘든 쭉정이가 되기 쉽다고 했다. 경복여상 3학년때 졸업전 학우들은 취업으로 모두 빠져나가는데, 마지막 남은 쭉정이 4명중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그녀의 키는 152cm. 기업에서 요구하는 모집요강엔 키 159cm이상, 용모단정, 주산 부기등 실력, 외국어를 잘하면 점수가 가산되었지만, 자신은 키에 걸려 열심히 준비한 주산 부기와 외국어가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립을 절실히 하고 싶었으나, 학교 졸업후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백수생활을 해야했다.


*집안 경제사정


그녀의 가정사가 나왔다. 시장에서 "사과" 좌판을 벌였던 부모님, 아버지의 언어학대에 자살을 수없이 기도했던 엄마, 오빠가 얻어오는 급식 옥수수가루를 먹었던 기억등이다. 그녀는 일찍부터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큐 79


나중에 알게된 중학교때의 아이큐 숫자. 그녀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12년간에 걸쳐서 다녔다. 대학졸업후 또다시 공부해 회계사 자격을 취득했고, 그외에 국제 공인 재무설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늦게 피는 꽃이라고 자신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들이 정한 방법에 의해 측정되는 아이큐를 믿지 않는다. 


*외국어 공부와 캐나다 정착


남들보다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할것으로 "영어"를 선택했다. 외국인집의 무보수 가정부 자리를 구하기 위해 발로 뛴다. 그러면서 외국에 있는 또래 학생과 펜팔을 했다. 그 학생에게서 청혼을 받는다. 처음엔 거절, 두번째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캐나다로 온다.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대마초를 피우는 것에서 충격을 받고 그와 헤어진다. 그후에 UBC(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졸업생이었던 남자를 만나 그와의 첫만남을 위해 맹렬히 대쉬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와 결혼할때 물론 시집의 반대가 있었다.





*내 아이들이 학습장애라니


그녀의 세 아이가 모두 학습장애인 것으로 판명난다. 학습장애는 어떤 과목은 잘하고, 어떤 과목은 못미치는 학습능력의 불균형 학생을 말한다. 캐나다 교육청을 믿고 그들이 하는 대로 아이들을 맡긴다. 집에서 한 일은, 세 아이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잠재우기 위해 태권도를 온가족이 수련한 일이다. 5가족 모두 유단자가 되었다. 현재 두 아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막내도 대학을 다니고 있다.


김영희씨 본인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파노라마 인생 그 자체이다. 그녀는 책을 내기위해서 원고를 들고 들렀던 출판사만도 42군데였다고 했다. "다밋" 출판사에서 받아줘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됐단다. 이런 힘은 이미 살아오는 과정에서 숙련된 일이다. 그녀에게 포기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것을 꾸준히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이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자 "영희는 깎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라고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를 믿어준 남편에 대한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녀는 자신은 3학년때까지 한글을 깨치지 못한 지진아였다면서 부모들이 믿고 아이들을 봐줘야 할 것이라고 그 자리에 모인 학부모들에게 당부했다. 그녀의 큰아들 매튜도 아침마당 스튜디오에 앉아서 엄마의 강의를 듣는다. 그애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영희씨는 소개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역경을 딛고 도전해서 성공하는 "세상의 성공스토리"와 닮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성취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고 더구나 치열한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귀하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태어난 환경, 태어난 외모(현재는 바꿀수 있다고 하지만), 성격 등등이다. 그러나 그밖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노력"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그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자본이 있어서 장사를 할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정에 기댈수도 없었으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녀 역시 그동안 생업을 위해 거쳤던 수많은 경험들을 반추해보면,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그녀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의 많은 것들을 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녀가 살아온 48년간의 생활을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한시간의 강의로 전해들을 수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있는 것인가. 영희씨의 도전은 엄마들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외모로 사람을 뽑는 대기업의 사장들도, 자녀의 결혼을 현재의 조건만 보고 반대하는 부모들에게도 얼마나 좋은 귀감이 될지 모르겠다. 


김영희씨는 자신을 "옆집 아줌마 김영희"로 봐주기를 바란다. 별볼일 없는 이가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그래서 누구나 그렇게 살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런 삶이 결코 그저 이뤄진 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들도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희씨가 빛나보이는 것이다. 그녀에게 무한한 박수를 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