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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달콤한 열매

동녘하늘이 발그래하다.

서녘하늘을 좋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는, 동터오는 광경을 쉽게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바람은 하루 어느시간보다 달콤하고, 신선하다.

 

나래가 졸업여행을 떠난 날이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다.

 

차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차창엔 셀포판지가 붙어있기도 하고 너무 높아서 차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다른 아이들도 타고 있을텐데, 마치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서 어딘가 먼데로 가버린것 같다. 

 

더이상 할일이 없어, 차 옆을 돌아 빠져나오는 길에,

아이가 결혼할때는 이정도만 하겠어?

하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잘 포장된 멋진 곳으로 아이를 떠나보내면서도, 그 미래를 알지못해 마음에 조바심이 이는 것, 그것이 결혼시킬 때의 부모마음이 아닐까 생각되어졌다.

 

겨우 학교 졸업여행갖고 그런 감상에 젖다니..

 

사실은 그냥 주어진 여행이 아니다.

 

1년 내내 아이들이 준비해왔다. 귤팔기, 햄버거팔기, 경매, 저녁식사,,, 나와 나래는 티켓도 팔고, 그 티켓을 사기도 하고, 노력봉사도 하고.. 그래서 여행경비 400달러중에서 360달러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공동의 일과 개인의 일을 나누어서, 각각 적립시켜주었는데, 열심히 일한 아이는 목표초과달성을 했다고 하기도 했다. 남은 돈은 여행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호화판이다. 7학년까지 이어지던, 학교버스타고 하는 일일여행, 조금 더 나아가서, 먹을 것 싸가지고 가서 직접 해먹는 2박3일 캠핑은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그 격이 다르다. 목적지도 5시간 정도 걸리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숙박은 방학중이라 비어있는 오타와대학교 기숙사, 식사는 기숙사 식당과 음식점, 그리고 에어컨이 나오는 어쩌면 화장실도 있는 편안한 대형 관광버스를 겨우 30여명의 아이들이 빌려서 타고간다.

 

프로그램을 잠깐 살펴보니, 오타와의 이름난 멋진 산책로를 자전거를 타고 도는 것부터, 초코렛 공장 견학, 전쟁박물관 견학, 쇼핑, 게임 센터, 국회의사당 견학, 캐나다 총독 관저 견학, 국립박물관 견학, 수영, 아이 맥스 대형 영화 시청, 미니 골프장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다.

 

나래는 또한 그동안 인터넷으로 사귄 오타와 친구를 쇼핑하는 시간 동안 만나기로 했으니, 더욱 설렐 것 같다.

 

 

나래의 여행을 보면서 열매는 달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유치원 시절 2년, 그리고 8학년까지 10년을 한 학교에서, 게다가 학생수가 많지 않으니, 거진 같은 반으로 10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회포를 풀게 되었으니, 아이들의 셀레임의 크기는 어느정도일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래는 초등1학년때 이 학교로 전학왔다.

전학온 이후로 나래는 페이슬리 학교를 전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여기는 것 같다. 어쩌다 부동산 책만 들여다봐도, 절대로 이사갈 수 없음을 미리 선언하니, 우리는 꼼짝없이 여기서 늙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페이슬리 학교전에 유치원 2년과 초등 반학기의 도시생활이 나래에겐 상처가 되어있는 듯 싶다. 유치원에 처음 들어갔을때, 엄마를 떨어지지 않아서 1시간 이상씩 나래곁에 앉아서 그애가 적응되기를 기다렸던 것이 한달여를 넘어섰었다.

