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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문학적인 자서전.. 왕언니의 거꾸로쓰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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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모두 옹골차게 편집된 잘만들어진 책이다. 표제는 서예에 뛰어난 왕언니가

직접 썼다고 한다.


"너무도 평범하여 뭐 그렇게 대단히 멋지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글이지만, 내 아이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젊은 독자들에게 조금은 앞서서 바르게 걷고 싶었던, 긍정적인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왕언니의 거꾸로 쓰는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블로그 친구(?)가 된 나에게 왕언니는 책값보다 더 비싼 우표를 붙여서 책을 배달해주었다. "평범함이 최고의 비범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책을 다 읽고나서 느꼈다. 왕언니를 알고 있는 것이 언제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지만, 이번에는 범접하지 못할, 어떤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2002년도에 다음 칼럼을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칼럼을 운영하나, 곁눈질을 하느라 이방저방 왔다갔다 하다 만난 왕언니는 그때 벌써 50대 중반의 "왕언니"였다. 나는 바듯 40대에 들어선 때였으니, 50대 중반의 나이에 컴퓨터에 입문하여, 컴퓨터에 글을 남길 수 있는 "신인류"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왕언니는 그때부터 칼럼에 입성한 동생들을 격려하면서, 대화소통의 안방 역할을 해주었다. 왕언니는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블로그에서 만난 동생들을 온, 오프 라인으로 물심 응원해준 그 "조직세계"의 대모(?)였다. "왕언니"라는 굵직한 끄나풀을 잡고있는 한, 중심 기류에서 멀지 않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200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산의 언니와 함께 왕언니와 한식집에서 만났다. 온라인 우정이 오프라인으로 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그때 만났던 왕언니는 외모에서도 내면에서도 세월을 건너뛴 동안의 미모를 소유하고 계셨다. 책에서도 볼수 있지만, "평강공주"로 왕족 출신(?)이라 그런지, 아직도 청순한 미모를 자랑하신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왕언니는 올해 70살이 된, 명실공히 할머니일뿐 아니라, 5손주를 거느린 은퇴노인임이 분명하다. 불가사의한 것은 늙지않는 마음 때문에 외모가 저 혼자 늙을 수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이 배우고, 문학을 꿈꾸는 부잣집 딸이 가난한 남편을 만나, 시댁 식구들을 치송하며 살았던 이야기는 내가 절대로 넘볼 수 없는, 하지 않았던, 할수없는 일이라고 여겨져 마음 한쪽이 무겁기도 하였다. 내가 하지 않음으로써,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것은 양심의 가책이 되어 나를 찌른다. 헤어나오는 방법은 "나"와 비교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자, 나를 다독이기도 했다. 그건 왕언니 시대의 일이라고 이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면, 생각이 젊어서 우리 세대라고 생각했지, 순종과 희생만 있었던 우리 시대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친구처럼 느껴졌던 왕언니를 멀리 윗세대로 밀어놓아야 간신히 내 설자리를 찾게 된다. 


책은 왕언니의 어릴때 추억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운 스톱을 꿈꾸는 골든 에이지의 삶까지, 한편의 소설처럼 잘 구성되어 있다. 블로그에는 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책만 보더라도 왕언니의 인감됨과 삶을 유추해 볼수 있다. 언제나 감사하는 삶, 베푸는 삶, 영악한 삶이 아니라, 진실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자녀들에게 손주들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서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딱딱한 책은 절대로 아니다. 솔직 발랄함이 양념처럼 잘 버무러져있다. 


왕언니의 책에는 뛰어난 표현들이 많다. 예리한 기억력과 그것을 문장으로 재생해내는 솜씨가 비상하다.


친척오빠에 대한 묘사중  이런 부분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사랑받고 못 받는 것은 자기 할 탓'이라는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늘 경유 냄새가 나는 작업복 윗주머니에 메모장을 넣고 다니며 한문을 익히는 가 하면, 펜글씨 연습을 언제 했는지 글씨도 잘 썼다." 이와 같은 문장중에서 "경유 냄새가 나는 작업복 윗주머니" 같은 구절은, 어린 왕언니의 기억력속에 스며든, 후각까지 자극하는 문장으로 생기를 얻는다. 


위와같은 수준의 문장은 왕언니 글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것으로, 어쩌면 소설가가 되었어야만 했는데, 자신의 일생을 소설보다 더 중요한 사람살리는 일, 살아내는 일에 열중했던 것같다.  이미 이미순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한 한편의 소설이 완성되었고, 다시 편집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꼭지들이 왕언니의 블로그를 채우고 있다. 그중에서는 이미 소설로 완성되어 있는 글들도 있다. 그런 글들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빛을 보게 되기를 바래본다.


한번 읽은 왕언니의 책을 후루룩 한장씩 넘겨본다.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다. 대부분의 문장들이 앞문장과 함께 읽어야 그 향기가 더하니, 따로 떼어내서 소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저 기억을 서술한 기록물이라기보다는 영상과 같은 이미지화한 서술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혜선이네 상리과원은 내 유년기의 요람과도 같다. 눈만 감으면 사과나무에 뿌린 소독약 냄새까지 사과향처럼 느껴지고, 내집보다 더 그리운 과수원이었다."


