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래 루미 미리.

풍선을 터뜨리며

어제 큰 풍선이 하나 터졌다.

 

무슨 말인가?

 

아이들에게 걸어놓았던 기대의 풍선이 바람빠지는 날이었다는 말이다.

 

어제 마지막 출연이 될것 같은 스케이트 카니발이 있었다.
매년 강습생들이 스케이트 시즌이 끝날때쯤이면 카니발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선사한다.

나도 이 무대를 보고, 아이들에게 피겨 스케이트를 시킬것이라고 결심했었다.

 

 

루미와 나래가 함께 춤을 춥니다. 오른쪽 세번째 나래.

왼쪽으로 두명 건너 둘째 루미..

 

 

 

ㅎㅎ 찬조출연한 스케이터들의 아빠들. 가슴큰 여자들로 변장했습니다.

한 몸매들 하지요?

 

 

 

공연이 끝나고 인사하는 아이들. 이번 카니발의 주제는 "얼음위의 총천연색"이었

습니다.

 

 

 

햇수로 따지면 6년간.
그동안 레벨은 시니어 브론즈까지 했으니, 마음에 흡족함이 들만도 하건만, 그렇지도 않다.
무슨 일이든지,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저 대강 시간만 떼우는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걸 느낀다.

 

어린 나이에 피겨 스케이트를 잘하는 꼬마 알리사(우리집 큰애의 이름도 알리사라서)의 아빠도 이제는 아이가 그만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끝도 없어보이니.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아이뿐 아니라 엄마들도 그 뒤에서 봉사자로 도와야 할일이 많다. 나는 데면데면하게 시작한 일이어서, 한발 빼고 스케이터 부모노릇을 했지만 어떤 엄마들은 정말 이 일로 해서 일이 무척 많다. 알리사의 엄마도 이제는 그런 일로부터 놓여나기를 바란다고 그 남편이 말한다. (생각나는 것만도 기금마련을 위한 비프 디너 몇번, 초코렛 팔기등이었는데, 나는 그저 시간봉사로 일을 때웠지만, 그 일을 전체적으로 도모하고 진행해야 하는 부모들이 있어야 한다)

 

어쨋든 우리집만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니,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은 어떤 경로를 거쳤을지, 그들의 노고와 성실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어야 하리라.

 

나래는 처음에는 소질이 있어보였다.
몸의 균형이 잘 잡혀져있고, 운동신경도 있는 것같았고.
피켜 스케이트가 아니라, 스피드 스케이트를 했다면 오히려 잘하지 않았을까,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스피드 스케이트를 가르쳐주는 곳은 가까이에는 없는 것 같다)

 

올해는 격주에 한번씩 남자 파트너와의 연습을 위해 출장을 간다.
15분 개인연습에 적잖은 돈을 내야 하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숙제의 양에 눌리기 시작하자, 나래가 짜증을 낸다.


스케이트가 "힘에 벅차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번 연습하던 것을 1번으로 줄였다. 그 한번 마저도 어떤땐 가기 싫어한다.

다른  행사와 겹치면 스케이트가 뒤로 물린다. 3월이면 끝나니,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자고 이야기해서 잔소리 없이 꾸역꾸역 그 일을 했다.

 

이번 카니발에서도 제 레벨의 다른 아이들은 솔로도 추고 했는데 나래는 그런 일은 생각도 안한다. 지역에서 열리는 메달 경쟁에도 나가지 않는다. 열정이 없어진 것이다.

이번 카니발에서 그룹 댄스 2번을 선보인 것으로 끝을 냈다.

 

루미는 나래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올해가 마지막일것 같다. 새해 결심중에는 "스케이트 강습을 잘 마무리할것"이라는 목록이 들어있는 것을 보니 내년 겨울에는 더이상 타지않을 것 같다..

 

한 레벨이 올라갈때마다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시험볼 자격이 되어 응시해도 떨어질때가 있다.