 

그 뒤로도 학교는 아이가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엄마가 무언갈 도와줘야 한다고 여기지 못했던 남의 나라의 초보 학부모였던 나는, 집에서 쓰던 한국말을 안쓰고 영어만 쓰는 그곳에서 아이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한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토론토에서 초등1학년때, 담임선생과 면담을 했더니, 아이에게 특별교육을 시키라는 것이다. 많은 이민자 자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것 같은 교사는 부모들의 무지와 아이들의 학습능력 부족에 과외를 추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겨우 1학년 아이에게 특별교육을 시키라니 그 당시 내가 만났던 한 한인학부모는 나에게 나래는 공부잘하지요? 하면서, 담임이 면담 시간에 자기 아이와 나래를 비교하면서 과외수업을 시키라고 강권했다는 것이다. 나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위로를 주었던 기억이 있다.

 

페이슬리에 와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공부도 곧잘 따라하고, 우선 학교의 분위기가  토론토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잘 적응해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점차로 나래에게 실망을 한다. 내 글에서도, 입밖으로도 나래에 대한 걱정을 가장하여, 얼마나 많은 불평을 쏟아냈었는지(그러나 하고싶은 말의 10%에도 못미치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선지, 초등 4학년때쯤 아이가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많이 먹고, 나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던  시절이다. 왜냐고?

 

조금 복잡하다.

큰아이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높았는지,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그애 흉을 보는 최고의 이유는 따뜻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동생에게, 혹은 친구에게 정감어린 말을 할줄을 모른다. 이기적이고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 등이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가 되니, 눈에 힘이 풀리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같은 얼빠진 아이처럼 보였던 적도 있다. 그당시에 정곡을 찌르는, 불편한 말을 잘하는 언니는 나래가 어글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란 걸 안다.)

 

내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말이었다. 내놓고 말할수 없는 어글리못났다는 말은 그애에게 조금 다른 관점을 들이대야 함을 의미했고, 오랫동안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도 나래에 대한 것이었다.

 

작년에 한국을 갔을때만 해도, 나래는 살이 통통했고, 여전히 쌀쌀맞은 관계를 나와 맺고 있었다. 그런데 그후 가을부터인가,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달이 지나자 살이 내리기 시작했고, 태도가 조금씩 변화되었다. 최고학년이 되면서 졸업식이 그들 나름의 최대관건이 된다. 그날은 정장에 최고의 치장을 해야하는데, 그날을 대비해서 준비했다는 게 내가 눈치챈 유일한 것이다.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제방에서 문을 꼭 닫아놓고 담뇨를 깔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 같앴다. 그런 것을 드러내놓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나는 한동안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지난 일년간 나래는 여로모로 변화가 있었다. 외모에 관한 부분이 많지만, 그 내면도 그에 못지 않게 달라졌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치아에 교정기를 착용했다.

어렸을때 겁이 많아서 흔들리는 이를 빼줄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늦어져서 결국 앞니 두개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틀려서 났다.  스스로 원해서, 아프다는 소리 하나 하지않고, 착용을 마쳤고 매일 아침 열심히 배운대로 이빨청소를 한다.

 

*귀고리를 했다.

이모가 데리고 갔다가 무서워서 못한다고 그냥 온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원해서 사촌언니와 가서 귀를 뚫고 왔다. 매일 아침 열심히 귀를 소독한다.

 

*동생들과 나눈다.

작아지던, 너무 크던 제것을 내놓지 못했던 그애가 옷장 정리를 종종 하고, 필요없는 것들은 동생들에게 나눠주고 꼭 필요한 것을 장만한다.

 

*이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십대이기 때문일 것 같다. 아직도 소리를 잘 지르고, 동생들을 훈계하는 데엔 조금치도 양보가 없는 것은 여전하다.

 

*렌즈를 착용한다.

대학교나 가서나 렌즈를 착용했던 나는 나래가 어느날 렌즈를 착용했으면 한다는 말에 노발대발했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몇 사람의 의견을 거쳐서 내가 항복하고 렌즈를 착용하게 했다.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

 

*운동을 잘한다.

