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나, 그리고 우리

다시 페이슬리에서(1)

모두들 안녕하셨는지요?

너무 일찍 돌아왔지요?^^

마음을 끓이던 문제들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바닥에 바닥을 친 느낌도 있었고, 또 그만큼 비상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몇달간 많이 배웠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아주 치열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글자가 없고, 생활만 있었던 나름대로 풍족한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정리가 되니 이제 글을 쓸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이 감사합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이렇게 일찍 깨어지는 시간에는 블로그를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니, 마치 한순간에 이뤄진 것처럼도 보인다.

어디서부터 말을 풀어야 하나. 왜 나는 나의 일상을 내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판을 두드린다.


새벽에 일어나진 까닭을 미룬 숙제를 하라는 자기암시로 받아들인다.

그러고보니, 숙제의 연속이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이 샘에서 물이 솟듯 계속해서 생겼었다. 삶으로 충만한 시간들이었고, 조금은 힘겨운 날들이기도 했다.


마일드메이, 집을 떠나온 이야기부터 해야한다. 작년 11월 주택시장에 집을 매물로 내놓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집과 이혼해야 할 시간이라며 청승도 떨었었다. 그랬는데 몇달후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뒤뜰에 정체를 알수없는 쇠파이프가 두개 올라와 있는 것을 부동산업자가 발견했고, 그것이 오일탱크가 땅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였다. 10년간 알지못했던 일이었다. 우리가 집을 살때 동일한 부동산업자에게 샀는데, 그 당시엔 그도 몰랐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집에 들어갔을때는 geo-thermal heat pump라는 다소 낯선 종류의 히팅 시스템이었고, 그 기계는 집의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랬는데 그 기계가 고장나서 재작년쯤 천연가스로 히팅 시스템을 교체했다. 부동산업자가 전주인에게 알아본 바로는 본인도 뒷뜰에 오일탱크가 묻혀있는 사실을 몰랐었다는 것이다. 


"오일탱크가 묻혀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부동산업자는 일단 난색을 표하고, 정부의 환경부에 연락하여 오일탱크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일로 인한 대지오염이 생겼을때 그 오염된 땅을 정화시키려면 막대한 돈과 작업이 필요한 일이라는 게 인터넷을 통하여 내가 찾은 사실들이었다. 집을 살때 집 점검도 했었고, 부동산업자도 몰랐고, 옛주인도 어떤 언급도 없었으며, 심지어 10년간 모르고 살았던 문제가 우리들의 발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불거질 즈음, 한가족이 우리집을 보러왔었다. 마일드메이 집을 지은 빌더의 손녀가족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집에서 놀았던 경험이 있는, 집에 대한 향수가 있어선지 상당히 주의깊에 오랜 시간 집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녀가 떠날때쯤 "할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전해주었다. 


어쨋든 그 이후에 오퍼가 들어왔는데, 조건이 "오일탱크 제거와 문제가 없다는 정부문서"를 요구하는 조건이었다. 너무 낮은 가격에 오퍼가 들어와서 일단 기분이 상한데다가 탱크 문제 때문에 심난해 있었고, 부동산업자는 오퍼를 진행하기보다는 일단 우리집에서 손을 떼려고 하면서 오퍼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부동산업자는 일단 주택시장에서 철수하자고 했다. 오일탱크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30년 부동산 경력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그리곤 발빠르게 우리와 빠이빠이 했다. 


이 오일탱크를 어떻게 해야하나가 우리앞에 떨어진 문제가 되었다. 오염이 되었다면 문제는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등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부동산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옛주인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법적인 것에는 "한없이 약한" 우리들에게 그런 상황으로 가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을 고소하는 방법인데, 그런 일을 감당할 여력이 있을리 만무했다. 주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정부에 연락하면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들은 토양검사 샘플을 채취해서 가져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문제가 엄청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주유소라든가 비지니스로 사용했던 탱크라면 문제가 될수 있지만, 가정을 데우는 수준의 오일탱크 정도로는 오염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오래된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신고하지 않고 파낸다는 것이다. 동네의 보험업자도 그런 경우가 종종있다면서 사람을 불러서 파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해줬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땅위로 솟아나온 쇠파이프만 잘라내고 묻힌 탱크가 없다는 듯이 마무리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천연가스 시설 공사를 맡았던 회사에 연락했다. 그는 오랫동안 히팅, 쿨링 사업을 하고있는데, 자신이 청년때 이집의 뒤뜰에 탱크를 묻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이도 정부인정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이 불거진 것이 겨울이었는데 결국 5월쯤 되어서야 탱크제거 작업을 할수 있었다. 땅을 파는 날, 조금은 조마조마했다. 어쩌면 30여년도 넘게 땅속에 있었고, 오랫동안 쓰지않았던 탱크에서 남아있던 오일이 새어나갔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다. 포크레인도 오고, 드디어 탱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탱크 주변의 땅들은 바짝말라 깨끗했다. 드디어 탱크를 들어올리자 탱크 주변에서 물같은 것이 조금 흘러나왔다. 탱크를 파내기전 그안에 들은 것이 무엇인가 검사했었는데 물이 들어있었다. 탱크안에 물이 들어있는 이유를 잘 알수는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물이 흘러내린 것일뿐 오일의 흔적은 없었다. 포크레인 기사와 난방회사에서 나온 두사람,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 땅속이 깨끗함을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오일탱크가 제거되고 그곳에 새흙을 채웠다. 복잡해질 수 있었던 문제가 그렇게 풀리니, 그때서야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후 얼마후 우리가 왕래하는 변호사사무실에서 두툼한 봉투를 하나 보내왔다. 그안에는 하우스 오퍼가 들어있었다. 빌더의 손녀가족, 즉 그녀의 남편에게서 온 오퍼였다. 그런 일련의 진행을 거쳐서 집을 팔게 됐다. 집이 마음에 들었던 그 가족은 아이들이 5명인 젊은 부부로 자신의 할아버지가 지은, 풍부한 자연환경을 가진 그곳에서 잘살아나갈 것만 같다.


우리는 사실 그집을 관리하고 사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주느라, 오퍼가 완성되고 1달도 안되어 이사날짜가 정해졌다. 그래서 이제 페이슬리로 이사온 것이 지난 9월 16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서 실제 페이슬리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느낀다.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하기로 하자.

'너나, 그리고 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이다  (0) 2017.05.02
다시 페이슬리에서..(끝)  (0) 2016.12.27
당분간은...  (0) 2016.06.26
사람과 사람들  (0) 2016.04.07
귀여운 엄마  (0) 201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