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죽는 게 어렵다니..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2월과 3월 연달아 두번을 응급실행을 하셨고, 각각 1주일 이상을 병원에 계셨었다.
처음에는 독감으로 분리되어, 철저하게 통제받는 병원생활을 하셔야했다. 병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마스크, 장갑, 가운, 차단안경까지 중무장해야 들어올 수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차단안경을 쓰면 1m 거리에 있는 엄마가 10m쯤은 거리가 되는 듯 느껴지고,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안경이란 벽이 있고 마스크란 방해물이 있어서 제대로 소통이 되는 느낌이 없었다.
이렇게 중무장하고 병간호하는 것은 얼마나 불편하던지, 규칙대로라면 코까지 써야하는 마스크를 반쯤은 내리고, 안경도 조금은 삐딱하게 써야 그나마 숨을 쉴수 있었다. 병실에 잠시 들어와서 약을 주는 간호사들도 들어오기 전에 모두 병실앞에 준비된 가운등을 모두 걸치고 입어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 다음엔 다시 다 벗어서 빨래통에 집어넣는다. 때문에 간호사들조차 문밖에서 일을 해결하려고 하기도 했다. 독감환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에도 놀랐고, 한번 쓰여진 가운등이 다시 빨래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그 경비를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엄마. 연달아 옆구리 통증도 호소하시고, 다리는 쥐가 날때면, 비틀어지는 것같다며 고통을 호소하시고, 숨도 가쁘고. 자식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과 잠오지 않는 밤을 지새우고 나면, 아침이면 더욱 기분이 가라앉아있곤 하셨다.
두번째 응급실행에서는 엄마의 심장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숨이 찬것은 심장이 제 역할을 하지않아 폐에 물이 고이고, 심하면 다리까지 붓는 그런 증세로 발전한 것이다. 숨을 거의 못쉬어 앰블런스를 불렀고, 그런 소식을 듣는 날은 내 한쪽 눈이 심하게 떨렸다. 그렇게 병원에 계실때면, 자식들이 많이 모일 그때쯤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기도 했다.
5월에 90세 엄마생신잔치를 준비중이었는데, 생일잔치가 다 뭣이라니 하면서, 빨리 데려가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시기도 하였다.
이렇게 두번의 병원행 이후 엄마는 급격히 쇠약해지셨고, 병원방문을 빼고는 모든 바깥출입을 저어하셨다. 엄마가 혼자 사실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 우리들의 걱정도 늘어났다. 자식집에 가시든지 어떤 결정이 임박했음을 감지하고는 했는데, 엄마의 의견은 살수 있을만큼 엄마집에서 살다가 온전치 못하게 되면 양로원으로 가면 된다는 의견이셨다. 우리집이라도.... 잘해드릴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말씀드려 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자고 싶을때 자고, 깨어나면 한국 텔레비전을 마음대로 볼수 있는 엄마의 집에 있기를 원하신다. 엄마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엄마의 집이 아지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집은 1베드룸 1거실 노인아파트이지만, 큰언니네와 동생네가 가까이 있어, 엄마를 언제든 들여다볼수 있으니 어쩌면 그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기도 했다. 또한 토론토에서 한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영 부근 아파트여서 최상의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아파트 관리도 잘되어있어, 토론토시에서 제공하는 노인복지를 최대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동생이 정부 지원 노인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그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엄마 목욕시켜 주는 사람이 일주일에 두번씩 오고, 간단한 청소와 빨래등을 해주는 이들이 다음주부터 오기로 했다.
그랬던 엄마의 놀라운 회복력은 엄마의 생일을 맞아 자식들이 먼거리에서 오면서부터이다. 바깥나들이를 전연 하지 않았던 엄마가 이번 생일잔치는 1박이 아닌 3박4일 일정으로 꾸며졌는데, 그 모든 것을 해내셨다. 우리들은 엄마를 새로 얻은 느낌이다.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은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곳에들 산다. 토론토에 3집, 워터루에 2집, 그레이 부루스에 2집이다. 토론토에서 워터루까지 1시간 30분, 워터루에서 우리집 페이슬리까지 2시간, 우리집에서 오웬사운드까지 1시간 다시 오웬사운드에서 토론토까지 3시간 이 거리를 3일에 걸쳐 죽 돌았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세째언니네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운전하여 형부랑 파티 4일전에 왔고, 그보다 먼거리 한국에서는 두명의 언니가 10여일전에 도착해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했다.