지난번 학교 체력대회에 봉사자로 참가해보니, 나래가 월등히 모든 운동에서 뛰어났다. 그날 햇빛에 과다노출되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했는데, 시니어 여자부에서 4개의 종목에선 1등을 했고, 한 종목에서 2등을 했다. 멀리뛰기 부문에 내가 있었는데, 정말 내 딸이 그렇게 잘하는 걸 보니, 내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간에도 잘했지만, 몸에 살이 빠지면서 날렵해져서 더욱 잘하게 된 것 같다.

그 뒤로 지역경선에 나가서도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왔으니, 다른 어떤 것보다 체력에 뒤짐이 없는 것이 자랑스럽다.

 

말하자면 나래는 완벽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1살반쯤 되었을때, 이모가 나래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몇번이나 손바닥을 치며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나래는 전연 따라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기를 몇달? 혹은 몇주가 지나자, 어느날 말을 배우기 시작한 나래에게서 나는 노래소리를 들었는데, 1절부터 2절까지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한꺼번에 불러제꼈다. 그때의 놀라움이라니.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보여주는 그런 성격이 아닌가 싶다.

 

대충대충, 대강대강, 둥글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와, 스스로에게 완벽해질때까지 전연 표시를 보여주지 않는 딸 사이에는 많은 간격이 있었는데, 이제 내가 많이 귀를 기울인다.

 

어제 아침, 여행 경비이야기가 나왔다.

용돈을 조금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면 되겠냐니까, 적어도 50달러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침을 튀기며(그동안 그애에게 들어간 돈이 머리속에 물결처럼 펼쳐지는 걸 느끼며) 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냐?며 돈을 아껴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애고, 삼박사일 여행에 그 정도 있어야 하나 보나 마음을 바꾸고 50달러를 들고 나왔는데, 나래 하는 말이,,, 생각해보니 한 40달러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가져가라고 돈을 내밀자, 그중에서 10달러는 남겨놓고 가져간다.

 

내가 그애의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장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 마음안에는 나름대로 질서가 있는 것이다. 13년만에 극복한 귀에 구멍뚫는 것부터(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겁을 극복한 것이..), 언젠가는 스스로가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씨름하고.

 

언제인가, 텔레비전과 컴퓨터 사용문제로 아이들과 회의를 하다가, 언성을 높이게 됐다.

내가,

만약에 너희들이 엄마에게 믿음을 주면, 나는 컴퓨터 시간을 일일이 규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자, 나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의 관점은 엄마가 나를 믿어주면, 그렇게 책임감있게 할 수 있다고 뒤집어서 말했다.

 

또 어떤 화냄끝에 엄마는 내가 아무런 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지적해서 그말에 찔려, 더이상의 논쟁을 할 수 없었던 때도 기억난다.

 

이번 여름이 지나면 고등학생이 된다.

동생들과 차별화되고 있다. 제가 갖고싶은 물건, 옷 등이 많다.

수영복도 특별한 어떤 브랜드, 어떤 디자인이 있어서 졸업선물로 사촌언니가 주문해서 사주기로 했고, 음악을 듣는 기계인 I-Pod는 우리가 선물하기로 했다.

시장제품(노 브랜드) 선호자인 엄마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런 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올 여름 썸머잡을 줄 생각이다. 가게에서 훈련시켜 일하게 하는 것. 나래도 기대에 차있다. 책임을 완수하면 보상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되겠지.

 

졸업여행이 끝나면, 또 졸업식이 기다리고 있다.

몇달전부터 준비해온 일. 미용실 예약도 되어있고, 드레스와 뾰쪽구두도 준비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뽐내는 날.

 

동생들은 데리고 오지 말라(분위기 망칠지도 모르는..)는 축제의 날 졸업식에 우리는 6명의 티켓을 샀다. 저녁도 먹고, 사진도 찍고, 식도 보고

 

어제 저녁, 나래야. 여행하면서 힘든 일, 혹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은 일 있으면 기도해라.. 믿음의 엄마도 못되면서, 딸은 하나님과 붙여놓고 싶은 엄마의 욕심에 한마디를 보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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