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나, 그리고 우리

한월수 여사의 화려한 90세 생신파티(2)

사진촬영이 끝난후 1부와 2부로 나눠서 행사가 진행됐다.

그럴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집안의 미모를 담당하는 두 자매가 한국어 담당, 영어 담당 1부 사회자로 선정됐다. 전체 총무를 맡았던 나의 선견지명이 사회자 선택에서 빛을 발했다. 두 자매는 똑같이 검은 드레스에 검은 리본을 달고 나왔다. 60을 향해가는 나의 바로 위 언니는 언제나 내 동생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 민폐 자매이기도 한데, 무대에 서니 그렇게 화려하고 이쁠 수가 없다. 또한 동생은 심리상담사로 하는 말마다 사려깊고, 말하는 모양이 영어든 한국어든 이뻐서 엄마는 동생하고 병원을 방문하고 나면, 병원 관계자들에게 대접받은 느낌이 드는지, 동생을 자랑하곤 했다. 나도 가끔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데, 나는 간신히 70% 정도를 알아듣고 버벅대다 오는데, 영어를 모르시는 엄마도 내 영어와 동생 영어의 차이점은 완벽히 꿰고 계신다.^^


어쨋든 6째와 8째는 이날을 위해 준비를 꽤 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는 날이기도 했다. 때는 일제 말기,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은 위안부로 끌려가는 참혹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아버지께서는 딸들을 결혼시켜야만 했는데, 엄마도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집으로 결혼이란 걸 해서 가게 된다. 사회자들은 이런 내용으로 엄마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영어로 공식석상에서 처음듣는 할머니 스토리에 2세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간 결혼인데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편감이던 남자도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이었던듯, 방 한구석에 있는 자신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단다. 그렇게 2-3달쯤 흐른후 엄마는 근처에 있는 친척집으로 도망을 쳤고, 그곳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했다. 하도 수상했던 시절이라, 도망나온 딸내미를 부모님도 혼내지 않고, 나중에 받아주셨다 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만난 남자가 우리들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 역시 결혼했지만 아들 하나를 두고 부인이 병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상처가 있는 두분이 만나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아버지는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셨었는지..로 끝나면 좋겠지만, 아버지의 불륜등, 애잔한 엄마의 스토리는 다음에 기회있을 때 하기로 하자.


4월 27일 캐나다 방문, 엄마와 머물렀던 언니는 사회를 위해 엄마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엄마가 가장 기뻤던 순간은 첫째 큰딸 낳았을때 아빠가 그 당시 고급스럽게 여겨졌던 율똥(?) 포대기를 사왔을때 였다고 했다. 두번째도 큰딸이 학교에 들어가서 공책에 글을 써왔을 때였는데, 그건 생각해보니 글을 알지못하는 엄마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기쁨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세번째는 자식들의 도시락에 넣어줄 밥이 아주 맛있게 지어졌을때 그때가 가장 기뻤다고 했다. 언니는 말미에 엄마의 기쁨은 모두 자식과 관계있는 아주 작은 일들이었다고 말했다. 


엄마, 혹은 할머니에게 특별히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말에 2세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사랑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됐다. 이점이 왜 중요하냐 하면, 한국말을 하는 2세들이 적고, 한다고 하더라도 말의 뉘앙스까지 알아듣기는 힘들어, 약간의 갭이 있기 마련이었다. 또한 손자 며느리, 손녀 남자친구들까지 초대된 이날 영어권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기도 했다. 6째딸의 재치있는 통역으로 함께 동참하는 모양이 되었다. 




큰조카 며느리 킴벌리


특별히 2부에서 노래를 선보였던 큰조카의 아내는 집안 행사에 언제나 조용히 있는 캐네디언 조카 며느리여서 보기에 안스럽기도 했다.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겉핥기식 안부 인사 정도니,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잘 몰랐었다. 조카 며느리 킴벌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작사 작곡하였다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가족의 일원이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킴벌리의 어머니가 만든 노래는 내 모습 이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람을 어떤 직위, 어떤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어떻게 보면 가스펠송같은 내용과 리듬을 지닌 노래였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눈가에 이슬을 맺기도 했다. 


2부 순서에서는 노래등으로 엄마를 기쁘게 하였다. 찬송부터 시작하여, 최근 노래 그리고 장사익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장사익 노래는 나의 남편이 준비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는데 엄청 인기가 있었다.^^

엄마는 예전에 그런 바램을 표현하셨었다. 자식들이 불러주는 "어머님 은혜"를 듣고 싶으시다고. 사위를 포함 딸들이 서서 어머님 은혜를 불렀다. 나중엔 모두 코멩멩이가 되었고, 노래가 끝난후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다가가 한명씩 엄마와 포옹을 했다. 90세 생신까지 건강히 살아있어 주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우리 모두는 눈물을 글썽였다.

순서 어디쯤에선가, 엄마도 한말씀하시게 기회를 드렸었다. 엄마는 인사의 말씀 대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내가 한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 제가 무엇이관대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엄마의 생일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심지를 박아넣었다. 생일을 위해 우리 모두는 하나의 꽃들이 되었다. 생일에 맞춰 확 피어나는 꽃들이. 하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일이었다. 각자의 형편들이 그다지 좋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그 난관들을 이겨내고 모였다. 그것만으로 모두의 마음이 뿌듯하다. 



조엘과 제시(6째 동생 아이들) 


막내, 9째, 8째네 딸들(왼쪽부터)


막내와 우리집의 막내들





'너나, 그리고 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냐면  (0) 2019.03.28
시간이 흘렀다  (0) 2019.03.22
한월수 여사의 화려한 90세 생신파티(1)  (0) 2017.05.17
5월이다  (0) 2017.05.02
다시 페이슬리에서..(끝)  (0) 2016.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