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루스 카운티 산책

눈에 침공 당한 부루스 카운티

눈에 침공당했다.

강풍을 동반한 폭설에 부루스 카운티가 호흡곤란을 겪고 있다.

 

많은 노인들은 한발자국도 집밖으로 나서지 못한다.

눈을 치워주는 차들이 분주히 길에 쌓인 눈을 뿜어내고 있다.

지난주는 일주일내내 휴교한 학교가 적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수요일 하루 정상수업했다.

수업이 파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에 다시 도로사정이 나빠져서 마을밖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이 친구집에서 삼삼오오 묵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런 길을 달려야 한다. 차안에서 마주 오는 차를 배경으로 도로를 담았다.

 

 

직원이 많은 큰 회사들도 며칠씩 문을 닫았다. 은행, 우체국 같은 공공장소는 당연히 휴무다. 그 주에 변호사와의 약속이 있었는데, 그도 출근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는 걸 알게 됐다.

 

식품을 파는 곳은 대부분 문을 여는데 먼곳에서 출근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서, 같은 동네의 일꾼들이 2배 이상씩 일을 하기도 한다. 간신히 아침에 출근했다가도 집에 돌아가지 못해, 잠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게 된다.

 

이런 날 주일이 끼어있으면 교회도 문을 닫는다. "교회가 문을 닫다"니!!!! 사실이다. 사람들의 형편에 민감한 이곳 교회들은 아침일찍 목사와 엘더들이 교회폐쇄 결정을 해서 전화통신을 한다.

한인교회는 당연히 예배를 드린다. 지난주 단지 내가 가지 못했을 뿐이다.

 

라디오 방송에선 아침부터 도로상황을 방송해준다. 하이웨이 곳곳과 주변도로가 막혔다는 방송이다. "Close" 소리가 빈번하다.

 

학교 휴교소식을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다. 정상수업인 학교는 우선 방송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각 학교별로 휴교결정을 해서, 방송사에 송고하면 그들이 읽어주는데, "school close"와 "school open"으로 나뉘어 발표된다. "크로스"는 말 그대로 그날 학교문을 닫는 것이다. 교사와 청소부까지 일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오픈" 방송뒤에는 "who can get there safely"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학교문은 엽니다. 안전하게 올 수 있는 사람은 와도 됩니다"하는 뜻이다. 이 날은 몇몇 교사와 할일이 있는 직원들이 출근한다. 정상수업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등 느슨한 일과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눈깨비가 오는 날의 풍경.

 

 

 무슨 가게인지, 전연 감을 잡을 수가 없구먼그려. 역시 차안에서 찰깍!

 

이 동네에 처음와서 "스노이 데이"를 맞게 됐을때 "오픈"하면 무조건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아파서 죽게 됐을지라도" 학교에 가야 했던 게 우리 어렸을 때의 불굴의 정신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런날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은 부모가 일을 가야 한다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아이들이 많고, 학교에 갔다고 해서 교사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어쩌면 오히려 짐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일들을 지나, 우리 아이들은  "스노우데이"가 주는 짧은 방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만만 눈이길래 이렇게 모두를 얼려놓는가?

 

일기예보를 보면 스노우 대신에 flurry도 잘 쓰이는데, 성기게 날리는 눈을 말할때 쓰이는 것 같다.

 

Snow는 가장 일반적인 눈을 가르킨다. 

이곳에 다른 말들이 붙어 snow를 강조하게 되는데,

snow storm이 되면 눈보라, snow squall은 진눈깨비로 볼 수 있는데 이런 날 밖에 나가면 곤경을 치르게 된다.

