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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가을에 보내는 편지

가을이 깊어가는데, 잎이 아직 만족할만하게 물들지 않습니다.

어쩐 일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참에,

지난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오염된 공기가 잎들의 완전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늘 기사를 보았습니다.

 

도시보다야 공기가 맑은 이곳은,

공해때문이라기 보다는 뜨거운 햇볕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물들지 않고 있는 이파리들..

떠나야 할때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처럼도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 겨울이 오기전에 어떤 모양으로든

제 옷을 벗게 되겠지요.

 

가을이기에,

가장 편한 옷으로 입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심지어는 내 자신의 상념에게서도 자유로이,

잔잔한 노을같이 곱게 펼쳐지는 서정의 날을 갖고 싶습니다.

 

오래도록 실제적인 것, 현실적인 것, 가치있는 것, 쓸모있는 것만을

애지중지했던 실용주의에서 벗어나,

"그린 게이블의 앤"에 나오는 앤의 아주머니 마릴라 같은

채색되지 않은 무명같은 "밋밋함"에서도 벗어나,

무언가 치장을 하고 싶습니다.

 

언어에도 색깔을 입히고,

그 색만큼 내 마음을 칠하고 싶습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는 나뭇잎이 떨어져 두껍게 쌓인

수풀속에서 뒹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싸한 수풀에 찾아갔다손 치더라도..

아직 물드는 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까칠까칠한 갈색의 이파리들이 그렇게 숱하게 떨어져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페이슬리 강가, 카누가 출발하는 고정된 땟목이 있는 곳이지요. 우리의 산책로 입구에 있는데.

아직 물들려면 먼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소들이 한가로이 풀어헤쳐진 들판 너머로 보이는

드넓은 하늘에 맘을 빼앗기는 날들입니다.

 

하늘은 참 여러모습입니다.

 

잔물결 하나 없는 푸른 호수빛이었다가,

그 호수에 북쪽에서 떠내려온 눈뭉치들이 점점이 흩어져있는 듯했다가,

먹빛 산등성이들이 되었다가,

온 천지를 물들이는 오렌지밭이 되기도 하는,

 

그 내용물을 쉴사이 없이 뒤바꾸어 담는

용량을 알수 없는, 거대한 바가지가 되는 그 하늘이..

요즘의 나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나에게 장난감같은 예쁜 사진기가 있어,

길밖에 차를 세우고, 풍경들을 담습니다.

 

특별히 색이 변하는 어스름의 순간들은..

사각진 카메라의 렌즈가 너무 좁아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셔터를 눌러댑니다.

 

여기 그 사진들을 동봉합니다.

 

 

하루해의 마지막 빛을 받고 있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셔터를 누릅니다.

 

 

 

천지는 어두워가는데, 하늘에서는 아직도 마지막 행위예술이 펼쳐집니다.

 

 

 

불길에 쌓인 것처럼 보였어요.

이날 몇번을 길에 섰는지.. 결국 그 광경을 제대로 잡지도 못할거면서.

 

 

선생님의 짧은 편지에 조금 넘치는 마음을 보내는 까닭은,

바로,,,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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