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야.
어제밤의 대화에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를 이해해줘서 고마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내가 어제 끄집어냈던 문제들로부터 풀어보기로 하자.
첫번째가 언니옷을 말없이 입고나가는 문제였지.
오래전부터 나래가 불평했었다. 네가 제옷을 (훔쳐) 입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불평을 하는 네 언니의 속좁음을 오히려 타박하곤 했었다. 그래도 그 빈도수가 늘어나서 네게 주의를 주면, "내 옷장에 있었다"는 둥 여러가지 변명을 했지.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언니, 동생 옷을 공동으로 입던 우리 시절 이야기로 너희들을 설득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언니가 학교간 틈을 이용해서, 욕심이 발동 후다닥 옷을 줏어입고 나가는 것은 애교일수도 있다고, 그런데 언니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언니의 불평이 잇달아서 나는 너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화를 내기도 하였다. 네 언니가 싫어하는 일이니, 네가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었지. 그런 정도면 일이 수습되었어야 하는데, 비슷한 상황은 재연되고, 너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옷"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어쩌면 네가 갖고 있는 총체적인 부조리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어제였지. 마지막 학교 가는 날, 네가 황급히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대문을 나가서, 나는 너 가는 모습을 보려고 창문을 통해서 밖을 내다봤다. 그러다 못볼것을 보고 말았다.
집앞에 누구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언니 치마를 가지고 나가서, 대문밖에서 입고, 속에 입었던 반바지를 벗어서 가방에 넣는 모습. 흠... 범죄자의 모습이었다고 하면 좀 심하려나.
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안좋았다. 엄마와 언니가 싫어하니, 대문 밖에서 입을수밖에 없었던 네게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네 말대로 "Big talk"를 하게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내게 너는 거짓을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시인했다. 엄마의 화를 두배로 돋구면서 너는 왜 그래야 했나. 문제는 네 외모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예쁘게 차리고 나가고 싶은 마음에, 다른 것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네 옷만으론 안되니 언니것을 빌려서라도 그날 최고의 상태를 만들고자 하였었다.
너와 대화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알게 됐다.
예쁜 옷을 입는 친구들 사이에서 지고 싶지 않았고, 외모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들 사귐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면서 너는 점점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네가 고백했다.
그래, 두번째 문제, 친구들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네가 외모에 그렇게 치중하게 된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쿨"해 보이고자 함이었다. 주늑들지 않고, 그들 사이에 부각되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있었다고 네가 말했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다고. 머리카락을 아무리 염색하고, 얼굴을 화장으로 꾸며도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이었을 것이다. 네 아빠와 네 흉을 자주 본다. 너는 비추이는 것이면 언제나 네 얼굴을 들이대고 들여다본다. 유리창은 기본이고, 숟가락 심지어는 선그라스도 네게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걸 왜 우린 들 모르겠니? 밥먹다말고 숟가락을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막혔다.
너는 친구가 없었을 때 어려웠던 점을 회상하며 친구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셀수도 없는 친구들이 네 곁에 있다. 네 시간의 대부분을 그애들과의 놀이에, 전화에, 생각에 다 보내버린다.
이사오기 전에 사귄 친구와 이곳에서의 친구들을 또 친구들로 묶어놓고, 너는 그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행복의 비명을 질러댔지만, 결국 네게 남은 게 무엇이냐.
우리는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형편없이 떨어진 네 학교성적과 유치원2년 포함, 10년간의 초중등학교 졸업에 네가 건진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네가 상을 받지 못한 것, 그것이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엄마는 네게 큰 기대가 있었다. 언니의 졸업식에서도 네 졸업식을 상상하면서 환상에 들떴었다. 너의 지난 1년간의 결산이 그동안 닦아놓은 그 모든 것들을 망쳐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너뿐 아니라 엄마도 한통속으로 볼 수 있을 것같다. 딸의 요구에 휘둘리면서 너를 서쪽으로, 동쪽으로 친구들 집으로 날라다 준 것도 엄마이고, 우리집에서의 크고작은 모임들에 후원을 선 것도 엄마아빠였다.
