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이라는 KBS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이 있다. 일반인들과 약간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방송해준다. 가수 최백호의 구수한 나레이션이 돋보이는 다큐물이다. 최백호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출연자들과 만나기도 하는, 믿음이 가는 나레이터로 다큐물을 이끈다.
지난 1월에 방영된 "마을의 탄생 - 다섯 가족의 산촌일기"를 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다섯 가족이 힘을 합하여 대지를 구입하고, 집을 짓고,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산, 그 긴 여정의 함께함이었다.
살면서 사람 사이의 마음을 맞추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여러번의 회의를 통한 의견모으기, 함께 음식을 나누며 친교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예의지키기 등을 실천했다는 것같다.
어쩌면 그들은 행운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40대인 그들이 일구어낸 생활에 기반을 둔 우정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끝까지 그렇게 살수 있을까, 한편 의구심도 든다. 인간관계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능하면 불화를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 삶의 태도가 되었었던 것같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약간 손해를 보면, 그건 것들이 얻어지곤 했다. 나중에 보면, 손해도 아니고,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보너스를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삶의 방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그건 언제나 가능한 해결방법이 아니었다. 소위 "좋게 좋게 넘어가자"가 문제를 한켠에 쌓아둔 미봉책일 때가 많았다.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고 손으로 타닥타닥 덮어서 평평하게 해놓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달까?
처음에 사람을 만날때는 모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만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더이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때,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 관계가 틀어지게 될때, 단순히 그와 나와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엮여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복잡하고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대의와 개인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서로간에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일단락을 짓게 된다. 그것은 칼로 무베듯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 아니어서, 언제든 들고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감정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하고의 만남을 기피하게 되고, 은둔자처럼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은둔자들을 마당넓은 곳으로 자꾸 끌어내려 노력했던 나는, 요즘 자꾸 꼬리를 내린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그들을 너무 내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나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은둔자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는 말은 아니다. 모두가 "맞는 사람끼리" 소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니 이제는 쓸데없는 오지랍을 펼치지 말아야된다.
사회 구성원인 이상,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 사이에서 단련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적인 숙명이다. 힘들다고, 관계를 축소시키지 말고, 그안에서 굴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의미있는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다만, 섣부르게 사람들을 선동하는 버릇은 없애려고 한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중뿔나게 나설 필요없다고 나를 세뇌하는 중이다. 따뜻한 사랑방을 만들어놓지 않고, 불러내기만 하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삶의 사이클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조용해야할 때다. 내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보듬고 나아갈 여력이 없다. 다만, 옳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인간관계에 걸려서 후퇴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동체적인 성향을 포기하지를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누구나 고전을 면치못한다. 유기적인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고여있는 관계는 언젠가는 그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헤쳐모여가 있을 수 있다.
긴 겨울만큼이나, 여러가지 관계들로 마음이 편치않았던 나날들이었다. 보다 나은 대안을 꿈꾼다. 서로에게 활력이 되고, 삶의 작은 기쁨을 얻어낼 수 있으며, 종국에는 공동체적 지향을 함께 할수 있는 그런 인간관계를 말이다. 지금까지 서로를 알아온 것도 작은 것은 아니다. 신뢰라면 신뢰, 그런 것들이 한순간에 얻어진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고, 현물로 교환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가진 보물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살면서 맺게 된 이웃들과의 우정을, 지키기 힘들다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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