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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모성애 드러내기

가슴안에 파닥이는 소리가 있다.

내가 아닌데, 주연은 내가 아닌데,

반짝 반짝 빛나는 그들 앞에서,

내 마음안에도 후두둑 날개를 터는 작은새가 있다.

 

아이들을 뒤쫓아 학교로 가본다.

새 학용품을 필통에 가득 담고, 쓰지 않은 여백의 종이를 바인더에 채운,

새 운동화에 뽐나게 빼입고 가방을 메고 사라지는

아이들을 따라 나도 학교로 달려간다.

 

생각뿐이다.

 

새학기가 시작됐다.

 

원없이 놀고, 아이들은 학교가기 며칠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학교가 싫고, 방학이 좋다"고 말했던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 마음안에 감추인 어떤 기대들이

개학일을 앞두고 퐁퐁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며칠전에,

신문에 껴온 "성인 학교" 프로그램을 훑을 기회가 있었다.

 

영어 크레딧 코스가 있다.

기초를 넘어서, 고등학교 학생들 수준의..

일주일에 두번, 한번에 3시간씩..

 

영어공부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매주 2번 밤마다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아이들이 집에 있을때,

무조건 집에 있어야 한다,고 나를 일깨운다.

 

매년 했던 합창도 접은지 오래됐다.

비단 일주일에 한번 2시간 가량 시간을 비운다지만,

그것도 벅찼다.

 

지난 여름은 마구 헝클어진 화투짝같은 날들이었다.

 

책임질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임시방편적인 일들을 만들며 살았다.

 

정시에 밥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도,

아이들의 과제물을 살펴줘야 하는 것으로부터도, 해방됐었다.

 

때맞춰 일하는 사람이 장시간 앓아눕는 사건이 발생해서,

남아있는 나의 인력을 그곳에 투입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방치하고,

나는 가게로, 뛰어다녔다.

 

안다 알어.

하루이틀, 혹은 며칠쯤은, 엄마아빠없이도 아이들에게 아무런 표가 나지 않는다.

벌써 많이 자랐지 않는가?

 

가게일과 이런저런 일로

나와 남편이 지치기 시작할때쯤,

아이들과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분별없는 둘째의 친구사귐에 쐐기를 박고자 했던 시도에서,

간단히 말하면 나와 남편의 케이오 패였다.

 

특히 남편은,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자, 우격다짐으로 무엇가를 주지시키려고 했다.

예전에 우리의 부모들에게서 받은 그 교육, 혹은 학교에서 행해졌던 권위적인 표현들..

온갖 것을 동원했지만, 아이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남편은 성난 소처럼 씩씩거리고,

슬픔에 빠진 아이들은 저이들끼리 모여들었다.

 

"아빠,  harsh 하지 말아요!"

둘째를 몰아부치는 아빠에게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막내가 제 언니편을 들면서, 그렇게 말한다.

 

외국시장에 디비디로 나온, 영화 <빈집>을 시청하다보니, "harsh"라는 번역이 나온다.

잔인하게 고문하는 못된 형사에게 같은 동료형사가 그렇게 지적한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뒤통수를 맞은편이지만,

그래도 그만하게 끝난 것이 다행인 것 같다.

 

다음날, 아이들에게 "아빠가 너무 화나서, 그랬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가 가게일로 힘들었는데, 이제 조금씩 정리가 된다. 너희들을 위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기 바란다"는 말로, 한명씩 돌아가면서 해명을 했다.

 

어쨋든, 엄마가 바쁘므로 생긴 일이다.

아이들은 저희들 나름대로 삶을 꾸려나가다보니, 친구문제도 생기고

여러가지 것들이 중첩이 되었다.

 

엄마만 그들과 밀착되었어도,

그렇게 심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남편에게도 한마디한다.

십대를 기르는 아빠가 되려면, 옛날 어린아이들의 아빠였던것으로도,

옛날 타입의 훈계로도, 부족하다.

 

무언가 우리가 변해야 한다.

아이들의 말을 깊이 들어줘라.

아이들의 친구를 판단하고, 그들의 부모흉을 보고..

그런 것은 아이들 앞에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지키지 못할 "협박"도 이미 그 실효성을 잃은지 오래다.

 

어쨋든 이런 전쟁을 통과하여,

아이들이 학교 준비를 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첫날을 보내게 될 나래!

엄마와 아빠의 중간키쯤 하는 키크고 여드름난 아가씨, 루미는 7학년에 들어간다.

매일 새벽, 엄마아빠방에 오는 것을 끊은 지, 몇달후부터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가 없이도 잠을 자게 된 미리, 막내는 5학년이 되었다.

 

오늘은 도시락을 7개 쌌다.

 

여름방학동안 한국에서 잘 지내다 온,

우리집의 세 남자, 재원 재용 선재 것까지.

또 하나는 도매상가는 남편, 차속에서 먹을 수 있게 아이들과 같은 메뉴로

도시락 가방을 만들었다.

 

재원 재용 아빠는,

우리 남편처럼 중년 아빠의 위기에 처한 것 같다.

게으른 아이들을 "훈육"하다가 지친 이야기를 어제밤 전화로 전해준다.

 

선재 어머니는,

옛스런 편지지에 아이를 부탁하는 편지를 동봉해서, 햇고춧가루 봉지속에 함께 묶어 보냈다.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있는 그분의 아름다운 아들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글씨로.

 

우리집의 항해가 시작된다.

나의 철없는 감상도 조금 줄어들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는가?

아이들의 뒤꽁무니에 서서,

나는 그들안에 있는 비밀의 새들이,

한마리씩 날아오르는 것을 지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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