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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안녕 2019년

그럴때도 있었다.

"예상되어지는 일들만 일어나는 것 같았을 때" 삶은 명료했으나, 심심했다. 지금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움직임이 내안에서든 내밖에서든 끊임없이 일어난다. 숨막히지만, 살아있는 것같다.


인생에 대해서 말한다면, 많이 알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아직도 겪어야 할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견하기도 한다. 기쁜 것만도 슬픈 것만도 아닌 감정들로 이 한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여전히 소극적이고, 말을 찾지못해 중언부언했었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들을 버리려 하지 않았고, 터뜨리려고 노력했다. 너무 기쁠 때도 "10가지가 다 좋을 순 없다"란 아버지의 말씀에 의지하며, 끼어드는 검은구름에 대처했다. 너무 슬플 때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들을 내안에 준비시켜, 그 고비들을 이겨넘기곤 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선천적인 낙천성이 시간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슬플 때조차도, 기쁜 일이 있으면 그걸 누려야 한다고 나를 다독거렸다.


오늘 아침, 일년간 읽었던 영어성경 소리내어 읽기를 끝마쳤다. 요한계시록 22장을 읽으며, 처음으로 녹음을 해봤다. 국어교과서 읽듯이 높낮이가 없는 평이한 목소리였지만, 나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녹음을 하면서 읽으니, 더 집중이 되긴 했다. 남편앞에서 한번 읽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무슨 구절을 읽는지, 잘모르겠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어떤 성경읽기를 시작할지 생각해야 한다. 한글을 빼고 영어로만 읽으면,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내용의 50% 이상을 놓친다. 한글과 영어로 다시 읽기를 도전해보나?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것은 미리의 의견이었다. 잘 읽는 사람의 영어성경 듣기를 하면서, 좀 따라해봐야 싶기도 하다. 읽기와 말하기는 꽤 다른데, 어쨋든 매일 아침 꾸준히 하면, 뭔가 쌓인 느낌이다. 


리디북스 셀렉트 회원이 되었다. 인터넷이 광범위해지면서 책읽기와 멀어졌었는데, 약간의 갈증이 있었다. 리디북스에서는 회원제로 꽤 많은 양의 책을 제공하고, 그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단다. 무료체험 1달이 지나고 2달째부터는 매달 10달러 정도 캐나다화가 나간다. 지난 2달간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역시 흥미로운 책은 소설책인데, 그중에서도 범죄소설, 범인을 찾아가는 형사 그런 것들이 재미있다. 데이비드 발다치가 쓴 세권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편소설이었는데, 책이 발간된 순서대로 읽게 된 것같다. 평범한 형사였던 그가 아내와 아이를 잃고서 노숙자가 되었다가 다시 현장에 투입되는, 일반 형사라면 풀지못했을 범죄들을 풀어나가는 그를 쫓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비만에 거구인 그가 노숙자 비슷한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그려본다. 너무 큰 아픔뒤에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못해서, 사회성을 잃어버린 그가 친구를 얻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였는데 이중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미국 정부 조직이 너무 많이 나오고 이중 스파이들의 이야기여서 범인을 잡기까지 단서없는 길을 걸어나가느라, 좀 맥이 빠지긴 했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까지는 재미있게 봤다. 범죄책에 심취해 있을 때 어느날 도시로 나갔는데, 갓길에 미니밴이 에머전시 불을 켜고 정차해 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후에 또 하나의 미니밴이 네거리 근처에 정차해 있다. 두 대가 접선하려고 하는데, 길이 어긋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백미러로 두 대가 만나나 한참 쳐다보기도 했다. 그날 또 하나의 미니밴이 똑같은 모양으로 서있어서, 아무래도 무슨 연관이 있는 미니밴이 아닌가, 혼자 생각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공지영의 "해리 1,2권"도 봤다. 신문에서 기사로 다뤄졌던 이야기라고 본다. 공지영은 선함이란 종교적인 가면을 쓰고 기부금을 거두고, 그를 돕는 표리가 부동한 여자, 그리고 그녀에게 당한 도시의 남자들이 벌이는 한판 굿판을 들여다봤다. 당사자들이 아니면, 누가 옳고 그른지 알수없는 그야말로 뒤죽박죽인 세상의 한자락을 보여주는 것같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좀 특이한 소설이다. 야성적인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세상, 아주 작은 갯마을에 떨어져 사는 한 여인, 그녀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결코 현실에 길들여질 수 없는, 그러나 언제나 그들안에 속하고 싶었던 그런 여인의 이야기랄까?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조개껍질을 모으고, 갈매기들과 사귀면서 남들처럼 살진 않았지만 "우아하게" 살았다. 세상은 그녀를 "늪지의 소녀"라고 부르며, 그녀의 존재를 비하했지만 말이다. 


김훈의 "공터에서"가 가장 최근에 끝낸 책이다. 어느날 잠이 안와서 전자책 서재를 뒤적여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의 서두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이 그려진날, 바로 내가 깨어 일어나 앉아 책을 읽는 그 새벽이었다. 12월 20일. 이런 것도 책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김훈의 문장은 참으로 건조하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으나, 너무 날까로와 베어질 것같은 문장들이 많다. 죽어가는 마동수의 쪼그라진 성기를 그린 문장은 흉칙함을 넘어 그남자의 삶이 그대로 응어리진 멋지다면 멋진 문장이었다. 아니 멋지다고 할수없는 "섬뜩한 꼬부라짐"이라야 하나?  

