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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부활.. 끝까지 책임지다




톨스토이가 태어난 1828년은 엄마가 태어나기 100년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숫자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19세기에 태어난 톨스토이, 그의 책 "부활"을 새롭게 읽었다.  


우리의 삶속에서 누군가와 같은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안심할 때가 있다. 그 의견이 맞고 틀리고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인정하는 저 사람도 같은 의견이니, 그저 안심하고 그 의견뒤에 몸을 숨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네플류도프가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나 그러고 살아간다. 더군다나 네플류도프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가진 재산이 있어서 존경을 받고, 향락에 빠지고,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사치스럽게 살아간다. 물려받은 유산으로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살아가던 네플류도프가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타락한 삶을 살던 하녀 마슬로바를 만나면서 새로운 갱생의 삶을 살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저지른 일이란, 누님의 집에서 반은 하녀처럼, 반은 양녀처럼 살던 어린 카츄사와 사랑에 빠지고, 그 순수한 사랑의 시간을 지나, 군인의 때가 묻으면서 그 처녀를 욕보이고 그녀에게 돈을 쥐어주고 떠났던 그 사건이다.


그 소녀와의 사건을 잊고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데, 어느날 배심원으로 나갔다가 살인혐의를 쓰고 들어온 그의 첫사랑 마슬로바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 한번의 잠자리에서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그 일로 누님의 집에서도 쫓겨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다가 매춘부로 일하게 되었고, 사건에 휘말려서 살인혐의를 받게 된 일이다. 기막힌 일은 재판에 참여하는 이들의 불성실함과 편견 - 판사, 검사, 배심원-으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살인누명을 쓰게 되어 선고를 받게된 마슬로바의 일을 겪게 되면서, 네플류도프는 그녀를 도와줘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부활은 이 사건을 시작으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여러가지 일들을 담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 살기로 한다면 평생 몰랐을, 감옥의 일들과 그 안의 죄수들, 사회의 제도등을 하나씩 점검하게 된다. 그는 마슬로바의 도움으로 감옥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돕게 되면서, 그들의 기막힌 처지에 분노도 하고, 그들을 돕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런 일을 위해서는 상류사회의 친분을 이용해야 함을 통탄하면서, 그들이 역겹지만, 그들에게 찾아가 사정을 한다. 그는 상류사회 인사들의 인간성을 여러가지 면으로 조롱하는 데 가령 이런 것들이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이 이 지위를 얻게 된 중요한 자질은, 첫째 공문서나 법률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서툴렀지만 그럭저럭 서류를 초안할 수 있었으며, 철자법도 틀리지 않게 문장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둘째로는 풍채가 좋고, 때에 따라서는 의젓한 정도가 아니라 남이 근접할 수도 없을 만큼 위엄있는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야비할만큼 비굴하게 아첨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셋째로, 그는 도덕적인 면이건 국가적인 면이건 일반적인 주의 원칙이라는 것이 전연 없었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누구에게나 찬성할 수 있었고,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누구에게나 찬성하지 않을수도 있었다..(중략)  떠밀려 퇴직하게 되었을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가 똑똑한 인간이 아닐뿐더러 자존심만 강할뿐, 실상은 천박한 교양도 없는 다른 관리들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었으나, 이 사실이 해마다 막대한 국고금을 축내며 자기 예복에 다는 새 장식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확신을 조금도 흔들리게 하지 않았다."



책은 마슬로바를 돕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온힘으로 사건에 매달리는 완전히 변화된 네플류도프를 보여준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한때 열정적인 마음을 품고, 비합리적인 토지제도를 고치려고 했던 젊은시절의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제대로 살고자 했던 적이 있지만, 어줍잖은 철학자를 흉내내는 아들보다는 젊은 치기가 있는 말썽쟁이 도련님 흉내를 내는 것에 가족들이 박수를 쳐주었으며, 주변사람들도 그런 그에게 더 열광했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뜻을 품었던 젊은날을 접고, 다른 귀족청년들과 같은 길을 밟다가, 마슬로바를 만나면서 자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네플류도프가 만나게 되는 세상은, 땅이 없는 비참한 농부들과, 지주의 토지를 관리해주면서 배를 불리는 관리인들, 허위의식과 치장으로 바쁜 상류사회 사람들의 위선 등등이다.


