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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 김혜자를 보라

"이게 다에요?"

예의를 갖추느라고 웃는 것같이 이가 보이지만, 실상은 울고싶은 표정으로 힐문하듯 따지는 김혜자의 첫 모습이 이 극의 시작이다.

사주를 풀이해주는 역학선생이 자신과 두딸과 손녀에 대한 "쪽박 깨지는" 해석을 해주자 한껏 실망하는 그녀. 기껏 사주에 기대고 싶어하는 그녀에게서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옷도 잘입었고, 자신을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비서를 거느리고 있지만, 어딘지 불안해보이는데, 역학선생이 마땅찮은듯, 삐죽거리는 그녀의 입모양은 사실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 기억될만 하다.


오랫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김혜자는 바로 "예술의 연기"는 이런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에는 계산이 되어, 몸에 완전히 익은 "연기하는 나를 잃어버린 극속의 나"가 들어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탤런트들이 연기를 잘하지만, 이정도로 연기하는 이를 만나게 되면,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것같은 감동이 인다. 최근에 그런 감동을 준 배우는 영화 "신세계"에서 형사역으로 나왔던 최민식이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대본이 한꺼번에 나오지않아, 연기자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들어왔다. 김혜자가 출연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검색을 통해본 결과, 대본이 7-8회 분량까지 나와있단다. 김혜자는 인터뷰에서 "아무리 톨스토이라 해도 쪽대본은 싫다"고 했다고 한다. 톨스토이라면 쪽대본을 갖고 작품이라고 발표할것 같지는 않다. 


어쨋든 김혜자의 연기가 천재적으로 그냥 나온 것이 아닌, 드라마속 인물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연기연습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말이다. 언젠가 읽은 적 있는 김혜자씨의 책에서도 "연기자들도, 형편없는 대본으로 연기하라고 하면,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내용을 읽은 것 같다. 이번 드라마의 작가는 김인영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녀의 작품을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남자가 사랑할때" "결혼하고 싶은 여자"등의 전작이 있다고 한다.


오늘 아침, 4회를 볼참이었다. 드라마는 대부분 아이패드를 틀어놓고 보는데, 엊저녁부터 동영상이 열리지 않았는데 오늘도 마찬가지 문제가 나타났다. 모든 동영상이 실행되지 않으니, 아주 난감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꼭 드라마를 보겠다는 게 아니라" 하면서 오늘 저녁 딸이 오니 그때 고쳐보든지, 남편이 오면 좀 봐달라고 하든지, 오늘 하루 좀 쉬자 하면서도 어떻게 고칠 수 있나, 인터넷 서치를 해보았다. 


검색란에 "아이패드 동영상 재생이 안될때" 이렇게 넣으니, 몇가지 방법들이 나오는데, 이리저리 해봐도 안된다. 이번에 영어로 넣었더니, 그런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이 답글을 올려주었다. 리셋을 한번 해보라는 의견들이 있어서, 한참을 헤매다가 리셋(스위치와 앞단추를 동시에 누르고 한참 동안 있는 것)을 하면 혹 모든 게 날아가지는 않나 하면서 실험해봤다. 


그랬더니 동영상이 바로 열린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파게 된다더니 내가 그런일을 해냈다. 


그러고나서 시청한 4회분. 


앞으로 풀어나가야 밑그림들이 거진 채워진 듯싶다. 시대를 너무 앞서 살아서 불이익을 받았던 둘째딸 현숙(채시라)의 좌충우돌 연기는 피해의식에 젖어있어 타협의 기술이 없는 서민의 삶을 보여주고, 잘나가는 딸같았는데, 찬밥 신세를 받게 된 첫째딸 도지원의 도도한 허당끼가 손창민과의 로맨스로 이어질 것 같고,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온 김혜자의 남편 이순재는 요양원에서 기억을 잃은채 살아가고 있고, 채시라의 인생에 악역으로 작용한 선생이 짝사랑한 체육교사가 그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고 있으며, 채시라의 딸은 원수의 아들과 엮이게 되는 중이고..


드라마에서는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여야만, 그들이 극에 등장할 이유가 되는 것임으로 오히려 탄탄한 구성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드라마를 작위적으로 보이게 하는 위험요소가 있으나,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으로 보아, 작가를 믿어볼만 하다.





이순재가 사랑했던 여인으로 장미희가 나오는데, 그녀의 연기는 어디서나 "똑"("똑사세요" 했을 때처럼)같긴 해도, 그것이 그녀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조금 더 발전된 무엇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어쨋든 이 드라마는 혼자 보기 아까운 드라마이다. 쪽대본을 싫어하는 김혜자가 골랐다고 하니, 일단 높은 점수를 줄수 있는 드라마가 될것같다. 남편이 사랑했던 여자, 그녀 때문에 온 인생이 꼬였는데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착하지 않은 여자 김혜자는 그녀를 "발차기"로 쓰러뜨린다. 


착한 여자들은 나름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낄테고, 착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얻게 될 것이다. 빨리들 보시라고 이렇게 짧게 후기를 올린다. 더 말하다가는 다른 사람의 드라마 시청을 망치게 될 것같아, 바삐 자판에서 손을 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