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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5월이다

꿈에도 그리던 맥컴퓨터가 생겼다.

진실을 말하자면, 딸내미의 꿈이 달성된 것이기도 하다. 애플 마니아 큰딸은 오래전부터 맥컴퓨터를 주장해왔다. 아이들은 모두 애플 노트북을 쓰지만, 집안의 컴퓨터 환경은 윈도우 PC였다. 딸은 나중에 컴을 바꿀때가 되면, 맥컴퓨터를 사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곤 했다. 오랜동안 윈도우를 사용하는데 익숙해졌었는데, 윈도우스와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은 윈도우스 10이든가, 그 이전의 버전으로는 더이상 컴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윈도우 버전을 이용하면서부터이다. 사용방법을 잘 숙지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컴퓨터가 오래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특별히 사진작업이 엄청 불편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 작업이, 수작업으로 오려다 붙일수만 있으면 그러는 것이 빠를것처럼 복장이 터졌다. 사진기에서 사진업로드하는 것도 주인의 심정을 알아서 후딱 해주는 것이 아닌, 컴퓨터에 내 마음을 맞춰야했다. 업로드할 사진 한장을 찾으려면 모든 사진을 샅샅이 뒤져야 하는등, 반복작업을 하게끔 했고, 노트북 화질이 좋지 않아, 마음에 드는 사진조차 없었다. 그동안 저렴한 컴을 선호한데 대한 보복이 분명했다. 데스크탑 PC는 바이러스를 한번 얻어맞은후 비실비실해져서 이사온 후로 그 컴은 다시 셋업하지 않았었다. 노트북을 이용해서 큐바 여행이야기도 간신히 올리긴 했지만, 더이상 노트북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그렇잖아도 글쓰기를 게을리하는 마음이 태산이었는데, 컴이 말을 듣지 않으니 내안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되고 있었다. 언젠가 남편과 스테이플스에 방문했다가 맥컴퓨터를 보게 되었다. 수려한 모양과 선명한 레티나 스크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글쓰기를 제외한다면, 아이패드로 대강의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당장 필요한 디바이스는 아니었다.


그랬는데, 27인치 우아한 맥컴퓨터를 생일선물로 받았다. 물론 가족들이 같이 이용하자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남편이 내 이름으로 컴을 사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생일에 제대로 된 생일선물로 감동받기는 거의 없는 일이다.^^) 

형식을 바꾸는 것이 내용을 바꾸는 계기가 될까? 


지난 1년은 세상의 진면목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온실의 화초처럼 살아오느라 주변이 썩어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낙관주의가 나로부터 진실을 볼수 있는 눈을 막았다. 모든 것이 다 잘되고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어려움에 대한 것은 내 마음에 정리가 된다면 함께 나눌 수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큰딸 나래의 한국행을 들수 있겠다. 한국 원어민 영어교사를 지원했던 나래는 해외동포 자격으로 취업비자를 받아야했는데,그애의 특별한 환경때문에 서류수속에 꽤 어려움이 있었다. 복잡하고 길었던 서류기간을 끈질긴 인내심으로 이겨내고, 올2월말 한국으로 나갔다. 제가 꿈꾸던 그런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


서류준비부터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나는 비자가 나올수 있게 되면서 마음이 더 조급해졌었다. 리쿠르터가 찾아준 곳과 인터뷰를 해서 통과가 되면, 더 볼것없이 바로 승낙하라고 몇번을 권고하곤 했다. 나래는 자신이 가야할 곳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직원복지와 월급등에서 맞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잡 오퍼가 왔는데도 거절한 적도 있었다. 시기를 놓쳐 3월 학기를 못맞추면 또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아무곳이나 가라"고 채근을 했던 나는 호되게 그애의 저항에 부딪쳐야 했다.


"엄마는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며 일정한 선을 그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그 이전부터 없었다는 이야기도 곁다리로 들었다. 그때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곳에 가지 않게되면, 직장생활을 즐겁게 할 자신이 없다, 그러면 불행한 일이다, 딸이 그렇게 되면 좋겠느냐"고 되묻는다.


어쨋든 그런 우여곡절끝에 지금의 학원을 찾았다. 공립학교가 아닌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을 들어보니 나래에게 딱 맞는 그런 조건이었다. 나래는 분당에 있는 캐나다 스타일의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메이플 베어"라는 학원에 1년 계약으로 취업이 되었다. 현재 2달이 지났는데 상당히 적응을 잘하고 있다. 유치원과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인교사 한명과 팀이 되어 학생들을 이끌고 있다. 한국도 좋고,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모든 것이 잘되어가고 있는것 같다. 처음 도착해서 감기로 오랫동안 고생했고, 미세먼저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등 그런 것들을 제외하면, 참으로 감사한 나날이다. 며칠전에는 부모들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기뻐한다. 캐나다에 이민오지 않고도, 한국에서 캐나다식 수업을 받는 그곳 아이들은 행운아들이다. 물론 꽤 비싼 수업료를 치루겠지만. 예전에는 사교육에 그리큰 돈을 들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었다면, 내 딸이 관계된 이상, 그리 부정적으로 말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 또한 무슨 조화냐 싶다.



그렇다. 내 삶에도 이렇게 UP and DOWN의 기제가 작동했다. 한국의 정치상황과 비슷하게 말이다. 단편적인 시각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느낀다. 이런 때 어떤 마음과 행동이 필요할까? 나에게는 이런 일들을 하나님이 계획하신다 믿는다. 하나님이 이런 일들속에서 나를 단련하신다 믿는다. 조금은 뜬구름잡는 것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안다. 그 뜬구름이 언젠가 언어가 되어나오길 기다린다. 


새 컴퓨터에 딸려온 자판기는 조금은 작은 느낌이다. 그러나 타이핑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형식이 달라졌다.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야 음식이 살아난다. 형식을 대체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왔는데, 그러면 안될 것 같다. 


5월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엄마의 90세 생신파티가 계획중이다. 한국에서 2명의 언니들이 왔고,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올 예정이다. 숫자로는 꽤 강력한 팀이다. 엄마의 90평생 삶이 조명받고, 행복한 엄마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