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래 루미 미리.

딸의 친구!!

둘째딸이 문제를 일으킨다.

맘에 안드는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일.

 

그 일로 아빠 목청 자랑도 하고, 엄마 우는 연기도 하고, 별별 짓을 다했건만,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그 아이- 케이트-와 처음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흘러들어온? 그 아이 부모는 처음부터 그 시작이 평범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이혼하고, 아이때문에 시골로 함께(따로) 이사왔다는 것이다.

 

그 아빠..

약간 경박하다. 아랍계처럼 보이는데, 처음부터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를 한국말로 해서 놀래켰는데, 어느날은 "담배주세요, 고맙습니다"를 발음도 정확하게 해댄다.

 

토론토 친구들에게 배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반갑더니 매번 들어와서 한국말로 인사하고 실실? 웃는 것이, 또 매번 그 기분에 맞춰줘야 하는게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는 그에게 한국말로 말해야 할지, 혹은 영어로 답해야 할지.. 혼동되기도 하고.

그는 한국말뿐 아니라, 그 정도의 필요한 대화를 몇개 국어를 할수 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깊게는 아니고, 인삿말 정도일 것으로 짐작해본다.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이혼하고 낯선 고장에 같이 이사올 수 있는지, 의아해했는데, 그들은 정말 이혼한 사이였고, 그 둘 사이에 케이트가 엄마와 아빠집을 오고가며 살고 있었다.

 

그 아빠는 이곳에서 막일도 하면서 적응하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너무 아는체 하는 게 많아서 좀 그럴때도 있지만 어쨋든 남자 혼자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했는데, 몇년전에 다시 도시로 나가버렸다. 지금은 이곳에 잘 들르지 않는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큰 술집의 경호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엄마..

이사오고 얼마후에 동네 남자를 사귀어서 지금은 잘 살고 있다.

벌써 아이들이 2명인가 되니, 케이트에게는 어린 두 동생이 있는 것이다.

 

키가 껑충하게 큰 그녀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다. 그래도 루미말에 따르면 제가 그집에 가면 잘해준다는 것이다.

그 엄마가 예술가(화가)라는데, 현재는 아이들 키우느라 바깥 활동은 잘하지 않는 것 같다.

 

케이트..

 

지난 4학년때인가 아이 필드트립에 따라나섰던 적이 있다.

유난히 불평이 많고 주위가 소란스러워보였던 아이.

그 부모에 대한 편견이 작용해서인지, 그애의 행동이 영 눈에 거슬렸다.

질문도 잘하지만 비판적이고, 겉약은 아이처럼 보였는데..

 

그 케이트와 루미가 친구가 된지가 벌써 한 2년이 되는 것 같다.

우리집에도 많이 놀러온다.

딸 때문에 방문을 허락한 그때마다 내 마음이 좋지 못하다. 

그애를 색안경을 끼고 보게된 결정적 사안은, 어린 것이 우리집 남학생들에게 과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흠, 나쁘게 말하면 남자 밝힘증...ㅎㅎ)

체격은 보통 큰가? 이미 다 성장한 숙녀같으니, 어찌 그저 어린애로만 치부할 수 있느냔 말이다.

제집인것처럼 우화화화 깔깔 웃어대는 것도 신경에 거스리고..

 

케이트 때문에 루미와 우리 사이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우리의 편견으로 그 아이를 판단해서 하는 이야기들을 루미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뿐이 아니라, 케이트를 좋지않게 보고있는 친구도 만나서 처음으로 내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내 판단에 대한 보조발언을 수집할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루미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들면, 분명히 케이트에게 배운 것이라고 짐작해서 말하는데, 루미말에는 케이트에게 잘못을 덮어씌우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우리의 오해로 생긴 것도 많고, 잘못된 것은 본인 자신의 실수라는 것이다.

 

원산지가 "내딸의 것"이 아닌것 같은, "내딸은 그런 생각을 해낼 수가 없을 것 같은" 그런 일들도 엄마의 오해라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딸의 친구를 딸 다음으로 보살펴주고 좋아해주는데, 엄마 아빠가 케이트에게 짓는 표정때문에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어제, 케이트가 있는 데서 한바탕 소동이 생겼었다.

케이트를 보내는데, 옆에서 그녀를 변호하는 루미가 대단했다.

 

"나도 그렇다. 왜 내가 딸의 친구에게 표정을 찡그려야 하냐. 그게 나로서도 속상한 일이다. 그런데 케이트에게는 뭔가가 네가 모르는 것들이 있다. 어른들이 염려하는 것 그런 것이.."

 

나는 영화, 메리에게는 어떤 게 있다라는 제목을 떠올리며 그런 말들을 했는데,

엄마 아빠가 케이트를 나쁜 아이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해온다.

그애는 한국문화를 이해하려고 하고, 나름대로 우리 부모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주지 않는다는 게 루미의 골자이다.

 

 

네 친구 때문에 집안이 불안하고, 엄마아빠가 상처를 입는다고 했더니, "미워하는 자보다 미움을 받는자가 더 상처가 크다"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따진다.

 

그게 어제의 일이다.

 

오늘 아침, 나는 부엌에 있는데, 루미가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학교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에 징하는 소리가 나면서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본다.

내가 읽은 책,,, 고아인 앤이 평범하고 안정된 가정과 삶을 가진 "다이애나"와 사귀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고아와의 사귐에 빗장을 걸었던 다이애나의 엄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인가?

 

그야말로 우리가 모르는 어떤 더 좋은 점이 케이트에게 있는 건 아닌가?

엄마, 나 바보아냐.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않아하는 루미의 말에 조금 더 점수를 줘야 하는 건 아닐까?

 

가끔 불같아지는 남편 때문에 온 집안이 소동을 겪기는 해도, 그에 기죽지 않고 끝까지 제 친구를 변호한 루미가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케이트를 보는 눈이, 그녀의 배경과 함께 변하지 않으니, 계속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얽히게 된다.

 

마음을 더 내려놓자. 그동안 믿었던 딸이 그 문제들을 헤쳐나가도록, 내가 물러서자.

안되더도, 웃음을 걸치고 그애를 대하자.

그애가 "점잖은" 한국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인간성을 가졌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게 틀림없다.

 

루미야, 지금은 네가 이겼다.

'나래 루미 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선을 터뜨리며  (0) 2006.03.07
나래를 위한 기도  (0) 2005.12.24
아이들 때문에 배운다  (0) 2005.09.30
모성애 드러내기  (0) 2005.09.07
달콤한 열매  (0) 200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