또한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의 카츄사(마슬로바)는 간곳이 없고, 남자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즐기기까지 하게 된 카츄사의 모습에서도 충격을 받는다. 카츄사는 나름대로는 자신이 갈수 있는 두개의 길에서 한개를 선택했을 뿐이다. 하녀란 신분으로 추근거리는 주인들에게 몸을 허락하는 신분으로 살던지, 생활도 보장되는 공인된 매춘부로 살던지(돈도 벌수 있다는 뚜쟁의 말도 있었다) 하는 두개의 길에서 매춘부의 일을 선택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이다.


그러고보면, 네플류도프가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여성적 매력이 뛰어난 카츄사는 그런 운명이 될 소지가 있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네플류도프도 그런식으로 자기위안을 삼고 지나가면 그뿐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한일에 책임지고자 했다.


네플류도프는 하고다니는 차림새와 그의 공작 신분으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고, 다투어 자신과 인사를 나누려 하는 사회적 신분의 이점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건 이 사회에 형성된 신분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당연시되던 자신의 특권을 그야말로 모두 점검하고 재정리하는 길을 걸어가는 데 그는 자신의 이러한 일들을 "새로운 행복"이라고 부르고,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위해 무언가 할때 진정한 기쁨이 솟는다고 말한다. 


그런 일을 위하여 그가 부딪치는 사람들, 농부들의 삶에서는 죽도록 일하고도 먹을 것이 없는 빈천한 삶을 목도하게 되고, 죄없는 사람들이 옥에 갇혀 고생하는 반면, 그 사람들을 제도에 묶어놓고 호의호식하는 부자들을 친구로 가지고 있는 그는 사회개혁주의자와 같이 동부서주한다. 


책에서는 부자들을 묘사할때, 아름다운 비싼 옷, 값비싼 가구, 으리으리한 저택, 품위있는 만찬등으로 그리고 있으니, 그것은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라고 볼때, 인간의 속성은 참으로 변하지 않는구나 싶다. 그런 것들을 가진 자들은 뻐기고, 없는 자들은 우러러보고 목말라하는 것 말이다.


"자기가 직접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의 손에 의하여 깔끔하게 재봉되고 손질된 군복을 입고 으리으리한 군모를 쓰고, 역시 남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손질된 총을 들고, 역시 남의 손으로 길러지고 길들여진 살찐 훌륭한 말을 타고, 자기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훈련이나 사냥을 하고, 뛰어다니며 군도를 휘두르며 사격하고, 그리고 남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중략) 게다가 장교 클럽이나 최상급 요정에 모여 먹고 마시기 위하여, 특히 술을 마시기 위하여 출처도 모르는 돈을 물쓰듯이 쓰는 것이 대단하고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중략) 우리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방종한 쾌락주의가 마땅히 허용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런 생활을 영위한다."


그가 빠져있었던 군인시절에 대한 묘사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도 이런 이유들로 전쟁이 갖다주는 폐혜를 설파했을 것같다. 바로 이때 고모집에서 다시 만난 카츄사에게 욕정을 느꼈고, 그걸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리고 남들처럼 돈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는 군인, 검사, 판사, 감옥소장, 간수등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한다. 그런 사회에서 제대로 자아를 찾고 살아갈 수가 없음을 지적한다. 러시아 전제군주 정치 말기의 혼잡한 사회를 볼수 있는 부분인것 같다. 물론 현대에도 이런 일들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데 그 비극이 있기도 하다.


남에게도 행복이 될수 있는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자아와, 오직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두개의 자아가 살고있었는데, 그는 이를 정신적인 자아, 동물적인 자아로 구분한다. 정신적인 자아가 숨어있다가가 동물적인 자아를 이겨내면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수 있다.


정신적인 자아에 대해서는 "자기의 비열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이 감정속에는 뭔가 병적이면서도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안정시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행복을 눈뜨게 된 것에 대해서 그는 재삼재사 강조한다. 네플류도프의 속죄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나를 노리갯감으로 만들어놓고, 저 세상에서 또 나를 미끼로 자신을 구하려는 거죠! 보기도 싫어요. 그 안경도, 기름진 더러운 상판도, 다 보기 싫어요. 어서 가요, 가! 그녀는 발딱 일어서서 이렇게 외쳤다."


마슬로바는 예전에 순수했던 자신의 자아가 손상당했고, 그 상처가 아파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농부들도 그가 자신의 토지를 공용으로 하려고 한다고 하자, 자신들을 더욱 옭아매려는 속셈으로 알고 동조하지 않았다. 선의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네플류도프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밀고나갔다. 결국 마슬로바도 농부들도 그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농부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글에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고루 나눠주고 그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을 공동의 경비로 지출하게 했으니, 지주에게 바치는 것이 없어진다면, 그들의 생활도 한결 나아졌을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의 전제군주시대의 막바지의 형편을 소상히 알려준다. 상위 몇 프로인 귀족들을 배불리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던 무산자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어떻게 굶주리고 학대당했는지를. 이런 환경에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싹이 텄다는 것을 엿볼수 있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이 책 말미에 이르러서 드러낸 사상은 종교적인 구원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했을때는 안개처럼 희미함을 느꼈으나,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했을때는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명확한 답이 나왔다고 적고있다. 


