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디는 편집중이다"
"편집증"과 "편집중"은 솜털 하나의 차이가 있구나. 꽤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는 지도 모른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편집을 해야한다. 사진도 올리고, 글자크기도 조절하고, 행간도 그렇고. 그러나 조금 차원이 다른 편집을 해보고 있는 중이다. 비밀을 살며시 까보이는 느낌이다.
책에 대해서는 참으로 깊은 애정의 역사가 있었다. 대학교때 교지편집을 시작으로, 이민오기전까지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래봤자 경력 3년차 정도밖에 안되고 그것도 정통수업을 받았다고 보기 힘들수도 있다. 그때의 영향인지, 나는 수시로 책만드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그런 단어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둔채 나는 흰머리가 희끗거리는 50대의 여성이 되어있다.
처음엔 전자책을 내가 만들수 있을까, 하는 데서 시작하였다. 인쇄의 과정이 생략되니, 언감생심 꿈을 못꾸던 책만들기를 해볼수 있을까 하는. 그래서 인터넷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일단 아이패드에는 IBOOKS라는 책읽기 앱이 있어서 많은 책이 등록되어 있다. IBOOKS 단말기에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찾아보았더니, 나같은 사람이 많이 있는지 "IBOOKS AUTHOR"라는 이북을 제공하고 있었다.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전체 6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었다. 물론 영어로 되어있고, 아주 쉽다면서 "꿍꽝거리는 가슴속의 희망을 이뤄보라"며 책만들기를 가르쳐주었지만, 내게는 난해했다. 그러면서 그 호기심으로 시작,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다가, 한국에서는 "독립출판"이라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같이 낙동강 오리알처럼 오지에 떨어져있는 사람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출판의 방법일 것 같았다. 우선 그 분야의 문서와 동영상들을 뒤지다가 "SK컴즈 나만의 책만들기" 동영상을 찾아내게 되었다. 모두 6주차 강의로 한번에 1시간 강의였다. 그 강사는 6주 강의에 32페이지짜리 책 한권을 만드는 방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얇지만, 자신만의 책을 만든다니, 흥미가 일었다.
SK컴즈는 SK 커뮤니케이션의 약자로 IT 기업이다. 그 회사 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교육을 동영상으로 담아 일반인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회사의 기획문화팀 정진호씨가 한 강의였다. 2011년에 했던 강의이니,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IT 세상에서 너무 오래된 것을 보나 했지만, 내게는 그 방송도 너무 앞서나간 것이어서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우선 내가 알고 있었던 책의 편집과정은 사실 제한적인 부분이다. 책을 만드는 데는 아주 기본적으로 발행인(물주), 저자, 편집, 조판, 표지 디자이너, 인쇄소, 제본소, 서점 영업담당 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조금 관여했던 부분은 편집 부분이어서, 편집을 다했다손 치더라도 그밖의 것들을 제공받을 방법이 없어서 사실은 책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독립출판이라니. 1인출판이라는 말도 있다니, 못할 일은 아닌가 보다.
예전의 출판은 책을 내기로 결정되면, 편집자가 원고 교정과 함께 조판의 방법을 지시한다. 조판은 금속활자로 하거나, 사진식자로 하게 되는데, 금속활자 하나하나를 박아서 하는 방법이 단행본에는 많이 쓰였다. 조판소에 가본적이 있는데, 일일이 글자를 하나씩 판에 박는 방법이다. 핀셋이나 이런 것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편집자는 크게 글자를 한다거나 행간을 하나 더 준다거나 하는 것으로 일일이 빨간 볼펜으로 글자크기와 글꼴을 지정한다. 그러니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글자크기와 모양에 대한 감각과 그것을 잘 배열하면 되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었다. 그런 다음, 표지 디자인은 전문가에게 맡기니, 편집자는 각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는 일을 한다. 저자에게 조판되어 나온 원고를 보내 교정을 보게 하는 것도 편집자의 일이고 말이다.
정진호씨가 가르친 책편집은 말하자면 "조판"의 과정을 편집자가 직접하는 것이다. IN Design 이라는 Adobe에서 나온 프로그램으로 하는데 상당히 정교하고 폭이 넓어 온갖 종류의 인쇄물에 유용해 보인다. 그는 30일간 사용할 수 있는 버전을 다운받으라고 알려주었다. 30일 이내에 얇은책 한권을 만든다면서. 수강생들에게는 강사가 인디자인 파일 복사본을 나눠주었다. 나도 집에서 그 파일을 다운받았다. 컴퓨터를 아는척 하지만, 무엇인가를 다운받아서 써볼 정도는 아니었다. 버전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제대로 다운받아졌다.
강사와 함께 나의 편집과정도 시작되었다.
아, 사실 편집을 하려면 원고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책으로 만들 만큼은 안된다고 누가 묻지 않아도 "도리질"했었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가 쓴 글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심심풀이용 32페이지 책을 만들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행책을 내보기로 한다.
