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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그들이 정말 행복했을까? - 동화속으로 들어가보기

** happily ever after **


"... 그리하야 왕자와 공주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happily ever after"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동화들에 단골로 쓰이는 이야기 말미 장식용 멘트이다.

 

호기심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로 잘살았을까? 관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뮤지컬 "Into the Woods(숲속으로)"는 이런 동화가 보여주는 뒷이야기까지 담고있다.

 

전통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공연된 적이 있는 "숲속으로"를 아이들 학교에서 무대에 올렸다.
21개의 상당한 노래가 들어있는 대작이었다. 이를 6학년부터 8학년으로 구성된 아이들이 소화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였으나, 여러 동화들이 중첩되어 볶은밥같은 맛을 내는 극 가운데 제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잭과 콩나무" "신데렐라" "Little Red Ridinghood" 등의 동화속의 주인공들이 한 무대에 오른다. 아이가 없는 "사이가 좋지않은 빵굽는(베이커) 부부"를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들이 따로 또 같이 버물려지는데, 극은 각자의 "소망"만이 튀어나오는 불협화음으로 코메디적인 부분도 많이 있다.

 

버르장머리 없는 잭의 폭탄맞은 것 같은 머리, 아이의 관심을 도통 무시하는 가난한 잭의 엄마. 어려서 버려진 베이커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르고, 마법에 걸려 추물이 된 마녀는 베이커 부부를 이용하여 본래의 행색을 찾으려 혈안이 되고. 이뿐인가? 높은 탑에 갇힌 라푼젤 공주는 자신을 구해줄 핸섬한 왕자를 기다리고.  신데렐라는 오로지 궁궐에서 베푸는 잔치에 가고싶어 안달이 났으며, 왕자들은 더 이쁘고 고운 여자를 찾기위해 온 에너지를 그곳에 모은다. 

 

어쨋든 이런 모두의 소망이 일정부분 이뤄져 무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여겨졌다. 출연진 모두가 나와서 "..happily ever after!!!"로 목청을 높이며 노래를 부르고나자, 나레이터가 "...to be continued"라고 사족을 단다. 아직도 말해야 할 그 무엇이 남았는가 갸웃거려진다.

 

2막은 요술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의 나라"에서 잭이 훔쳐온 금달걀을 낳는 닭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하아프 때문에 거인이 이땅으로 도래한다. 동화속 내용으로는 거인이 콩나무를 타고 내려오다가 떨어져죽은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어쨋든 이 무대의 스토리는 이렇게 된다.

 

거인은 세상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인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들을 제물로 바친다. 그 제물들은 함께 있었던 나레이터, 라푼젤 공주, 베이커의 부인까지 계속 숫자가 늘어간다. 마녀를 비롯해 모두는 저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사지로 밀어넣기 위해 애쓴다.

 

원인을 제공했던 "잭"에게 책임을 묻자, "잭"은 자신의 소를 판 값으로 "요술콩"을 준 베이커를 원망하고, 베이커 부부는 아이 임신을 위해 마녀와 맺었던 약속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마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정작 거인이 타고내려왔던 콩나무는 신데렐라가 자신의 노란 구두를 가져간 값으로 받았던 콩에서 난 것. 신데렐라는 작은 콩을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게 던져버려서 이런 결과가 된 것을 알게 된다.

 

어쨋든 누구 하나의 잘못이랄 것 없이, 인간의 욕심들로 이 세상이 잘못 경영되어 이런 일을 자초하게 된 것이라는 걸 관객들은 알아차린다.

 

사람들은 모두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신데렐라는 궁궐에 들어가지만, 왕자의 바람기로 인하여 행복할 날이 없고, 베이커는 엄마없는 아이를 다시 맡아서 키워야 하는 제 신세를 참아낼수가 없다. 라푼젤은 높은 탑에서 왕자에 의해 구출되지만, 결국 거인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만다.

 

새들과 대화가 가능했던 신데렐라가 새들의 도움으로 거인을 무너뜨리고 희생을 치루고 남은 사람들이 일상을 회복한다는 내용으로 꾸며져있다.

 

무대는 생나무 여러그루를 벌목해와 깡통에 물을 담아서 장식해놓아서 정말 숲속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여기에서 "숲속"은 사람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헤매는 세상쯤으로 보여진다. 길을 떠나서 어둡고 막막한 곳에서 "밝음 혹은 어둠의 세력"들의 도움을 받아 원망을 이루는 곳.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다가 큰 "희생"을 경험하게 되는 곳.

 

인생은 동화처럼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더라"로 끝나지 않는다. 이 뮤지컬의 사람들도 베이커의 집에서 남은 이들이 함께 생활한다는 구도로 마무리하지만, 그들의 앞날이 예전처럼 그렇게 행복이 길게 이어질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나마 "희생을 치룬 댓가"로 그들이 인생에 대한 학습을 크게 받았으니, 조금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살아낼 거라는 안도감은 있게 되지만.


