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쉽게 묻곤 했다.
니네 언제 결혼할거니?
우선 그녀에게 물으면, 그녀는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라고,
슬쩍 웃으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동안,
만남이 10년이 되던 날에 결혼한 두사람의 결혼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그는 큰언니의 아들.
1살되던 29년전 캐나다로 이민와서, 20살에 여자를 만나 30살에 결혼한 그녀석..
여자같은 이름의 우순이에게 처음으로 집중해본 날이었다.
우순이는 그리 주목을 받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다.
공부를 썩 잘하고, 유능하고,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고...
그런 드러나는 조건들을 별로 갖추지 못한 우순은
그저 고등학교도 학점이 모자라, 야간학교까지 다니면서 간신히 졸업했고,
전문대학을 들어가서, 그를 졸업하기에도 실력이 달려, 2년이란 시간을 넘어 필요한 학점을 이수한 후에 간신히 졸업했다는 소식을 받기도 했고.
그가 대학에 들어가서 만난 파란눈의 소녀 킴(벌리)과 만나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순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동갑내기인 킴도 이제 30고개를 향하고 있는 참이니,
우리들은 언제나 그들의 결혼소식에 목이 말라했다.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말많은 이모들은
그들이 왜 빨리 합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을 소모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열변들을 토했었다.
우순에게 물으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대답만 돌아왔는데,
최근에서야 일하는 "나이키" 직장에서 계약직을 끝내고, 정식 사원이 되었으니,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말하는 준비는 "결혼자금 마련"이었다.
올봄 우순이가 드디어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프로포즈는 리무진을 빌리고, 신부를 태우고 멋있는 와인잔에 반지를 담가, 그녀가 포도주를 다 마신 다음, 그 안에 있는 반짝이는 다이아반지를 빼내는 식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우순이를 통해서 들었다.
우순이는 이렇게 전통 결혼식 절차의 테이프를 끊었다.
약혼반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날로부터 결혼식이 있었던 11월4일까지 매일을 결혼을 준비하면서 보냈다.
그 시간들이 오로지 결혼만을 위하여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결혼식날 알게 되었다.
우순(왼쪽에서 세번째)과 할머니, 그리고 네명의 베스트 맨들.
결혼식이 끝나고 시아버지께 인사하는 신부 킴벌리, 그 옆에 언니의 모습이 보인다.
신부 킴의 어머니(왼쪽)와 한국에서 결혼식 참석차 온 둘째언니. 그 뒤에 웃고있는 신사분은
시카고에서 오신 세째형부.
자, 한잔 받으시고, 잘좀 부탁드립니다.
우순과 킴이 시가쪽 어른들께 술을 따라 올리고 있다. 폐백에서.
우선 부모가 한국사람이니, 한국인들을 위하여 엄마의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뤘다. 결혼식은 초대받은자로부터, 교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결혼후에 피로연을 이탤리 식당에서 근사하게 대접했다.
케네디언들은 신랑신부에게서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그들은 결혼식 몇달전에 회답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결혼식을 준비한다. 그러니, 이 부분은 한국인 부모를 위하여 한국식을 첨가한 것이 된다.
개별초대장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1차 피로연에서 끝내고,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2차 결혼식 리셉션이 호텔에서 열렸다. 모두들 집에 들어가서, 파티복으로 갈아입고 일찌감치 호텔에 오니, 한 구석에 폐백상이 차려져 있다.
신부와 신랑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을 드린다.
절차나 의식이 정식은 아니지만, 병풍도 있고, 술잔과 술병도 있고 각종 한과가 차려진 상에서 신랑신부는 절하고, 대추를 치마에 받았다. 케네디언 하객들도 호기심으로 둘러서서 구경한다.
마지막으로 신부 부모를 상앞에 책상다리를 해서 앉혔다. 옆에서 거들어주는 사람이 아이들이 몇명의 자녀를 낳기를 원하는냐고, 그 수만큼 대추를 던지라고 하니, 신부 엄마는 하나 둘, 하면서 둘을 던지고, 신부 아빠는 한주먹을 쥐고 대추를 던지니 폭소가 쏟아진다.
호텔 한구석에선 하객을 가족별로 불러서 사진을 찍는다. 기념 사진 앨범을 만들 예정이란다. 덕담을 써넣어서 신랑신부가 보관할 것이라니, 나는 혼란한 중에 신랑측 가족들을 불러다 사진을 찍는 것을 도와줬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리셉션이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신랑 신부의 인사.
