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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페이슬리를 떠나면서

이제 만 하루를 남겨놓고 있다. 모든 서류상의 이전이 완료되는 시점이.
약간의 공사를 한 다음에 이사를 하게 될 것이다.

어쨋든 내일이면 우리는 헌집보다는 새집에 많이 가 있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 페이슬리에게 "싱싱한"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다.

 

말을 시작하고 보니, 페이슬리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페이슬리에는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그들에게 일일이 떠남의 인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내 마음이 애잔해진다.

 

헬렌과 폴은 지난 주말 파티를 열었다. 물론 우리를 위한 파티는 아니었고 ㅎㅎ 여름과 겨울 한차례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수다방을 마련해준다. 그들은 페이슬리에 이주해온지 우리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은데, 그들의 마을 참여도는 우리 가족의 몇배쯤의 크기이다.

 

전입하게 된 동기도 유별난 것이 다 쓰러져가는 옛방앗간을 사서 들어왔다. 지상 5층, 지하2층의 건물, 1832년에 지어진 것이라 하니 150년도 더 된 건물이다. 한 20여년간 비어져있어, 지나가는 날고 기는 짐승들의 안식처로 활용되었었다. (내일 건물 외관을 찍어서 올려야겠다)

 

 

방앗간 천정에는 이런 장식이...

 

 

"자연 방앗간"이란 간판을 달고, 기념품 가게를 연 폴과 헬렌.

 

 

사람들이 모여들기전, 2층에 가니 고풍스런 의자들과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지요. 마루의 색이

모두 다른 것 보이시지요?

 

장소도 동네 말미에 있어, 외진 것이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귀신이 나옴직한 그런 음침한 곳이다. 그들은 그런 곳을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거미줄을 걷어내고, 작은 짐승들을 쫓아내고, 그들이 부려놓은 각종 배설물들을 다 청소해내고, 그곳에 살림을 차렸다.

 

갈때마다 그 건물이 달라져보인다. 그들은 그곳에 예술품들을 전시하고 기념품 가게를 만들어놓았다. 페이슬리의 또다른 명소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대단하다.

 

이번에 가서 보니, 2층도 많이 정리되어 있었다. 마루바닥에 흠집난 곳은 흥부집 아이들 떨어진 옷 기워넣듯이 중간중간 잘라내고 맞춰넣었다. 고물 방앗간 장비들도 다 청소해서, 그것으로 장식품을 삼았다.

 

물리학 교수를 하다 은퇴한 헬렌의 남편은 그런 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자연과 역사가 쉼쉬는 곳.. 그들은 폐품에서 보석을 만들어낸 것 처럼 보인다. 그런 정신을 나는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

 

그들은 또한 사람들을 발굴해낸다. 예술가들, 특별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고 또 그들을 동시에 초대해 서로에게 친구가 되게 한다.

 

나는 이번에 가서 젠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판화 작가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 학교 행사 때문에 알게 된 60대가 가까와보이는 여성이다. 젠 뿐만 아니라 왜 이사가느냐고 많이들 물어온다. 처음에는 고등학교가 가까와서,,, 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속임수를 쓰지 않고, 집이 마음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리고 페이슬리에서 떠나고 싶지 않지만, 집이 나를 끌어서 어쩔 수 없이 간다고 설명한다.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에서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박장대소도 하고, 또 홀로 있게 되어도 그다지 참담하지 않다. 좋아하는 음료수를 마시며, 서성대며 눈이 마주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이 나라의 스타일이 이제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소란스러움이 없는 대신 조용한 대화들이 있다.

 

일찍 집에 가야해서 나가는데, 헬렌과 젠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사인 젠의 남편이 셔터를 누르고 있어서, 내가 나가면서 나도 한장 찍어야겠다고 끼어든다. 페이슬리의 것들이 추억이 될테니, 나에게 특별한 두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게 되어 기쁘다.

 

 

아이들 학교에서 마지막 "아침식사 클럽" 봉사가 있었다. 한학년을 마무리할때나 크리스마스, 혹은 부활절때, 전 봉사자들이 나와서 학교 모든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아침을 제공하는 날이다. 우리는 이것을 "큰 아침식사 Big breakfast"라고 부르며 일년에 두세번 정도 해왔다.

 

이날 음식을 타가는 작은 아이들을 유심히 본다. 내 아이들이 저랬는데 하며 그동안의 페이슬리 세월을 느낀다. 식사가 끝나고 설겆이를 대충 마치고 있는데, 학생들이 모두 강당에 모여 "1인 인형 쇼(?) - 말하는 인형을 들고 한사람이 말을 주고받으며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하는-"를 본다.

