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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교과목 교사와의 면담후 ... 변명이 산을 이루다

집안에 때때로 폭풍우가 몰아친다.

 

이번 폭풍은 조금 컸다. 나는 그 폭우를 맞고 젖은 생쥐꼴로 며칠을 지내면서, 스스로를 추스리느라 혼이 났다.

폭풍우의 한가운데도 아니고, 그 주위에 있던 나도 그러했는데, 정수리에 폭우를 받았던 아이들은 어떠했는지, 그 속내를 가늠해볼 수 없다.

 

그래. 문제는 그놈의 성적 때문이다. 폭우를 퍼붓는 쪽에 있어야 마땅했는데, 남편의 침튀기는 설교앞에 나 스스로를 가릴만한 것이 없음을 발견했다. 내 자신의 직무유기에 대한 폭우로 받아들인 셈인가?

 

둘째가 "임시성적표"를 들고왔다. 왜 "임시성적표"라고 하는가 하면 2학기가 시작되면서 중간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interim이라 하여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가정에 보낸다. 그동안 숙제와 쪽지시험, 테스트 등을 포함해서, 부모와 학생 교사간에 "선지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interim report: The interim Report serves as an early indicator of the student's progress.

인터림 리포트: 인터림 리포트는 학기초에 학생의 학업성취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성적표 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놀기만 한다고 우리에게 구박을 받던 둘째의 인터림 리포트는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문제는 큰애에게서 나타났다. 밴드가 끝나고 늦게 집에 온 그 아이는 제 동생의 성적표를 흘낏 보면서 "잘했네" 혼잣말로 한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보여주겠단다.

 

밤이 으슥해서 성적표를 들고오는 아이의 얼굴표정이 심상치않다. 남편과 나는 서로 돌려가며 4과목의 점수를 훑었다.

 

내안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정전이 된듯 깜깜해진다.

 

체육만 괜찮고 모두 낙제점수에 가깝다. 그리고 실제로 한 과목은 낙제를 받아왔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남편의 호령과 아이의 설명, 그리고 그덕에 불려올려온 동생들의 울음이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든다.

 

남편은 "컴퓨터"가 주범이라고 그것을 모두 없애겠다고 협박하고 나선다. 큰애는 자신이 잘못했을뿐 동생들은 잘못이 없는데 왜 아빠는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벌을 주는가 항의한다. 설왕설래가 오고갔다.

 

한바탕의 소란과 울먹임 속에서 들려온 큰애의 변명이다.

 

* 예전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최고 점수일때는 평균 94점일때도 있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걸 쉽게 생각했다. 내 자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전에는 학교수업만 신경썼는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가지 다른데 관심이 가고 있다. 

 

* Writer's Craft 에서 내준 과제가 다섯개쯤 되는데 모두 "제한 날짜"가 없어서 미루고 몇개를 제출하지 않았다. "글짓기"는 "영감"이 필요한 일이라, 마감일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선생이 말했다. 이제 다해서 제출하면 점수가 올라갈 것이다. (바로 이 과목이 낙제점수를 받아왔다, 그리고 교사는 이 성적은 공식적인 것은 아니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개별 편지를 덧붙여왔다)

 

* 생물은 약간 걱정이 된다. 12학년 생물이라 벅찬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할것이다.

 

* 수학은 첫번 시험을 마치지 않아서 점수가 그렇게 나왔다. 무슨 일로 결석했었는데, 보충테스트를 했어야 했다. 한번은 선생에게 문의했는데, 또다시 물어보지 않은 것이 그렇게 됐다.

 

남편은 큰애의 변명을 듣기 싫다며 막는다.

"마감날짜"를 지정하지 않았다고 마냥 붙잡고 늘어졌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고, 이런 성적표로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나는 큰애가 첫 학기를 시작할 무렵, 학교일에 여러가지 연루된 것을 염려했었다. 2월초에 4박5일간의 퀘벡 여행을 다녀왔고, 학교 밴드부(재즈밴드, 컨서트밴드 등등)에 속해서 많은 시간을 써야했고, 게다가 경연대회때는 수업을 빼먹기도 하고, 학생회(student council)의 멤버로 외부 세미나에 몇번이나 참여했고, 매일 아침 방송을 맡아했다는 것도 지금 따져보면 좋은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인이 원한다면 과외활동을 여러가지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빗어지는 수업결석등의 문제는 완전히 학생의 몫이다.

 

지난 목요일 학교에서 교사와의 면담이 있었다. interim 성적표를 가지고 교과목 교사를 만나는 것이다.

 

마음에 부담을 안고 학교를 찾아갔다. 면담장의 분위기는 예년과 똑같았다. 사각의 체육관에는 책상 하나에 교사들이 앉아있고, 두개의 의자가 맞은편에 놓여있다. 각 교사의 머리위에는 그의 이름과 담당과목의 이름이 쓰여져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습기록을 가지고 부모를 만난다. 절반정도의 교사는 노트북을 이용해 저장된 것을 찾아 보여주기도 한다. 부모들은 만나야 할 선생을 찾아다니며 줄을 선다. 교장선생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다리는 부모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나는 9학년 둘째의 선생 4명과 큰애의 선생 4명을 만나야 한다. 요령껏 줄서야 빨리 끝날 수 있다. 어떤 학부모의 면담시간은 길어지기도 하고, 어떤 부모는 짧게 끝낸다. 그러나 보통 한 선생과 길면 1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 나는 1시간 30분 걸려서 선생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큰 문제가 없는 둘째 교사들과의 상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영어, 미술 선생이 그녀를 칭찬했고, 과학 선생은 예전에 나래(큰애)를 가르쳤었는데, 어쩌면 자매가 그렇게 다르냐고 신기해했다. 문제는 불어 선생. 