"꽃버선과 코고무신까지 사놓으면 추석은 왜 그리 더디 오는지. 엄마가 새로 피운 숯을 둥근 다리미에 담아 무릎을 곧추세운 언니와 추석빔을 다리는 밤, 우리는 마루 끝에 앉아 조금씩 배가 불러오는 달을 쳐다보며 손꼽아 추석을 기다렸다."


무릎을 곧추세운 언니와, 조금씩 배가 불러오는 달... 이런 표현들 얼마나 좋은가. 추석 원피스를 걸어놓고 밤을 설치며 잤던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릴적 친구들을 소개한 글도 흥미로왔다. 


"늘 그들을 리드하며 지금까지 살았는데도 가슴 한구석엔 이미테이션 보석을 끼고 파티에 앉아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재산으로 따지면 넷중 상위 그룹이었지만, 아버지의 학력이나 처신들이 어쩔 수 없이 나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이미테이션 보석으로 표현한 것은 뛰어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왕언니의 글에는 수많은 속담, 격언, 관용어, 특이한 단어등이 많이 나온다. 그건 왕언니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경희대 국문과 출신, 이대 문학 콩쿠르대회 당선, 황순원 선생에게 소설추천을 받기도 하였다. 이 책의 내용에서만 봐도 이미 고등학교 2학년때 암자에 올라가 책읽기, 습작등으로 문학소녀의 길에 들어섰고 대학교 1학년때 다시 내소사에서 1달을 머물면서 습작의 단련 시간을 가졌다.  글을 보면 많은 어휘량과 함께 옛글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글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몇개를 골라봤다. 


그래도 방귀깨나 뀌는 친척이 하나 있으면 그 줄에 어떻게든 줄줄이 사탕처럼 매달려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했다.

사랑받고 못 받는 것은 자기 할탓

옛말에 남의 염통 곪은 것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

팥죽먹다 흙 씹은 것처럼 영 입맛이 개운치 않았다.

천천히 피는 매화가 매실이 된다


이런 인용뿐 아니라 왕언니의 창작 관용구등도 눈에 띈다. 우리가 흔히 출처를 모르는 "좋은 글"등으로 곧 팔려나갈 것 같은 그런 싯구등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딸을 결혼시킬 때도, 아들을 장가들일 때도, 며느리가 손주를 임신했을 때도 왕언니는 귀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골라서 가장 귀중한 편지선물을 보내곤 하였다. 때마다 일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녀들에게 사랑과 교훈을 준다.


우리는 우리들의 아기를 세상적인 욕심을 좀 줄이고, 박제된 지식보다는 주님이 주시는 삶의 지혜가 있는 아이, 나만의 행운을 잡으려고 하기 보다는 모두의 행복에 마음쓰는 아이, 영육을 황폐시키는 쾌락과 진정한 기쁨을 구별할 줄 아는 아이, 편안하기 보다는 평안을 구하려는 아이로 키워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나는 네가 똑똑하고 잘나가는 유능한 여자이기보다 어리숙하지만 사랑이 많은 고지식하고 헌신적인 좋은 엄마가 되는 것에 만족했으면 싶다.

- 아이를 잉태한 며느리에게 쓴 편지중에서


왕언니는 이런 마음으로 살았고, 아이들을 키웠고, 손주들이 그렇게 자랐으면 한다. 


왕언니가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세세히 기록되기도 하였다. 먼 훗날, 역사적인 자료가 될법하기도 하다. 


1980년 광주에서 그날의 봄을 겪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왕언니의 결혼이야기, 딸의 결혼이야기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특별히 딸의 결혼이야기에서는 그 형식의 복잡함에 놀라기도 하였다. 부자 사돈을 만나, 그만큼 해줘야 했던 왕언니의 고뇌, 지혜롭게 대처했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같은 예식이 아니었을까? 아들을 결혼시킬 때는 반대로 "갑"의 위치에서 며느리가 편하게 시집올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까지. 왕언니는 본인을 수박이 되고싶어 금긋기를 하지만, 수박은 될수 없는, 어디 던져도 금하나 가지 않는 호박이라 표현하지만, 닮고싶은 기품이 글에서 내내 비친다. 내가 먼저가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 배려심이 몸에 배고, 감사할 거리를 언제나 찾아내는 그에게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삶을 엿보는 것같다. 


왕언니와 친구로 엮인 블로거들은 왕언니의 책에 등장하는 행운을 누렸다. 책 출간을 축하하는 짧은 글을 받아 책 말미에 올려주었다. 나의 글은 빠르게 응답해서인지, 아니면 먼거리 특혜인지 뒷편 책날개에 인쇄되어 나오기도 했다. 너무 감사하다. 나의 축하글은 이렇게 되어있다.


"왕언니를 인생 선배님으로 보물처럼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이 엄청 기쁜 날입니다. 책을 출간하겠다는 약속을 10년간 마음에 품고, 이렇게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늦었어!'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왕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추수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니처럼 열심히 가족과 이웃과 교회 형제자매에게 성심을 다하는 것, 그것이 왕언니 동생으로서의 삶이라고 믿을게요.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왕언니의 거꾸로 쓰는 일기

http://blog.daum.net/misuny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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