어제 말했듯이 우리는 "완벽한 캐네디언 부모"가 아니다. 말이 서툴고 이곳 문화에 익지 않은, 눈치보면서 너희들을 키우는 "한국엄마 아빠"이다. 그런데 이제 좀 알겠더라. "도"가 지나친 것을 잡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잘됐다. 바닥으로 미끌어져 내려가보면, 다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게 되니. 이렇게 부끄럼을 겪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너는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생, 언니도 너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건 또 다른 거짓말이다. 네가 가족들에게 신경쓸 시간이 없었다. 언니, 동생을 무시했다. 너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으로 네 권세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침인사를 해도, 저녁인사를 해도, 작별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는 너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기로 하마. 엄마가 차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정말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어릴때부터 네 강단을 믿어왔다. 언니도 이겨넘기는 논리도, 재치있는 대화술도 내 딸이라기엔 분에 넘친다는 생각도 해왔다.
틴에이저가 되면서, 이성에 눈뜨고 외모 가꾸기에 시간을 들이면서 이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믿고 싶다.
루미야.
네가 그랬다. 나도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고. 예쁜 기분이 들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 최대한으로 예쁘게 꾸미려고 했지만 한계를 느낀다는 말.
성형이야기, 인기있는 연예인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었다. 마이클잭슨이 큰 본보기가 아니더냐? 인생은 이쁜 것으로, 인기있는 것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심지어 행복이란 것도 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좀 슬프면 어떠냐, 좀 지루하면 어떠냐, 좀 뒤처지는 것 같으면 어떠냐, 그런 모든 것들이 인생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철학적이 되가는 것 같지 않았니?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것도 양념처럼 넣어서 말해야 했지만, 하나님을 네 인생에 넣는 것은 양념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라는 걸, 하나님앞에 네 작은 인생이 접수되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걸 네가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네 삶이 정돈되지 않고 많이 부풀려져있다. 그 많은 친구들과의 사귐을 어떻게 할꺼냐. 그 방법을 바꾸는데만도 특별한 노력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친구가 많은 것이 문제냐고 묻는 네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 삶의 작은 부분이 마치 전체처럼 커져버린 것이 문제라고. 그래서 다른 것들이 자라날 여지가 없다고. 너를 예쁘게 꾸며서 친구들을 네 곁에 모으고, 그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지난 일년간 부족함 없이 해보았다. 그리고 그것의 비극적인(?) 종말도 경험했다.
너는 지금과 같이 "페이크(가짜)"같은 생활은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등학교에서는 달라질 것이라고. 그래 믿어보마.
엄마를 봐라. 옷이 몇벌이 안되어도, 친구가 많지 않아도, 목에 자잘한 주름있고, 이쁘게 생기지 않았어도 그런 것들 때문에 주늑들지 않는다고. 톰보이(개구장이 소년) 스타일이면 어떠니? 엄마는 그게 좋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맺었었지.
루미야.
오늘 아침 기러기 부모가 어린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있더구나. 새끼 기러기들이 언젠가는 날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모를 떠나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날지 못하는 새끼들 옆의 부모 기러기는 오랫동안 날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네 아빠가 말해줘서 였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날수 있는 기러기 부모가 날개를 접고 있다는 건 참, 매일 그들을 대했어도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엄마도 네 옆에 지키는 자로 있는다. 네가 날 수 있을 때까지 내 날개를 깃털로 감추고 말이다. 엄마는 날개가 없다구? 그건 네가 모르는 소리다. 네가 날 수 있을때 아마 알게될 거야. 네 엄마도 날개가 있었다는 것을...
루미의 졸업사진
남학생 10명, 여학생 7명 , 총 17명이 졸업했습니다. 작년에 이 학교에 합류해, 적응하느라 애쓴 루미(오른쪽 세번째, 알만하다구요?) 대견하다 말해줘야 겠지요? 왼쪽은 교장, 오른쪽은 담임교사.
예쁜 옷들만 입고 다녀서 루미를 고무시켰다는 여학생 7명.
조금 더 가까와 보이는 네명의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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