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땀흘리고 일하는 더운 여름의 하루,
베짱이는 나무에 앉아서 기타를 두드리며 팝송을 부르고 있다.
여유로운 베짱이는 추운 겨울의 어느날 개미집을 노크한다.
"뭐 먹을 것 없수?"하면서.
내가 아는 베짱이중의 하나는 제 먹을 것을 만들어놓고 놀았던 "존"이라는 아저씨다.
우리가 하는 가게는 때마다 도매상에 가서 물건을 해다 날라놔야 하는데, 그 물건을 들이는 가게 뒷문의 옆집에 존의 가족이 살았다.
남편이 땀을 흘리며 무거운 음료수병들을 나르는 동안, 존은 집 뒤의 덱(대청마루?)에 앉아서 기타를 튕기곤 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남편을 개미로 존을 베짱이로 비유해서 부르고 했는데, 놀고먹는 것 같았던 존은 알고보니,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실속있는 비지니스맨이었다.
동네의 "카수"로 카니발이나 행사에 단골 게스트로 불려나가 목청 자랑을 한다는 것도 멀지않은 뒤에 깨닫게 됐다.
사실 "베짱이"인 존이 안된 것이 아니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면서 그런 여유를 부리지 못하는 남편이 안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내가 아는 또다른 여자 베짱이 중엔 "민디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남편의 옆에서 편안하게 팔짱끼고 남편을 지긋이 내려보며 삶의 여유없음을 흉보았던 그 여자.
그 여자는 어쩌다 가게를 보게 되면, 우선 신문을 집어든다. 세상사는 일에 관심이 많고, 일종의 "문자중독증"에 걸려서,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은 무언갈 봐야 시간을 잘 사용했다고 믿는 편이다.
어쨋든 그런 여자를 만나서, 참아내며 사느라 고생하는 개미 남자가 어느날 화를 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의 일이다.
"태평스러움"이 지나쳤던 것이었지. 나는 눈물 방울을 떨구면서,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여자는 아니잖아?하고 속으로 항변했었다.
부부싸움 오래 갈수 없으니, 남편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한국과 중국을 향해 그는 날아갔다.
그의 일을 내가 맡아하고 있다.
교회가는 날에는 그가 부탁하면 도매상에 들러서 물건들을 해다 주었다. 내가 손으로 들을 정도의 양을 그가 주문했었던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없으니, 이물건 저 물건 골라서 살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가 없는 동안에도 2리터가 넘는 쥬스들로부터 무거운 것들을 잘들 사간다. 무거운 물건은 어디 한두개인가? 각종 음료수로부터, 개밥, 고양이밥에 이르기까지, 한이 없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담아주는데, "제발" 덩치를 크지않게 해달라고 몇번이나 주문했다. 들어져야 말이지.. 어떤 것은 사다가 도로 내려놓는다. 눈비오는데, 다 들어나를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띵하다.
많은 물건을 차속에 집어넣는 나를 보고, 같은 교회를 다니는 애기엄마(본인을 챙기기에도 벅찬)가 도와줄까요?하면서 다가온다. 무슨 소리? 얼른가라고 등을 밀어보내고, 열심히 한다. 이런 일을 할때는 좀 짧고 활동하기 편한 겉옷을 입어야겠군 속으로 생각하면서.
남편은 떠나면서 어쩌면 눈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의 예보가 맞아서 어제는 눈이 왔다. 길은 미끄럽고, 방과전에 맞춰서 집에 가려는 내 마음은 또 급하고. 다른때는 집에 갔다놓으면 남편이 그 다음날 아침 출근할때 가져갔는데, 새물건을 기다리는 고객들을 생각하니, 집에 가져갈 수가 없다. 가게에 들려서 눈을 맞으면서 물건을 들여놓고, 일하는 사람에게 가격붙여서 물건 내다놓으라고 일르고 집에 왔다. 나도 일꾼이 다된 것이다.
8시전에 문을 열어서 오전 11시까지 일하는 날은 그야말로 신문 볼 짬이 없다. 커피를 준비해놓고(오늘아침은 잊어버려 손님을 기다리게 해야했다) 신문을 정리하고, 우유를 채워넣고, 영화 디비디 반납한 것들 정리하고. 그 전날 매상 계산하고, 주문할 것 주문하고. 담배 떨어진 것 포장 풀어서 진열하고. 헬퍼가 온 다음에는 은행가야 하고, 우체국 들려야 하고.
이런 일들도 남편을 떠보곤 했었다. 나는 "일의 효율"을 신봉하는 사람이거든. 한번에 몰아서 은행을 가고, 우체국도 그렇게 매일 갈것 뭐 있느냐는 식이었지. 그러나 일의 효율보다, 안정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걸 알아챈다. 두번 세번 걸음을 해야 할때도 있는 것이다.
물건사러 매번 시간있을때마다 가지 말고, 좀 몰아서 하면 안되는가? 그렇게 물어봤었을 수도 있다. 내가 해보니, 한꺼번에 많은 물건 해나르는게 보통 일이 아니다. 돈도 그렇고, 그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또다시 가곤 했나 보다.
남편은 한국에 가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 같다. 이곳에서 "재미없이" 일만 하다 갔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좋을까 싶다. 나는 그동안 너무 "얌체같은 베짱이"였다. 그에게 "수고"한다는 말은 많이 했으나, 그의 진정한 수고를 잘 알지 못했었다.
점심을 차려서 가면 그 점심을 먹을 사이도 없이, 이리뛰고 저리 뛰는 것을 시간배분을 잘하지 못한다고 흉보았던 것도 반성하고 있다.
이래서 역할을 바꿔봐야 하나보다. 남편은 노는 것이 왜 흥미로운지, 알게 됐을 것 같다. 그안에서 샘솟는 흥분과 긴장과, 즐거움을 말이다.
1주일 후에 만날텐데, 왜 이리 기다려지나 모르겠다. 그가 물고올 많은 소식들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보조를 맞추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걸 말해주어야 하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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