신랑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어오곤 했는데, 오늘은 우리가 만난지 10년 되는 날이고, 마침 토요일이여서 이날을 정했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리셉션 사회를 맡았던 사촌형은 "10년을 기다린 기쁨을 이들이 오늘 맘껏 누리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들의 기쁨에 그들을 쳐다보는 하객들의 오랜 기다림의 기쁨이 보태져 그 양이 터질듯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신랑을 호위했던 남자 들러리가 네명이었는데, 모두 우순이의 친한 친구들로 한국인들이었다. 신랑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과 나눈 우정을 일일이 소개했다. 여학생들을 꼬시기 위해 밤거리를 헤맸던 일까지,,, 지난 30년의 역사가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다.
우순은 신부 부모님에게 길게 인사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드리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갈수록 나빠져가는 한국말 실력이지만, 어머니, 아버지께는 한국말로 인사를 드린다"고 전제하고 "지난 30년간 길러주신 어머니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는 부모님을 잘 모시겠다"는 요지의 인삿말을 했다. 명료한 발음은 아니지만, 그의 인사에는 그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나는 몇번이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우순을 뒤이어 신부의 순서가 되었는데, 그녀도 모인 하객들과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들러리들에게 애정어린 인사를 한후, 그동안 한인여성회에서 제공하는 한국말 코스를 섭렵하며 배운 한국말로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아버님,, 저를 한식구로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장문의 편지를 또렷이 한국말을 읽는데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남편 우순은 그동안도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갖다주었는데, 앞으로 또 많은 것을 날라올 것을 믿는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내가 앉았던 자리는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앉아있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순의 친구들은 모두 오랜 사귐을 자랑하는 친구들이라며, 자신들도 동갑으로 교제 7년, 9년 되는 때에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결혼 준비는 친구들이 모여서 지난 10개월간 했다니, 그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닌 것이, 결혼 카드부터 리셉션장의 작은 소품들도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는지, 모두 혀를 찰 지경이었다.
디너 테이블에는 신랑 신부의 뽀뽀를 보고 싶으면 흔들라고 작은 종이 준비되어있고, 기념 초코렛도 우순과 킴의 이름이 들어간 특별히 디자인된 포장지에 싸여있었다.
초코렛의 이름은 "킴과 우순, 십년 그리고 그 이후..."이며 "킴과 우순의 가족 주식회사"의 제품인 이 초코렛의 뒤에는 영양가 산출표가 들어있었는데, 사랑 20%, 웃음 20%, 인내 20%, 정직 20%, 신뢰 20%로 100%의 성분에다가, 보너스로 골프가 60%를 차지해 160%의 영양가를 함유했다고 적혀있었다.
이날 신랑의 친구들에게 들으니, 골프 60%는 우순이가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나중에 넣었다며, 그래서 초과함량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의 각시가 그 모든 것을 디자인했단다.
초코렛과, 방울들과 리셉션장의 메뉴들.. 킴과 우순의 이런 로고가 청첩
장에도 사용됐다.
신부의 아이디어로 흰색과 파랑색의 제전으로 치러진 이날 행사는 꼬마 들러리들과, 여자 들러리들의 드레스가 흰색과 파랑으로 무늬놓아졌고, 리셉션장의 초대인사들의 이름표들도 눈꽃같은 공에 푸른색 이름이 박혀있었다.
결혼식을 온전히 두사람의 힘으로 (물론 친구와 부모의 약간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치뤄낸 그들은 앞으로 험난한 삶의 길이 펼쳐지더라도, 이겨낼 것이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댄스파티로 들어서면서 맨 처음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추고, 신랑과 신랑엄마, 그리고 신부와 신부 아버지가 한바퀴 무대를 돌았다. 그때, 언니의 눈에 흐르는 눈물과 엄마를 어루만지면서 무대를 도는 우순이의 눈물을 동시에 보았다.
이민와서 그럴싸하게 이뤄낸 것이 없다고 한편으로 자조하던 언니와 형부에게 평범함의 "힘"의 보여준 우순이, 내가 언니가 된 듯이 자랑스럽고 든든하다.
10년간 키워왔던 사랑이 녹아흘러서 이날 눈물과 사랑의 잔치를 꽃피운 두사람, 결혼식은 끝났어도 그들이 이뤄낸 그 감동으로 한동안 배부를 것이다.
그들을 재촉하며 빨리 합치라고 성화를 댔던 철없는 주변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그들의 기다림... 그것이 앞으로의 인생에 버팀목으로 작용하길 바라는 맘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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