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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나래를 위한 기도

배구시합이 있는날, 나래를 데리러 옆마을 고등학교로 갔다.
학교 배구선수로 요즘은 새벽에도 가서 연습하고, 방과후에도 하는등 바쁜 날들을 보낸다.
문을 빼꼼히 열고 체육관을 보니, 열기가 대단하다.
대단한 신장의 학생들이 점수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저쪽 뒤로 나래 모습이 보였다.
코치하고도 눈이 맞아, 나래를 데릴러 왔음을 손신호를 통해 알려주었다.
시합이 끝나고, 학교로 가지 않고 직접 집으로 모셔가려 한 날이다.

 

"시합은 어땠어?"
"한번 이기고, 한번 지고."
"그래?"
"잘한거야.."
"시합 내내 선수로 뛰었니?"
"아니, 두번째 시합의 첫번째 두번째 세트에서만. 연습에 빠진 사람은 출전 자격에 제한이 있거든.."

며칠전 새벽, 연습을 빠진 댓가라는 뜻으로 들렸다.

"선수들이 무척 키가 큰데? 네가 가장 작은편 아니니?"

"아니야. 지금 시합은 시니어 팀이야. 나는 주니어고.."

 

차를 출발시켜 나오는데, 나래가 신발을 학교에 두고나왔다고 한다.
다시 차를 돌려 학교앞에 내려주는데,
시합을 끝내고 밖에 나온 선수들의 머리에 눈이 간다.
뒤로 묶은 머리카락들이 땀에 젖어있다.

저애들의 머리는 건강해뵈는군.

요즘은 젊은 아이들의 머리에 자주 눈이 간다.

 

나래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지가 벌써 6개월은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올해 6월 8학년 졸업여행중이었다.
가져간 전화카드로 집에 한번 전화했는데, 그애말에
"머리속에 민둥머리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뭔 말인가?

 

졸업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래 머리를 조사하니, 오른쪽 귀뒤쪽으로 휑하니, 빈터가 보인다.
가슴이 떨려왔다. 다른 곳을 뒤졌는데, 조금씩 머리가 비어가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때 그랬던 것이 지금, 6개월이 지나자, 정말로 많은 부분의 머리가 빠져나갔다.
발견한지 두어달 이후로는 머리에 스카프를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해서는 그냥 다니다가, 빈 부분이 바람에 날려서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런 처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때만해도 그쯤하다가 다시 나겠지 했는데..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져간다.
의사는 6개월 이후면 괜찮아진다고 했었는데,
다시 나기 시작하긴 했지만, 아주 미미하고, 거진 다 빠져나가서
무참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다.

 

뭔가?

 

나래를 놓고 많은 기도를 드렸었다.
그아이와 심정적으로 "소통"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
무엇에 문제가 있는지, 나와 나래를 도와줍시사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래가 학교생활에 더욱 열심이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보통" 아이들같은 관심을 쏟기 시작할 때였지 않았나 싶다.

 

원인은 여러곳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그애의 "완벽주의"로 인한 스트레스와 갑작스런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불량이 그중 설득력있게 생각된다. (본인은 다이어트를 인정하지 않는다. 먹는 것을 줄이고 운동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어쨋든 그날  이후로 나래와 나는 매일밤 만나야 한다.
그애의 머리 곳곳에 약을 바른다.
처음에는 머리속을 헤치며 빠진 부위에 약칠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더니,
요즘은 너무 밋밋하여 그 일을 빠른 시간에 해치운다.

 

그애와 내가 매일 살을 부딪치며 만나니, 정말 정이 많이 든다.
그애가 가여워서,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래는 잘 참아낸다.

새로운 고등학교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낼뿐 아니라, 의욕적으로 덤빈다.
최근의 배구선수로 기용된 것부터, 두개의 밴드부, 매주 화요일의 배드민턴이 그애가 하는 일이고, 월요일과 목요일은 피겨 스케이팅을 다닌다.

 

학과목 교사들과 중간 인터뷰를 했는데, 나래의 태도와 학업성적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우리를 고무시킨다.

 

어느날은 "엄마, 머리가 있는 느낌이 어때?"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아주 방글 웃으며..
"으응, 그래.... 나래 머리도 곧 날거야."

 

내년 2월에는 3박4일 불어를 쓰는 퀘벡으로 스키를 비롯한 언어훈련 여행을 학교에서 떠나는데, 그일로 인해서 조금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런 신체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뒤로 처지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나가고 있는 나래는,
확실히 "엄마표"와는 다른 인간이다.

내가 나래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맞지 않아서 부딪치는 소리가 많이 났었는데, 이런 일들을 감당해내야 할 나래에게 그에 합당한 성깔을 주신 게 아닌가 싶다.

 

지난 9월, 나래가 학교를 시작하며 머리의 흰부분이 힐끔힐끔 드러나던 그런때, 적어놓은 글이 있다.


갈라진 머리
드러난 흰길
가엾은 아이... 힘내라

기도하자.
너와 나를 엮어주는 고통의 과정이라 생각하자.
그 마음-- 견디는 힘앞에 내가 굴복한다.

 

하나님
오랫동안 "보잘것 없는"
개인의 소원 구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나만 할께요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이
성장을 보여주고 책임을 알아가는 아이
그 아이에게 생긴 현상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가...나와 나래를 묶어달라고 했던 기도가,
연민과 염려와 긍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 가슴졸였던
엄마와 딸이 이제는 매일 저녁 살을 부빕니다.

그애의 빠진 머리카락밑에 드러난 허연 민둥머리를 만지며
그만큼 그 아이와 나 사이의 줄이 굵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본질적인 치유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능하시면 그애의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해주십시요.
.
이제는
테니스를 치고, 비가오면 비를 맞고
수영도 하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애에게 9학년의 가을을 낙엽이 아니라, 생성의 덮임의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우리 같이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 나타내소서.


 

나래로 인해서 가족들간에는 또다른 믿음의 띠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신체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당당할 수 있는
캐나다의 학생들과 교육환경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직, 갈길이 멀다.
어느날, 마치 중병이 걸린 게 아닌가 하여, 눈물을 많이 흘린 그날이후로,
나는 조금 더 강해져 있다.

 

나래가 이 모든 어려움을 시간이 더욱 길게 가더라도 참아낼 수 있기를
그애를 의지하며 기대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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