파티 이틀전에 시카고 동생네가 조카를 데리고 차로 운전해왔고, 그 다음날 한국형부가 비행기로 날아왔다. 1주일 짧은 일정으로 방문온 형부는 언니와 재혼한 새형부로 처가집에 인사차 오기도 해서 엄마의 설렘요소가 되기도 했다. 형부의 일정이 짧은 관계로 주말이 아닌, 주중 월요일인 5월8일날 대망의 파티를 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이라고 하니, 이또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가지, 와이파이가 없어 엄마집에 방문온 자식들이 소식을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없으니, 잠시일지라도 인터넷을 설치하기로 했다. 의견은 내가 냈지만, 엄마가 극구 지불하시겠다고 해서 엄마집에 인터넷도 설치했다. 카톡은 우리들의 메신저가 되어주면서 생일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생일파티 장소가 정해지는 데에도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가정이 있는 2세까지 모여야 하므로, 너무 먼 우리집은 탈락되었고, 중간지점에 있는 워터루 막내네 집으로 낙착되었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긴 했다. 막내는 미용실을 경영하는데, 그야말로 눈코뜰새없는 생활인이라, 손님맞을 준비를 제대로 할수 없다고 미리 못박았다. 제부는 몸이 조금 안좋고 아이들은 어리니, 온 집안 청소를 구석구석해야 하는데 벅차다는 것이다.
사촌오빠네가 가까이서 사는데, 자신의 집을 제공하겠다고도 했지만, 그래도 딸부자집에서 사촌오빠네에서 생일파티를 하는건, 좀 아니어서 오빠네 방문은 파티 다음날로 미뤘다.
음식담당은 세째언니가 맡기로 하였다. 1진이 음식재료를 가지고 파티장소에 도착했는데, 그 담날 도착했던 나는 전날의 이야기를 듣고서 거의 실신할뻔 하였다. 그동안 시간이 있어서 어느정도 준비를 해놓았으려니 했는데, 아름다운 새집이 오랫동안 청소를 게을리해서 그것을 치우는데 밤새 난리를 치렀다는 것이다. 파티후 남아있는 식구들 같이 잠도 자야 하는데, 집안 곳곳 쌓인 때를 거둬내느라 세째 네째언니 그리고 형부까지 말이다. 함께 청소하면서 얼마나 바쁘면 그리 사냐, 지천도 많이 들어야 했다. 그래도 강심장 막내이니, 준비안하고 사람들을 부를수 있지,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기도 했지만, 밤낮없이 1초의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는 모양을 아는지라, 욕하면서도 불쌍해지곤 했다.
나를 포함한 2진은 파티날 오전에 모였다. 음식준비를 위해서다. 이번 생신은 오로지 자식들의 힘으로 준비하자 했기 때문에 세째언니가 지휘하는 대로 음식을 장만했다. 3진들은 파티시작 바로전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데코레이션을 담당했던 조카 헬렌이 할머니 90세 생신 풍선을 설치하자 파티 분위기가 확 난다. 마지막 엄마를 태운 동생네 차만 오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가 된다. 그런데 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퇴근길이라 도로가 막혀 차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엄마가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실지 걱정이다. 일찍 오시고 싶어하는데, 주인공은 늦게 도착하는 것이 낫다고 마지막 차편에 엄마를 맡겼는데 말이다. 엄마가 늦게 오시니, 음식준비에 바빴던 자매들의 단장 시간을 벌수 있었다. 한국에서 에스테틱(스파)을 경영하는 언니가 세째언니를 눕혀놓고 맛사지를 해준다. 실컷 주무르더니, 얼굴이 갸름해졌다고 자화자찬이다. 한번의 쓸어내림으로 그리 될 수는 없겠지만, 그위에 화장을 제대로 하니, 언니가 한결 이뻐졌다. 나도 몇년만에 처음으로 막내딸에게 얼굴화장을 부탁했다. 안입던 치마도 입고.
사진촬영 시간도 벌고... 주인공의 늦은 나타남을 최대한 이용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행사시작 시간 1시간이 훌쩍 지나 도착한 엄마.. 참석자들은 일렬로 서서 박수로 환영했다. 핼쓱해진 얼굴이긴 했지만, 엄마는 자식들, 사위들, 손자손녀와 그 짝지들, 증손녀까지 엄마를 맞으며 환호하는 이들앞에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셨다.
엄마의 10딸 1아들 중에서 9명의 딸과 (둘째언니는 올초 다녀갔다) 그 배우자들 그리고 친아들 이상으로 엄마에게 효도하는 사촌오빠 내외를 중심으로 31명이 모였다. 파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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