 

함께 보자고, "아침식사 클럽"의 대장 샤론이 내 손을 잡아끈다. 조금 있다가, 내가 갈 시간이 되어서 그녀에게 지금 가야겠다고 귓속말을 하니, 잠깐 기다리라 한다.

 

그러더니, 진행자 앞으로 가더니 마이크를 옮겨받는다. 교사와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방송을 한다. 아침식사 클럽이 6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봉사한 사람이 있다. 그녀가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된다. 누가 아는 사람 있는가? 하면서 아이들을 둘러본다. 아이들은 알고 드는지, 손들을 높이 쳐든다. 그녀는 내 막내 이름을 말하면서 "미리는 알고있지?" 묻는다. 미리가 "우리 엄마?"라고 말하자 그녀가 맞다면서 나를 호명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가서 좋은 인사말과 함께 선물을 받았다. 이사가는 곳에 장식하라고 체리 모양이 들어간 사기 물병과 아침식사 클럽 로고가 들어간 큰 가방이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아이들 학교 끝나기 하루전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매년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에서 한명씩을 정해 "로리에 상"(LAURIE)을 주는데, 올해 둘째 루미가 중등부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루미에게는 비밀이라면서 참석을 당부한다.

 

루미가 받은 상은 페이슬리 태생의 한 소녀, 일찍 세상을 떠난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그 가족이 제정해서 매년 시상하는데, 그 소녀가 지녔던 학구성, 삶에 대한 진취성이 두드러지고 각 방면에 탁월함을 보인 아이들이 뽑힌다고 학교측이 설명한다.

 

 

우리가 떠나는 마당에 인정해준 페이슬리가 고맙다.

 

한국 학생들과 이곳 아이들이 틀린 점 중의 하나가, 이곳 아이들은 결석이 잦다는 것이다. 우선 학교에서도 아픈 아이가 학교에 오면 좋아하지 않는다. 감기 정도로도 저학년같으면 집으로 데려가라고 전화가 온다. 그리고 가족여행이 있으면 당연히 학교를 빠진다. 어떤 아이들은 상습적으로 "My feeling is not good(단순히 번역하자면, 기분이 안좋다?)"이라면서 조퇴를 한다.

 

나는 종종 한국학생들과 이곳과 다른 점을 우리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우리는 아프더라도 학교에 빠지지 않는 것을 최고의 덕으로 알았었다고, 말이다. 미리는 이 말을 유심히 듣더니, 자신의 목표를 "개근"에 두었다.

 

지난 봄방학때, 미국 삼촌집에 가게 될 기회가 있었다. 하루 학교를 빠지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난색을 표했다. 어쨋든 그렇게 애써서, 지각 하루도 없이 완벽한 개근을 했다.

 

개근상은 원래 없고, 예전에는 4학년부터 제법 많은 아이들을 선발해서 우등상을 줘서 위로 두애는 매년 상장을 받았는데, 미리는 그런 언니들을 부러워했다. 미리가 적격자인 4학년이 되면서는 교장이 바뀌더니, 예전처럼 여러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1명만 줘서 작년에 실패하고, 올해는 아예 우등상도 주지 않았으니(조회 시간에 참여해서 알아버렸다) 언니가 안 받았다면 모를까, 미리가 얼마나 실망했을지 나는 익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날, 나는 상장을 만들었다.

 

"상장, 이 사람은 1년 동안 학업에 충실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뿐 아니라,
개근하였으므로 상장을 줍니다. 주는 사람, 엄마와 아빠"

 

이런 내용을 영어로 담아, 비전문적인 상장을 만들어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때, 집안의 온 식구를 불러서 시상식을 했다. 상금 40달러와 함께. 딸의 눈가에 방울이 맺힌다. 나머지 아이들도 지난 1년간 수고했다고 20달러씩 선심을 썼다.

 

큰 사고나 잘못없이 페이슬리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페이슬리에서 새집까지는 차로 겨우 30분 거리이고 가게는 이곳에서 계속 운영할 것이니, "이별"은 너무 큰 단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같아서는 생활 공간을 페이슬리와 계속 함께 할 것 같다.

아이들 친구들도 자주 놀러오라 하고, 많지는 않지만, 나의 친구들도 오며가며 들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뿐이지, 아마도 우리는 차츰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새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겠지.

 

내 사랑, 페이슬리야,
작별인사를 해야 할때다.

 

나의 제2의 고향,,, 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