 

둘째의 말에 의하면 수업시간 내내 불어로 이야기해 알아듣는 아이들이 적어, 문제가 많다고 투덜댔다. 그 불어선생은 내게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이 큰 문제인데, 둘째도 떠드는 아이들중 중간치는 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곳은 캐나다니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댈 수도 없고..."하면서 웃는다. 그녀는 한국에서 영어강사로의 경험이 있으며 한국남편과 만나,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한국의 정서를 조금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한국에서 중고등학생을 때릴 수 있나 그건 모르겠다. 그녀의 남편이 자라던 때, 그리고 내가 자라던 때는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많이 "당"하면서 컸던 게 사실이라 그녀의 농담에 조금 웃어줬다. 

 

"아이들이 불어로 말해서 못알아듣는다고 하던데.."하면서 운을 떼었더니, 모두가 그런 불평을 하는데, 그렇게 안하면 언제 불어를 배우겠느냐며, 잘 듣다보면 조금씩 호전될 것이라고 응수한다. 아무리 그래도, 약간씩 영어로 잡아주면서 해주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어수업시간이 엉성하고 무질서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큰애가 낙제점을 받은 The Writer's Craft는 12학년들을 위한 "영어 작문" 코스이다. 12학년용이라는 것도 나는 글을 쓰면서 수강신청설명서를 훑어보면서 알게됐다. 11학년이면서 12학년들과 공부했었다니, 벅찼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을 보면 고등학교 학점제가 내가 다녔던 대학과 비슷하다. 나는 대학 2학년때 초과학점을 이수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져(고득점자에게 그런 혜택을 줬다, 내 자랑같다만..) 대학 3학년 필수과목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를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1년이란 학업기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라는 걸 그때 알았다.

 

****2년전에 "캐나다고등학교 자세히 들여다 보기"라는 글을 썼다. 그곳에 고등학교 학제가 잘 설명되어 있다.*****

       http://blog.daum.net/mindyleesong/6575321

 

영어작문 교사는 교육부 지침상, "마감날짜"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본인도 그런 정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란다. 뭔가 마음에 답답함이 쌓여,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 아니겠냐"고 조그맣게 물어보니 그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그렇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밀렸던 과제를 그 교사는 오늘 받았다며, 중간성적표가 나오기까지는 1달 정도 남았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역량"은 있다고 본다면서.

 

생물 선생은 큰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공부를 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자신의 딸이 현재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심화된 과학 코스가 많이 있다며, 큰애에게 생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참 이 과목도 12학년 코스라 큰애가 따라가는데 애를 먹고 있다 싶다. 수강신청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나와도 의논했는데, 제대로 그녀를 인도하지 못했다)

 

내 또래 되어보이는 장난기 가득한 수학선생과의 면담이 인상에 남는다. 매주 금요일날 수학시험을 보는데, 첫 시험을 나래가 놓쳤고, 그걸 회복하지 않은 것이 점수가 낮아진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어제 시험을 봐서 새로 작성된 점수를 보내주었는데, 받았냐고 물어본다. 이유가 있어서 수업에 빠질수는 있지만, 그날 공부한 것과, 과제물, 그리고 테스트 등은 학생이 알아서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래의 다른 과목은 어떠냐고 은근히 물어온다. 나는 "다른 과목도 형편없다"며 "아주 죽을 지경"이랬더니, 자신도 고등학생 딸이 있다며 "부모역을 한다는 게 Fun하지 않느냐"며 껄껄 웃는다.

 

면담장을 빠져나오는데 문제는 어느정도 풀린 것 같이 생각되었다. 일찍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부모나 본인이나 "경고"를 받고 그에 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것 말이다. 남편은 나래의 변명이 듣기 싫다고 일축했지만, 나는 그녀의 변명에 한 마음을 기대고 서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내가 주절이 나열한 그 염려와, 원체 친절한 교과 선생들의 위로에도 한껏 고무된다.

 

그리고 맘속으로 "잘못된 수강신청과 교과외 활동이 주된 적"이었다고 정리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듣기 싫은 것, 까다로운 과목등을 제하고 나면, 수강신청할 수 있는 과목에 한계가 오게 된다. 아마 나래도 이리저리 재다가 보니, 결국 12학년 코스를 2개나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 큰 오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업후의 시간을 이용해서 하는 과외활동이라도, 스포트같은 경우에는 시합이 있어서, 수업을 빠지게 되고, 밴드부도 다른 행사에 불려간다거나 경연대회등이 있으면 수업을 거를 수밖에 없다. 수업뿐 아니라, 그것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되므로, 매일매일 해야할 과제를 미루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언니의 경험을 토대로 동생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게 된다. 가끔씩 느끼는 것이지만, 큰애는 부모들의 "실험대상"인 것 같다. 어떻게 부모역을 해야하는지, 큰애의 성장을 보며 교정을 반복한다. 한국에서의 교육경험만으로 아이를 인도하니,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 제대로 역할도 하지 못하면서 "화"내고 싶을 때 "닥달"할 수 있는 부모의 권력행사에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

 

바라기는 이런 여러 변명들이 마땅한 이유들이 있어 그녀가 일어서는데 거름이 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오늘의 글은 "변명"이 파도를 이뤄 넘실댄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마지막까지 소망을 놓지 않는 것.

 

앞마당에서 솟아오른 작은꽃들...  아이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