일년에 한두개의 댄스 테스트에서 패스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패스하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오랫동안 한가지를 연습해야 하니, 자기 인내심과의 싸움이었을 게다. 운동쪽에 그리 뛰어나지 않은 루미에게는 6년간이나 지탱해온 것도 작은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는 작년에 피겨 스케이트를 졸업하고, 올해는 하키를 하기 시작했다. 하고싶은 사람은 누구나 합류할 수 있는 비정규 여자팀으로 , 게임을 즐기는 미리에게 맞아보인다.

 

멋진 피겨 스케이터가 되라고 큰 꿈을 담아 불어놓았던 풍선이 이렇게 터졌다. 

 

또하나의 풍선은 오래전에 터뜨려버린 피아노를 비롯한 음악풍선이다. 나보다도 남편의 성화에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었다. 우리는 세쌍둥이를 키우는 사람처럼 모든 일을 세명이 한꺼번에 해왔다. 피아노도 그렇게.

 

피아노도 나래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그 두각을 나타낸 지점에서 그만... 멈춰섰다가 결국엔 모두 "지겨워"하면서 끝내게 되었다. 미리는 정말 그렇게 소질없는 아이는 있을 것 같지 않게 딩동거리다가 끝이났으니, 미리에게는 레슨과 강습이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게 없었던 셈이다.(그림그리는 레슨을 받아보고 싶다는 데 그런 기회가 오길 바래본다)

 

미국에 있는 동생의 말로는 엄마가 집에서 붙들고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힘은 없다. 레슨가기전에 한번씩 복습하게 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

 

또 말해 무엇하랴.

 

수영도 그렇다. 아이들은 레벨이 어느정도 수준에 오르자 계속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깊은 물에서 수영할 정도에서 이것도 그친 상태다. 하다못해 수영코치가 될 정도로 했으면 싶은데, 그만큼 나아가는 것도 특별한 부모의 압력이나, 개인기가 있어야 되는 것 같다. 엄마가 유약하니, 아이들을 밀어주는 힘이 부족한 것도 계속 끌고가지 못하는 이유가 됐을 것이다.

 

부모의 권유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했던 일들은 이제 어느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다. 큰 성과없이 끝을 봤으니 슬프기도 하지만 취미로라도 그것들을 곁에 둘수 있게 됐다는 것으로 자위할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풍선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내 옆구리에다 조그만 풍선들을 계속 불어올리고 있다. 아이들이 찾아내는 작은 가능성의 풍선들을.

 

나래가 새로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테너 색스폰은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루미가 1등상을 받아온 포스터로는 루미의 창작력에 가산점으로,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내는 미리, 그녀는 부모에게 원기를 흠뻑 넣어주는 작은 에너지원으로...


아이들이 어려서는 너무나 많은 소망을 품다가 점점 현실적으로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저 너무 뒤떨어지지 않는 원만한 성품의 시민으로 자라기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소망으로까지 내려앉기도 했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워놓고 보니, 또다른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별히 나를 많이 실망시켰던 나래에게서 그 희망의 순들을 발견한다.

 

"공부는 고등학교부터"라는 표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떤 잔소리도 필요없이 제 할일을 잘해내고 있다. 학교성적이 그렇고, 매사에 접근하는 태도가 진지하다.

 

나래는 빨래를 하는 나에게 "세탁법"을 제 옷별로 한장이나 프린트해다 주더니만, 내가 항상 잊고 한꺼번에 빨래를 해버리자, 이제는 스스로 제빨래를 한다. 뒤집어 빨아야 할것, 건조기에 넣으면 안되는 옷, 손빨래가 필요한 것들을 나눠서 한다.

 

청소도 한번 했다하면 멋지게 제방을 가꾼다. 물론 어질러져있을때가 더 많지만, "청소해줄까?"하면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제 일의 순서를 깨우친 아이처럼 보인다.

 

부모에 의해서 주입되어진 것들이 쭈그러들면서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닦아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동생들도 언니를 본받게 되면,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는 날부터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 나 자신을 위해 풍선을 하나 불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나래 루미 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시간 굶기  (0) 2006.04.19
캐나다 고등학교 자세히 들여다보기  (0) 2006.03.15
나래를 위한 기도  (0) 2005.12.24
딸의 친구!!  (0) 2005.11.01
아이들 때문에 배운다  (0) 200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