원고를 마이크로 소프트 워드에 옮기고 사진을 옮기고 하는 작업이 간단하지 않았다. 감기에 고꾸라졌던 이틀간을 빼고 시간이 있는대로 편집을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 밤에 잠을 자도, 글자를 자루속에 담아내고, 삐져나온 것은 또다른 포대에 담는등, 꿈속에서 편집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하루를 꼴딱 새기도 하고, 한번 책상에 앉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편집을 하다가, 벽에 막혀서, 동영상 어떤 부분을 완전히 다시 듣기도 한다. 오늘도 일을 하다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새벽 4시를 향해 가고있다.
말하자면, 큰 포대자루에 있는 혼합 잡곡을 같은 종류별로 골라서 가지런히 만드는 작업같은 것일까? 잘못된 것들은 골라내고, 부족한 것을 다시 보충하면서 말이다. 내 손을 기다리는 일이 남아있으니, 자리를 뜰수가 없다. 그러나 그 일이 하루이틀에 끝나지 않으니, 이런 나를 조절할 무언가도 필요하다.
"감히" 책을 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격이 없는 책은 공해나 마찬가지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편집을 맡은 이의 노고가 쓸데없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것뿐인가.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할테니 내 돈을 들여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내 글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하고, 책으로 묶여져야 할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편집중인 책의 한페이지
책 출판을 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책에 대해 너무 "우상시"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예쁜 드레스를 한벌 구입하는 것처럼, 혹은 가족들이 쓸 멋진 소파를 들여놓는 것처럼, 원한다면 나의 글을 책으로 묶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도 한켠에 다행히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유명한 수필가의 어떤 말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그 정도면 인명, 글명을 떨친 분인데, 대부분의 책을 "자비"로 만들었다고 고백하셨었다. 그분도 그런 걸 보면, 출판사에서 어서옵쇼 하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은가 보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 시간을 즐겨라.
이런 말들을 정말 많이 들어왔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편집을 마치면 인쇄를 해야하는데 인쇄를 위해 한국에 갈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인쇄소도 알아봐야 하고, 책발간에는 ISBN이라는 "국제 책 고유번호"라는 것도 받아야 한다. 인디자인이란 책편집 디자인도 시험버전 기간이 끝나면 매달 돈을 내고 사용해야 한다. 출판은 "취미"로 할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일의 속성상 직업적이 되어야 한다.
아직 앞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편집증적으로" "편집"에 매달리고 있는 나를 보니, 정말 좋아하긴 하는가싶다. 좋아하는 일은 "괴롭지만, 멈출수 없다."
나는 그림을 공부해보고 싶어하는 언니를 위해 그림강좌가 있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같은 회사에서 출시된 "SK컴즈 행복화실" 10강이 있었다. 이 강사 역시 정진호씨였다. 너무 의외였다. 편집을 하면서 그 강의를 들었는데, 그의 역량이 출판보다는 그림쪽이 더 우세했다. 나중에 그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원래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였는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강의를 맡아서 많이 했으며, 최근에는 회사에서 나와서 1인 기업을 차렸다고 나온다. 그는 주로 인터넷으로 수강생을 모집해 강의해주는 것같았다. 그림 전시회도 3차례 했다고 하고,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림에 너무 소질이 없어서 관심이 없었는데, 그의 1강만 듣고나서도 그를 따라하면, 나도 조금은 그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잘 가르쳤다. 양질의 강의를 집에서 앉아서 들을 수 있고, 따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정진호씨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고맙고, 인터넷 환경에 감사하다.
이제는 정말 하고싶었는데, 시도해보지 않았던 어떤 것들이 있나, 자신을 한번 점검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편집을 생각하면서, 캐나다땅에서 책편집을 하기위해 어떤 방법이 있나 찾다보니, 칼리지에도, 대학에도 관련 코스가 있었다. 특별히 라이어슨 대학교에는 집중 3개월 공부에 4,000달러의 수강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캐나다에 왔을 당시, 출판쪽으로 무엇인가를 해볼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에 그 방면으로 나갔다면, 캐나다 유수의 출판사에서 한국책 담당 직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을까? 어차피 "IF" 용법이므로, 내멋대로 그려보는 것쯤은 용서해주시라.
내책이 만들어질는지 모를 일이다. 언제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간직하는 것이 나의 "실패시 좌절예방방법" 비결이므로. 어쨋든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잠을 잊고 무언가를 했던 적이 얼마만인가. 기가막힌 선물이 아닐수 없다. 하나만 귓속말로 알려드릴까? 아직 결정되진 않았으나 "민디와 떠나는 캐나다여행" 이란 부제를 가진 어떤 책이 될것같다. 물론 조석으로 모든 내용은 변하니, 그저 한귀로 듣고 흘려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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