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보았다.
아니, 전자책을 보았다.
책과 전자책은 다르다. 부피가 느껴지지 않고, 책표지의 질량감도 없다. 다만 그안에 있는 글자들은 똑같다. 문학동네에서 만들었으니, 아마도 책을 잘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자책은 까다로운 책편집과 제본등, 부수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나같은 독자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발행한 대로 읽어도 되지만, 글자크기, 글자색, 줄간격, 들여쓰기 내쓰기 내마음대로 변경해서 볼수도 있다. 한페이지에 한 장씩 볼수도 있고, 가로로 뉘어서 두 페이지 한꺼번에 읽을 수도 있다.
아이 패드를 마련하면서 전자책을 손쉽게 볼수 있나 했는데, 사실상 이번에 읽은 소설이 첫 번째 일반책이다. 아니, 그전에 성경책을 마련하긴 했다. 이제는 교회에 아이패드만 들고 다닌다. 성경책도 찬송가도 교독문도 모두 성경전자책에 있다. 다른 사람이 신경쓰였지만, 편리성에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설교들으면서 메모도 하고, 성경본문을 통째로 복사하여, 설교노트에 붙이기도 하는등, 엄청 편리하다.
혹 누군가 설교내용을 요청하면 바로 이메일로 보내줄 수도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읽은 책 이야기를 하자.
이번에 사서 읽은 것은 2014년 제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었다.
대상은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상작인 조해진의 “빛의 호위”란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대했다. 제대로 문학의 흐름을 잡고있지 못하다는 이야기. 늦게나마 그녀를 알게 되어 좋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작가다.
요즘 인터넷에서 주요한 단어중 하나는 “공감” 같은 언어들이다. 포스팅된 것에 대한 공감은 그것을 나누는 “공유”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좋은 글은 널리널리 퍼지게 된다.
나는 그녀의 글에 많은 “공감”을 느꼈다. 단지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웬지 내가 이길이 아니었다면 걸었었을 것만 같은 길에 소설속 인물들이 서있었고, 내가 가봤던 곳에 그가 가 있고, 내가 해왔던 일을 그 소설속 인물이 하고있어서 아주 친숙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 작가와 공감을 느낄 것이다. “공감”이 많은 글은 개인적인 글같아도, 솔직함이 드러난 잘된 글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현재 나는 그렇지 않지만, 내 마음속은 그러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런 장치로 작용한다.
빛의 호위는 크게 몇가지 다른 배경과 다른 역사가 맞물리면서 일어난다. 완전히 다른 내용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쉽지 않은 조합을 어떻게 그렇게 잘 배합했는지.
글속의 화자인 반장(이름이 나오지 않고 어릴때 반장이었다는 것으로)과 권은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들이 기자와 인터뷰이로 만나서 나누는 20여년 후의 환경, 그리고 권은이 쫓아다녔던 사진작가와 그 작가의 다큐물, 다큐물속의 주인공인 두 모자.. 유대인 알마 마이어와 그녀를 구해준 벨기에인 남자친구 장, 특별히 알마 마이어와 권은은 서로 다른 세대, 다른 나라에 살며 한번도 만난적이 없지만, 끈끈하게 얽혀있는 그 무엇등, 그들 모두 하나의 주제로 묶인 사람들이다.
“갑작스러운 악천후로 비행기들이 연착되는 바람에 저마다의 스케줄에 차질이 생긴 사람들은 통행에 방해가 되는 나를 거칠게 밀치며 지나갔다.”(페이지는 의미가 없다, 전자책의 페이지는 편집내용에 따라 마구 변하기 때문에)
소설의 서두 부문에 나오는 서술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일단 “공감”에 첫테이프를 끊었다. 비행기 연착으로 다른 사람을 밀치면서 미친듯이 공항 로비를 훑고 다닌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무엇에 공감했나 더 말해도 되나? 이건 순전히 내 마음대로 쓰는 블로그이니, 뭐 누가 뭐랜대도 할수 없다.
그 다음이 잡지사 기자, 그건 내가 한국에 있으면서 했던 일이고, 아마도 한국에 있다면 그 분야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법하다. 소설속 화자가 기자로서 주인공인 듯한 권은이란 사진작가를 만난다.
춥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권은, 그녀는 반장의 작은 관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역이다. 그녀가 사진작가가 되어, 세상을 살피는 따뜻한 눈을 갖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반장의 “도움”이 컸던 것.
여기서도 또한가지 “사진”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지만 통달하지는 못하고, 그럴 가능성도 없어보이는 사진이란 작업을 권은이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공감거리가 더 많이 생긴다는 것도 큰 선물이다. 깊지는 않지만, 아는척 정도 할수 있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
마지막으로 더 하나 뉴욕이 나온다. 몇번 방문한 뉴욕은 맨해턴 거리를 이야기만 해도, 그 분위기를 알것만 같다. 싱거운 공감거리들이다.