이런 문장을 한번 보자. "마차세가 밑을 닦아줄 때 마동수는 의식이 있을 때도 의식이 없는 척하고 아래를 내맡겼다. 마차세는 병자가 의식이 없는 척해주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병자의 성기는 까맣게 퇴색해서 늘어졌고 흰 터럭 몇 올이 남아 있었다. 사타구니 언저리에는 검버섯이 돋아났고 고환 껍질에 습기가 차 있었다."어려운 세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의 이야기, 삼촌의 이야기가 될듯싶다. 

척박한 가정과 환경에서도 한가족을 일궈내는 마차세를 통해서, 희망을 노래하려는 듯싶다. 



셀렉트 회원이되면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인터넷을 뒤적여봤지만 별수가 없었다. 제목, 출판사, 책의 카테고리 그리고 리뷰였다. 그러니 유튜브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처럼 전자책을 읽고나면 평점을 주는 것이 있고, 리뷰가 있는데 그런 것도 열심히 해야 한다. 요즘 세상을 사는 방법은 예전과 달라서 숨어있을 수가 없다. 내 의견을 좋아요라든지 나빠요 라는지 말해야 한다. 그런 것이 쉽지 않다.

한국에 가면 가고싶은 곳이 서점이었는데, 이젠 그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한번 들러서 리디 셀렉트에 없는 책은 한두권 사야지. 


그러고보니, 한국에 오랜만에 방문하게 된다. 연락이 되는 친구도 없지만, 친구 하나가 꾸준히 내게 언제 한국에서 만나자고 해줘서, 이번 방문을 결심했다. 큰딸도 보고, 가족들도 만나고. 결정하고 보니 잘했다 싶기도 하다. 2004년 아이들과 한번 방문했고, 이번에 두번째다. 또다시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전보다 이번에는 큰 혼돈이 없을 것이라 느낀다. 그동안 한국드라마도 열심히 봤고, 뉴스도 봤고 어느 것하나 뒤진 것이 없다. 


한국을 가게 되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좀 찾아봤는데, 카페 창업을 도와주는 카페 음료만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문의해보니, 하루 강습에 적지않은 수강료가 들어간다. 마음을 먹고, 배워야 하는, 꼭 창업을 할 사람을 위한 것인가 보다. 이곳 친구와 이야기해보니, 캐나다 사람들의 취향과는 맞지 않을 것이라 조언해준다. 한국의 언니도 카페가 그리 쉬운 비지니스가 아니라면서 신중히 하라고 한다.


맞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인생 후반전에 무엇에 힘을 쏟으며 살아갈 것인가? 계획은 이리저리 해봐도 좋다. 많은 아이디어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 인터넷이다. 일단 입문할 수는 있으니.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유튜버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한다. 그들에게 전하는 고마움은 구독과 좋아요일 것이다. 새해에는 그런 클릭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분에 넘치는 카메라를 작년에 구입했는데, 올해 잃어버렸다. 누군가가 어느 순간, 카메라 가방을 가져갔다. 토론토에 갔다가 잃어버렸다. 차에 싣고 다녔는데, 그날 5군데 정도 들렸었다. 짐작으로는 HENRY라는 카메라샵앞에서 였던 것 같다. 카메라샵에는 가지않고, 그 옆에 있던 렌탈 카 회사에서 볼일을 봤었는데, 운전자옆 좌석에 놓였던 카메라가 그 이후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런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것도 늙음의 증조이다. 중요한 영수증을 오랫동안 못찾는다던지, 기억 기능에 조금씩 균열이 보인다. 사진가방도 차를 잠그지 않아서 생긴 현상일 거다.


좋은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나니, 예전에 쓰던 카메라에 애정이 간다. 새 카메라 샀다고, 누군가에게 주어버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잊어버린 카메라는 소니 미러리스 풀프레임 카메라인데, 풀 프레임에 혹해서 샀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긴 했다. 밧데리 생명이 짧다. 꼭 보조 밧데리가 필요하다. 작년 포르투갈 여행갔을 때 오전중에 밧데리가 방전되어, 나중엔 스마트폰으로 찍어야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캐논 EOS Rebel은 그 문제만큼은 없다. 이제 내게 맞는 이 카메라로 다시 사진에 취미를 살려보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좋은 취미들을 많이 곁에 두게 되었다. 그중 뜨개질도 한몫한다. 인형만들기는 조금 주춤했고, 한국가게 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씌워볼 모자를 뜨고 있다.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 모자를 뜨는게 영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날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몇장을 떠놨다. 좋아하고,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뜨개질을 한다.


매듭을 짓는 날이다. 며칠전에 읽은 유다서 1장에 나오는 "긍휼, 평안,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해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나누기를 원하는 그런 정신이 아닐까싶다. 내가 받은 만큼,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이 언어를 주고싶다. 초성이라도 기억나게 해주고 싶다. 크리스마스날, 하루종일 일어나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불안하면서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둑이면서, 나는 이 단어를 떠올렸다. 미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또다른 아픔이다. 작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세상을 하직한 날이 23일이기 때문이다. 그날이 불안하게 지나갔다.


이제 새날이 밝는다.

아픔이 있는 모두에게 조금은 견딜만한 힘이 주어지길 기도한다. 내가 해결할 수 없을때 위를 바라보라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긍휼함을 얻고, 그안에서 평강과 사랑이 넘치는 새날을 맞게되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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