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숱이 유난히 많은 둘째의 머리를 다듬던 미용사가 너무 감탄?한 나머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머리숱이 적은 캐네디언들만 상대하다가, 한국아이, 그것도 보통이상의 두껍고 많은 숱을 지닌 아이의 머리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머리 때문에 멋부리기에 대단히 어려움을 겪던 둘째는 여러날 동안 미용실 예약을 나에게 부탁했었다. 토론토에 가야 한인미용실을 갈 수 있어서 이리저리 미루다, 동네 미용실에서 깎아보자고 말하고 처음으로 간 날이었다.
미용사는 머리카락을 솎아내면서, 몇번이나 혀를 차곤 했는데, 나는 기분이 조금 나빠지려고도 했으나, 그녀를 십분 이해하는 마음도 있어서 참아냈다.
그녀가 솎아낸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히 떨어져있는 것을 보고, 참,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 느낀다. 제 언니는 머리카락이 없어서 고생인데, 동생은 있는 것을 줄여보려고 사이사이 끊어내어 버려야 하니 말이다.
사실 머리카락뿐이겠는가? 이 세상은 "적당"한 것은 없는 것인양, 누구에게는 너무 많아 곤란하고, 누구에게는 너무 적어서 어려움을 끼치고 있다.
머리카락같은 것은 나누지 못하지만, 그밖에 것들은 조금만 생각해도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기도 하다.
최근에 우리집에 불어닥친 "굶기" 운동을 들여다 보자.
처음으로 둘째가 시작했다. 월드 비전 캐나다에서 하는 "30시간 굶기운동"(30 hours famine)에 동참했던 것이다.
월드 비전 캐나다는 취지문에서 이 세계의 8억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매 3초에 한명씩 기아로 인한 사망이 있다고 적고 있다.
이 운동으로 얻어지는 돈으로 기아선상의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과 "음식" 그리고 AIDS 환자들을 위한 의약품과, 예방교육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30시간, 삶을 변하게 하는 데는 단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라는 (30 hours, all you need to change lives around the world)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있다.
이 운동을 나는 올해 처음 알았는데,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지속되어오고 있는 구호운동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http://www.famine.ca를 방문해보면 기부자와 운동단체들이 소개되어 있으며 온라인으로도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알수 있다.
"30시간 굶기운동"을 위한 홍보지들. 운동의 취지와 참여자들이 해야할
일들이 적혀있고, 기부자들의 명단을 적을 서류와 봉투가 있다.
월드비전 캐나다의 본부에서 만든 웹사이트에 가면 볼 수 있는 사진.
루미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청소년부에서 이 운동을 하는데, 지난번 눈보라치는 길을 달려가야 했던 까닭도 이 운동의 신청서를 받아야했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청소년 30여명이 함께 굶었다고 루미는 말한다.
기금 모금의 많은 방법들 중에서 이 일은 어떤 명분을 위해서 희망자가 "몸고생"을 하고, 그 희망자는 그를 댓가로 사람들에게 기부를 요구한다. 희망자를 지원하고, 명분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기부금"을 줘서 그 운동을 지지해준다. 그렇게 모여진 돈들이 필요한 곳에 쓰여지게 되는 것이다.
루미는 엄마와 아빠에게 기부받고, 친구와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기부금을 모아서 센터에 갔다주었다. 그녀는 전체 88달러를 모았는데, 1아이가 석달을 먹을 수 있는 돈의 액수가 90달러라면서 제 돈 2달러를 보태서 90달러를 만들었다.
돈을 모금하는 사람은 사람들앞에 서서 "30 시간 굶기운동"의 주관 단체를 소개하고 이 돈이 모여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에 호응하는 이들이 돈의 액수와 주소와 이름을 적고 돈을 기부한다.
루미의 30시간은 지지난 주말에 있었다.
금요일 오후 1시에 시작했다. 점심으로 핏자가 나오는 그날, 루미와 또 한명의 참가자인 친구는 12시 55분에 나오는 핏자를 불이나게 먹어치웠다고 전해줬다. 그날 5시쯤 침낭을 가지고 교회로 가서 동참하는 아이들과 지도자들과 함께 여러가지 행사를 하면서 지낸다. 노래부르기, 게임, 영화보기 등을 했단다. 완전 단식은 아닌 것이 팝시클(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단순한 얼음과자)이 상비되어 있고, 검을 씹을 수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한바탕 웃었다. 순수한 "굶기"는 아니구나 하면서..
그날 하루를 교회에서 지내고, 끝나는 시간인 토요일 저녁 7시에는 교회에서 준비해준 음식을 먹게 된다.
루미는 29시간까지는 힘들지 않았는데, 저녁먹기 1시간전부터는 배가 많이 고팠다고 말했다.
어쨋든 이렇게 해서 루미의 "굶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다음은 나.
나는 1년에 하루 굶기를 한다. 매년 성금요일날에. 드러내놓고 금식하는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외식하는 자라고 말한다. 나는 겨우 1년에 하루 굶는 일이기 때문에 드러내놓는 것을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ㅎㅎ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조용하게 하고 싶은 맘인데, 이게 손님이 오거나 하면 참으로 어렵게 된다. 작년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 감쪽같이 처리할 수 있어서 기뻤는데, 올해는 부활절 연휴라 이쪽저쪽에서 가족들이 방문오는 바람에 요란하게 금식을 하게 됐다. 24시간 하던 것을 아이들처럼 30시간으로 늘려서 했는데, 금요일 시작 토요일 아침에는 현기증이 났다. 빵과 티를 먹고 나서 다시 현기증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땀을 쭉 흘리고 일어나니, 기분이 개운해졌었다.
나의 "굶기"는 상종할 수 없는 고지식한 예수쟁이 같은 냄새를 풍기며 끝을 내게 됐으니, 이거 참 면목없다. 그렇다고 "굶기"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얻어낸 것도 아니고. 그저 연례행사를 치루듯, 그렇게... 하루를 낯선 곳에서 보내는 것같은 여행자의 심정도 되면서, 조금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이 연휴 기간에 우리집에 왔던 사람들은 또다시 돈들을 뜯기고 갔다. 왜냐하면 큰 딸 나래가 "30시간 굶기운동"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를 돌 생각이 없는 나래는 집에 온 이모들, 이모부, 사촌언니에게 모두 기부를 요청해서 받아냈다. 토론토의 할머니에게는 원정나간 엄마(나)가 걷어다 줘서, 나래도 아프리카의 한 어린이가 3달을 먹을 수 있는 90 달러 이상을 모았다.
나래의 "굶기"는 학교에서 주관하는데 이번 주 목요일 시작, 그 다음날 금요일까지 이어진다. 그날 침낭을 학교에 들고가서 체육관에 모여서 자면서 할텐데, 그녀가 어떤 시간들을 보낼까 기대된다.
오늘 아침 나래는, "30시간 굶기"를 잘할 것 같으냐고 물어서, 내가 현기증을 겪었던 터라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한공기의 밥과 팝시클을 준다고 했으니 문제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팝시클뿐 아니라, 밥 한 공기라고??
어쨋든 그 정도 배고파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리에게 풍족한 어떤 것을 나누는 데에 모종의 수단이 필요하다면 이런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십대"들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생으로" 다이어트도 하는 마당에 좋은 일에 돈이 쓰여지고, 우정도 쌓이고, 친지들에게 아쉰 소리도 해서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때마다 아이들이 한다고 나서준다면 좋겠다. 그들에게는 소중한 경험들이 쌓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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