반장이 뉴욕에 와서 본 “사람, 사람들” 이란 다큐의 일은 마치 있었던 일인것만 같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싸울때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구호품차에 타고 있던 노먼 마이어 의사의 죽음, 그의 어머니의 스토리를 담은 이야기다. 나는 그런 사건이 있었나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만 검색창에 띄워주었다.
실제로 믿어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작가가 역량있는 작가라고 할수 있을 게다. 깜짝 속아넘어갈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정말 버릴데 없이 모든 문장들이 치밀하게 작용을 한다. 단편소설로 처리하기에는 내용이 풍부한, 노먼 모자의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이 소설에서는 드러내지 않고 마음으로 베푼 선의가 다른 사람의 일생의 은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마 마이어를 숨겨주었던 장, 가난한 소녀에게 후지 필름 사진기를 갖다줬던 반장,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민들에게 구호물품을 갖다주려 했던 의사 노만, 시리아의 난민캠프를 방문, 전쟁사진을 찍다가 다리를 잃게 된 권은, 노만 부자의 스토리를 영상에 담은 사진작가 헬게 한센..
어떤 것은 작은 친절이었지만, 어떤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했다. 그러나 그만큼 숭고하고 소중한 삶은 없을터이다.
권은은 다큐물을 통해 알게 된 알마 마이어에게 편지를 쓴다. 알마 마이어는 그녀를 모를뿐 아니라 죽고 없다. 그런데 어떻게 편지를 쓸까? 권은은 자신의 블로그에 편지를 쓴다. 그저 남겨진 자의 의무라고 했다.
“나는 생존자고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이 부분에서 잠깐 세월호가 생각났다. 기억하는 것은 하찮은 일인 것같아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헬게 한센을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들에 대한 예의, 혹은 인간에 대한 예의(공지영의 소설 제목이든가?)라고. 구호물품차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으로서 죽은 노만 마이어에 대한 다큐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실의에 빠져, 조악한 영웅만들기에 여념없는 일반인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알마 마이어를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헬게 한센이 그녀에게 보낸, 노먼의 마지막 열다섯 시간이 기록된 영상-그리고 이 영상은 훗날 ”사람 사람들“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을 보고 난후였다.”
알마 마이어의 마음을 열어 다큐를 완성하게 된 뒤에는 헬게 한센의 이와같은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관계, 깨어져도 상관이 없는 관계라면 그다지 신경쓸 필요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어떤땐 이런 정도의 정성을 쏟아야 할때도 있다. 남겨진 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센은 그렇게 했다.
권은이 알마 마이어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그녀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대인 학살을 피해 지하창고에 숨어 소리없는 연주만이 빛이 되었던 그녀의 삶이, 고아처럼 가난하게 살고, 다른 출구없이 방안에만 있었던 자신의 삶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조해진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단편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가능성을 담아둔 것은 흔하지 않을 것같다. 단편 자체가 장편을 향한, 엑기스처럼 느껴진다.
화자와, 주인공과 공감한 것이 많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지 못했다.
소설속 사람들이 했던 사람 살리는 일.. 그건 너무 큰 문제여서 이곳서 언급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그나마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같다.
소설에서 끄집어내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에는 진실 이외의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어머니를 살려주었던 어머니의 옛애인이자 자신의 아버지였던 “장”의 소재를 알면서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노먼 마이어가 한 말이다.
흠, 이 부분은 내가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경우, 지켜주어야할 비밀 같은 것. 세상을 조금 더 살면 이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말은 참으로 정곡을 찌른다. 모른체하면서 책임에서 회피하는 삶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에서 받은 영향을 또 누군가에게 퍼붓는다. 소설이어서 그렇겠지만, 극단적으론 자신의 몸을 던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게 센 행동은 일반인들이 하기 벅차다.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서로간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을 잊지않고 카피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것같다. 널리 세상까지 말할 순 없지만, 내 이웃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마직막으로 전자책에 대해 몇가지 보태며 글을 맺자. 전자책에는 하이라이트와 메모 기능등이 있어서, 줄을 삐딱삐딱하게 칠 필요도 없고, 메모는 다음에 찾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때마다 메모해놓는다면, 이렇게 리뷰할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책은 전자책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 선택에 제한이 있다. 종이책은 내 소유가 확실한데, 전자책은 파일로 있다가 없어질 것같은 그런 비존재감인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책 가격으로 서운한 마음을 달려려고 하는데, 아직 전자책의 가격이 그렇게 싼편은 아니다. 종이책의 50%선인 것 같다. 파일 하나에 그정도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아직 전자책 활성이 되지 않은 이유중 하나라고 본다. 참고로 내가 산 저 책은 3. 50달러 정도였던 것같다. 특가 보급이었고, 책도 좋으니, 나같은 짠순이가 구입한 것이다. 전자책에 눈을 돌리는 출판사가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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