마슬로바를 위해서 판결을 무효화하기 위해서 대심원의 심리를 요청했으나 그곳에서도 판결번복이 거부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탄원서를 올리기로 하였고, 긍극적으로 카츄사를 구하게 된다. 그러나 카츄사는 결혼해달라는 자신과의 새로운 삶에 동의하지 않고, 병든 정치범을 간호하겠다고 말한다. 카츄샤도 변한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네플류도프의 앞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은 자신이 할수있는 최선의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속에는 긴 분량으로 감옥의 비인간성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비인간화를 다루고 있다. 유형지로의 수송중에 일사병으로 죽은 죄수들에 대해서 "살해되었는데도 죽인 사람이 없는 이상한 상황"을 맞부닺치면서, 제도라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것인가 절망한다. 그는 "죄많은 인간들이 남을 교정하겠다고 감옥에 가두는 것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가 찾은 마지막 길은 

"그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방도는 사람들이 항상 하느님께 대하여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 인식하고, 따라서 자기에게는 절대로 남을 벌준다든가 고쳐줄 만한 힘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는 감옥과 주인중계소에서 목격한 온갖 무서운 죄악도, 이러한 사악을 감행하고 있는 태연자약한 태도도, 요컨데 그들 자신이 악인이면서 악을 교정하려는 따위의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원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는 덧붙여서 마태복음에서 구원을 찾는다. 우리는 주인이 보낸 포도원 농부들인데, 스스로를 주인으로 착각해서 포도원 주인이 아들을 보냈을때 죽였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포도밭을 가꾸라고 보내어진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포도밭을 내것이라 여겨 그것을 향유하려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네플류도프를 통해서 톨스토이는 인생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제1계율 사람은 형제를 살해해서는 안될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하여 성을 내서도 안된다.

제2계율 사람은 간음해서는 안될뿐만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을 향락해서도 안된다. 일단 한 여자와 맺어졌다면 절대로 그녀를 배반해서는 안된다.

제3계율 복수해서는 안될뿐 아니라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한쪽 뺨도 내밀지 않으면 안된다.

제5계율 원수를 미워하든지 싸워서는 안되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에 나온 이 말씀은 지금까지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로 가득찬 부활 전체 내용과 매치되지 않는 것같다. 법을 제정하고, 그것을 자신들을 지키는 보호막으로 이용하고, 다른 사람을 압제하는 데 사용하는 그들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결국 사람의 제도로 그들을 이겨보는 것이 쓸데없다고 생각한 것같다. 계율을 지키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신 평화와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 압제하는 자들의 편에도 서보았던 그는 그 시간들이 아무런 매력도 행복하지도 않았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자신의 쾌락과 유익만을 쫓아살아가는 것은 동물적 자아만을 키우는 탐욕스런 삶이라 규정하고, 땀을 흘리는 노동자의 모습에서 그는 진정한 "상류층"을 보았다고 서술한다. 기득권을 거부하고 농촌운동, 교육운동에 투척했던 그의 삶은, 그가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삶안으로 자신의 신념을 끌어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소설속 주인공은 끝까지 책임지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그 자신도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된셈이다. 진정으로 기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후세들에게까지 소설속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와서 말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니 참으로 감사한 책읽기이다. 


글을 읽으면서 귀족들의 모습과 현대사회의 "부자"들과 겹쳐서 보여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그 도가 지나치면, 또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도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살아있는 우리로서 할수 있는 일은, 나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가 이땅에 떨어진 소명을 잘 찾아내서 살아가는 길이라는 톨스토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PS) 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은 그 책의 출판사에게 책임을 묻고싶을 정도다. 이북(Ebook)으로 발간된 책으로 아이패드 아이북 앱을 이용하여 무료로 다운받았다. 무료였으니, 어디다 불평할수는 없으나, 수많은 오자와 중복문장까지.. 그리고 곳곳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부분도 많았다. (다이피아, Diypia 간) 매 페이지마다 오타가 있어서, 책을 읽는데 너무 많은 방해가 되었다. 여러 사람에게 보급하려는 의도로 발행한 것이라고 보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