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온다. 머리를 잘 손질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삭발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웬 삭발이냐구? 아 뭐, 이쁜 아가씨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건강한 남성이나, 여름내내 뛰어다니느라 머리가 축축히 젖을 "보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 좋은 방법이 있다.
"돈 안들이고, 타인의 시선도 받고, 선행도 하는" 삭발식이 여름의 첫자락이면 캐나다 곳곳에서 열린다.
바로 "Cops for Cancer"행사이다. 일선 경관들이 주동이 되어 시행되는 암치료 기금 마련 행사이다. 이들은 그들의 우락부락함의 이미지대로 기금마련을 위해 삭발을 선택했다.
아빠가 아들의 머리를 밀고 있다. 경관아빠를 둔 에릭군,
자랑스러운듯.
차근차근히 살펴보자.
에드몬톤의 경관 게리 고우렛(Gary Goulet)씨가 암에 걸린 5살짜리 소년 라일 조젠슨(Lyle Jorgenson)군을 만난 것은1994년이었다. 소아 암환자로서 방사선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었던 라일군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게리씨는 그 소년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 당시 본인은 이미 빡빡머리였던지라, 동료 경관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삭발식을 가질 것을 의논했다. 학생들에게 "민머리가 쿨하다는 걸 보여주기" 로 했던 것이다.
동료들은 교정에서 삭발식을 단행했다. 그 소년을 위로하고, 학생들에게는 병으로 인한 탈모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적인 홍보 효과도 있었다. 이 일은 여러 미디어의 관심을 받게 됐다. 그중의 한 옹호자였던 암환자 딸을 가진 어머니는 각 경찰과 연계해서 이 운동을 확산해나갈 것을 권고했다.
게리씨는 캐네디언 캔서 소사이어티(Canadian Cancer Socirty)와 협력하여, 이 캠페인을 확장해나가게 됐다. 경관들은 5월초쯤이면 발동을 건다. 우선 지원자를 찾고, 그들은 동료, 친구, 이웃, 친척들에게 지원(pledge)를 요청한다. 이 프렛지는 "암환자들을 위해 우리가 삭발할테니, 좀 도와주시오"라는 뜻이다. 그들은 일인당 적게는 몇십달러부터 많게는 몇천 달러까지 모금한다.
이 운동이 이제는 경관뿐 아니라, 일반인들과 학생들에게 퍼지고 있다. 많은 학교에서는 이 행사에 동참하는데, 특히 여학생들의 긴 머리는 암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꼬마들을 위한 가발을 만드는데 소용된다. 학교에서는 자원하는 학생에게 모금할 봉투를 준다. 이를 가지고 학생들은 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받는다.
막내가 속한 마일드메이-캐릭 퍼블릭 스쿨(Mildmay-Carrick Public School)에서는 오늘 이 행사가 있었다. 막내 미리는 긴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다. 가족과 교회 식구들에게 지원받은 금액은 109달러 50센트. 미리가 "삭발"을 했더라면, 조금 더 많은 돈을 걷어들일 수 있었겠지만, 그건 본인도 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고.
전교생이 강당의 찬 바닥에 앉아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자식과 손자손녀가 머리를 자르는 학부형들을 위한 의자가 뒤에 마련되어 있었다. 학생 20여명이 참여했다. 그중에서 남자아이들은 100% 머리를 밀었고, 긴 머리 여학생들은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잘라냈다.
아직도 에릭군. 아빠가 시작하고, 기계를 미용사에게 넘겨줬다.
동네 미용사 두명이 동원돼 아이들이 불려나와서 의자에 앉는다. 그러면 진행자가 자원자에 대한 짧막한 소개를 시작으로 그들이 이번 행사에 임하게 된 동기와 모금한 액수등을 소개한다. 한 꼬마는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개구장이들이 말한 짓궂은 대답중에는 "여름이 오니, 더워서 자른다" "미용실값이 들어가지 않고, 날보고 박수쳐주는데 어찌 안하겠는가?" "엄마가 제발 머리좀 짧게 깍으라고 해서 자른다" 등등 귀여운 멘트들도 많았다.
미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보면 암환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암은 더이상 멀리 있는 병이 아니고 가까이, 우리 가정에도 올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암이 끊어질 그날을 위해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고 말한다.
내가 나중에 "암이 사라진다고?"하면서 토를 달려고 하자, "어, 어, 어!! 그건 내 희망사항이니까, 덧붙이지 마세용"한다.
미리 머리가 이렇게 매일 이뻤을까? ㅎㅎ 아니다. 이건 기념사진이니깐두루.
사실 머리카락이 길고, 어미가 신경을 쓰지 못해서, 정신없기가 오백년이었다.
짧아져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미리는 너무 서운해 했지만서도.
자 이제 시작해 볼까? 가운을 두르기 직전.
요렇게 변했다. 친구들과 함께. 그런데 사진이 왜 흔들렸지??
이날 최고 모금을 한 가족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딸이 모두 동참한 한 가정이었다. 그 아버지는 꼬랑지머리에 덥수룩한 턱수염이 있는 "예술적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이날 삭발했고, 수염조차도 밀어냈다. 그들의 모금액은 1500달러여서 박수를 받았다.
아들 딸과 함께 모금에 동참하고 삭발한 아저씨.
이날 행사장에는 14살짜리 암에 걸린 소녀가 나와서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암치료를 위해서 자주 여행을 다녀야 하며, 여러가지 힘든 일이 있는데 주변의 후원이 없다면 그 시간들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또다른 환자 금발머리(가발) 소녀도 후원에 답례하는 인사를 했다.
이렇게 모여진 돈은 암환자에 대한 보조와 연구기금등으로 이용되게 된다. 그간 이 행사로 16밀리언 달러가 모였단다. 마일드메이 학교의 총모금액은 4,500달러였다.
무슨 병이건 행복한 "질병"은 없다. 특별히 암은 그 치료가 어렵고, 고통이 커서 본인과 가족들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긴머리 소년이 박박 머리를 밀어가는 우스운 상황으로 대치될만하지는 않다. 그러나 언제나 울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그런 면에서 경관들이 솔선수범하는 이같은 행사는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신선한 산소공급같은 효과가 있겠다. 그리고 암연구에 박차를 가해서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좀 요원한 듯한 희망도 실어본다.
'나래 루미 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디칼 캠프의 특별한 맛 (0) | 2007.07.19 |
---|---|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에게 (0) | 2007.06.29 |
그들이 정말 행복했을까? - 동화속으로 들어가보기 (0) | 2006.05.17 |
1박 2일의 파티... 그것이 남긴 것 (0) | 2006.05.03 |
30시간 굶기 (0) | 2006.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