** 연극을 두번 보다 **

 

루미는 라푼젤을 구해주는 왕자로 분했다. 코밑 수염과 턱수염을 그린 분장을 해야 해서 "너무나 마음에 안든다"는 그 역을 그런대로 잘해냈다. 신데렐라의 왕자로 분한 아이는 재작년에 올려진 "요셉" 뮤지컬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아이. 노래와 연기도 잘하면서 몸집이 작은 그 아이와 함께 서있으니, 루미의 "생김새의 다름"이 내 눈에 더욱 크게 띄었다. 키도 크지만, 얼굴도 무지하게 넓어보였으니..

 

지난 주말까지 4차례의 공연을 가졌다. 우리 가족은 첫날에 모두가서 함께 봤는데, 일찍 가서 가장 앞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더니, 출연진들의 실수가 모두 낱낱이 보였다. 첫 공연이어서 아이들이 많이 긴장했는지, 제 대사를 까먹어 선생을 쳐다보는 아이까지 있었다. 이날  관객들도 준비가 덜 되어있어서 웃을때 웃어주지 않았다고 나중에 루미로부터 말을 들었다.

 

마지막 공연이 있는 날, 관객들의 반응이 훨씬 좋아진다고 하고, 이웃들로부터 루미가 선전하더라는 말을 들으며, 다시한번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왼쪽은 신데렐라의 왕자, 오른쪽은 라푼젤의 왕자, 루미..

 

 

연극 단원들 한자리에. 왼쪽 두명의 아이들은 신데렐라의 의붓동생들로 분한 남자아이들.

두명의 남자아이들의 연기에 많이들 웃었다. 루미,, 오른쪽에 있네.

 

 

 

마침 막내가 다시 가자고 하여, 입장료를 두번 내면서 무대에서 조금 먼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이들의 연기가 많이 자연스러워지고, 목청이 올라가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 곡을 어느정도 소화해낸다. 첫날에는 무대를 존중하느라, 사진을 한장도 찍지못했는데, 이날 가서 낯을 두껍게 해서 몇장의 사진도 건질 수 있었다. 나 외에도 몇명의 공인받지 않은 사진사가 있었는지 극 중간에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레드 라이딩후드로 나오는 작은 소녀와 마녀로 나왔던 아이는 다른 학교에서 찬조출연했는데, 6학년 아이들치고 성량과 감정이 풍부해 뮤지컬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신데렐라역도 수준급이었다. 성악레슨을 받고 있다는 그 셋을 빼고는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 지난 4개월여간의 연습을 통해 3시간 정도에 걸친 대작을 소화해냈으니, 그 정도로도 박수를 쳐주어도 좋을듯싶다.

 

루미는 목소리조차 허스키해서 남자역을 한 것이 그애에게 어울렸다. 그러나 손의 위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듯이 보여졌고, 이마를 덮는 앞머리도 신경쓰였다. 말을 조금 더 천천히 했으면 좋았을 것 같고, "제 아픔만을 강조하는" 왕자들의 철없는 행동이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야 했는데 그것도 부족했다.  

 

어쨋든 내가 이 극을 두번이나 본 것은 내 아이에 대해 객관적인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남들은 잘한다고 하는데,(물론 의례적인 인사였겠지만) 내 눈에 조금 부족하게 보였던 것이었다면, 내가 아이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부분이 없나 한번 점검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엄마의 욕심으로 만족함이 없는 그것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마음 한구석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소리천사님방에서 "둘째 신드롬"에 관한 글을 읽고, 둘째딸 루미에게 한번이 아니라 두번의 관심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도 밝혀야겠다. 충분한 관심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니까....

 

 

 

공짜는 아니고.. 연극팀 부모들이 만든 쿠키와 빵, 초코렛들. 부모들이 스텝으로 일 하느라 수고하고 있다. 나는 물과 쿨러를 기부하는데 그쳤는데.

 

큰딸과 막내는 음악성이 조금은 보이는데, 루미는 영 그렇지 못하다고 혼자 생각해왔다.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역시 잘하는 노래는 아니었다. 그래도, 대사전달이 확실하고, 머뭇머뭇거리지 않고 연기를 했으니, 점수에 후한 동네 사람들이 그 점을 높이 산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학교 음악교사에 의해 두번째 치러진 뮤지컬은 동네에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겨우 1천명 인구의 마을인데, 내가 참석했던 두번의 공연 모두 100명에서 150명 정도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었으니, 인구의 절반 이상은 연극을 본 셈이다.

 

나이가 차지 않아 공연팀이 되지 못했던 막내조차 대사를 흥얼거리고, 나도 두번을 보고 나니, 루미가 다른 왕자와 함께 불렀던 "agony"의 높이 올라가는 부분을 곧잘 따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