이밖에 blizzard는 눈폭풍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모든 것보다 엄청난 양의 눈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눈폭풍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눈이 오지 않더라도, 강풍이 불면 그간 쌓였던 눈들이 휘날려 snow storm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지난 목요일날 치과 약속이 있어서 나가는데, 집앞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눈보라가 심했는데, 집을 나서다 보니 시 소속 제설차가 도로를 치우면서 뿜어낸 눈이 우리 드라이브웨이 입구를 막아놓은 것이다. 후진과 전진을 계속하다가 뒷바퀴를 눈속에 박았다. 드라이브 한편에 치우쳐서 박혀있는 차를 그대로 놓고, 또 다른 차로 시도했으나 그것은 몇 미터도 진행하지 못하고 또다시 눈길에 파묻혀야 했다. 헌 담뇨를 길에다 깔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남편과 나는 멋적게 웃으면서 외출을 취소했어야 했다.(전날 눈을 치웠던 것만 믿고 그냥 돌진했던 우리의 불찰이었다)

 

사실 그날 길을 나섰더라도 우리는 도로 어디쯤에서 차를 세우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라도, 이런날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휴론 호수와 조지안 베이를 끼고 있는 부루스 그레이 카운티는 눈으로 유명한 곳이긴 하다. 매년 한두번씩 치를 떠는 일들이 지나고 나야, 겨울이 그 꼬리를 보여준다. 매년 당하는 일이지만 올해는 더욱 특별한 것처럼 생각된다. 하염없는 눈발을 보며,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들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 대로 어려움이 많다. 우리 가게를 예로 들면 정기적으로 배달되야 하는, 우유, 빵, 신문, 칩스 등이 도로 사정 때문에 지연되거나 취소되곤 한다. 이들 배달업체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은 마을의 소규모 편의점인 우리 가게는 때아닌 호황을 맞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타지역의 큰 쇼핑몰에 가던 발길을 돌려 가까운 곳에서 시장을 보기 때문이다. 학교를 쉬는 아이들은 집에서 할일이 없으니, 무비를 많이 빌려간다. 눈을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가게 바닥을 자주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런대로 매상이 높았던 것은 불행중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날들이 길어지면, 우리의 장사도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도매상 가기가 쉽지 않아 선반이 비어가면, 또 제대로된 장사를 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집 1.

 

 

집 2.

 

 

집과 도로

 

겨울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보따리가 풀리면 눈길 운전에서의 경험담들이 열을 발하게 된다. 누구나 한두번씩은 미끌어진 적이 있으며, 화이트 아웃된 도로의 한복판에 서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심하면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차를 폐차까지 한 사람도 많다. 바로 우리 가족이 부루스 카운티에 살면서 2대를 폐차한 대단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에겐 창밖에 쌓인 눈처럼 "눈으로 겪은 사고"들이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이고, 이게 한번 터뜨려지면 남자들 군대갔다 온 이야기는 저라 하라 할 정도로 사연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모두의 가슴이 새가슴이 아니될 수 없다. 마음이 가장 나쁜 때는 눈때문에 외출을 포기했으나, 너무 소심한 결정이 아니었는가 하는 후회가 들때이다. 지난 일주일간 나가야 하는 일들을 모두 제낀 나는, 몇번씩이나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나마 마구 눈이 쏟아져주면 집에서 편히 쉬련만, 날이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하면 내 마음도 덩달아 그렇게 된다.

 

혹자는 이 동네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을 눈 날리는 긴 겨울과, 자주 막히는 도로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름에 성시를 이루는 것을 보면, 인구 밀도가 올라갈 듯도 싶지만, 눈폭풍을 경험하면서,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큰 사업체들도 겨울 때문에 이곳에 투자하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되집어 생각해보면 그런 점이 부루스 카운티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혹독한 겨울을 지내면서 사람들은 겸손해진다. 엔간하면 겨울에 움직이는 것을 자제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부족한대로 경영해 나가고, 은행이 문을 닫아 불편하면 또 그만큼 조용히 기다린다. 이런 일들이 도시에서 가능할까?

 

어쨋든 "작은 새가슴"으로 이 겨울을 무사히 나는 것이 우리들의 일차적 목표이다.

 

 

 

처마끝에 달린 눈이 커텐처럼 드리워져 있다.

 

 

요즘은 거진 매일 이렇게 눈치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