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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축 졸업!! 송미리

 

성적에 목숨거는 동양엄마들을 풍자한 동영상을 아이들이 보여준적이 있다.

인터넷상에 널리 퍼진 듯한 그 영상은, 중국인엄마로 분한 학생과 그 아들이 성적표를 갖고 이야기하는 게 줄거리다.

엄마가 하나하나 성적을 짚어나가면서 아들과 대화한다. 대충 이런 분위긴데..

수학 A 흐음

과학 A- 으음

역사 A+ 호오

......

 

영어 삐 ~~이 (B) !!!

이때부터 이 엄마의 목소리가 넘어간다.

딱딱하고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아이에게 훈계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먼땅에 친구들, 가족들 버리고 이곳에 왔는데..

너는 성적을 이렇게 받아서 되니???

 

 

 

다른 내용은 잊어버렸어도 엄마로 분한 이 학생의  "all the way came from China!!" 하던 그 톤은 안 잊혀진다.

(미리의 도움으로 다시 비디오를 보니, B+ 맞았다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어떤 벌을 받겠느냐고 다그치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

 

이땅(캐나다)에 사는 아이들은  B맞은 것을 잘못했다고 야단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 동영상이 아이들 사이를 돌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제목 자체도 Crazy Asian Mother 라 했으니, 인터넷상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양엄마들이 우스운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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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엄마를 희화하하기 위해 제작된 것 같은데 이 동영상은 넘 이야기가 아니다. 웃으면서도 씁쓸해지는 이유가 그런 데 있다.

 

언제나 실망스런 아이들의 성적표를 볼때마다, 표현하고 싶은 만큼 했다가는, 본전도 못찾는 것을 알아 절제하는데도, 아이들과 부딪칠때가 많았다. 어떤때는 훈계를 했다가 오히려 훈계를 받기도 하고..

 

정부에서 인정하는 Level 3(70점-80점)가 넘었는데, 왜 "잘못했다"고 야단이냐는 게 아이들의 주된 공격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는둥 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유를 대지만, 아이들의 설득자료가 항상 달리곤 했다. 사실 85점을 맞아도, 그 학과목의 반평균이 88점이면, 왜 너만 85점이냐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건 나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형편없는 점수갖고도 당당한 걸 보면  기가 막힐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실망스런 점수가 늘어갈수록 나의 기대치도 낮아져가고... 나중에는  반평균 밑으로 가라앉으면 안되겠지?

하면서  잠정적 휴전에 들어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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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막내딸이 드디어 초중등학교를 졸업하는 식이 있었다. 토론토 계신 할머니가 오시기로 했는데, 모시러 가야하고, 모셔다 드려야 하고... 할머니가 그 번거러움 때문에 오시기를 포기하신다는 전갈을 받았다. 위로 두 언니도 초반 계획에는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시험이 다 끝나지 않아서 안된다는 늦은 취소고. 조촐하게 엄마, 아빠만 참석하는 졸업식이 되었는데....

 

세째는 어쩌면 거저 키우는 게 아닌가 싶다. 위로 두 언니들에게는 기대치를 높게 해서인지, 그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아서인지, 언제나 마음에 차지 않는 점이 있는데, 막내에겐 그런 게 없다. 말하자면, 언니때는 졸업식에 뭐 하나 상장을 건지나, 눈꼬리를 세우고 지켜봤는데, 이번에는 그저 별탈없이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이곳 졸업식은 성대하게 치뤄지는 편이다. 아이들은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성장을 한다. 남학생들도 모두 넥타이에 정장차림이다. 머리치장, 화장 등 최대한 단장을 한다. 미리는 제 언니가 머리를 만져주고, 화장을 시켜줬다. 나는 미리의 손톱과 발톱에 메니큐어를 발라줬다.

 

 

7학년 학부모와 학생들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졸업식이 시작됐다.

 

많은 상중에 하나이다. 최우수 학업성취상(Highest Academic Standing Award)을 호명하는데, "Mirie Song"하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서로 마주보고, 의아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번 성적표를 졸업식 전날 봤는데, 부족하던 수학점수가 그런대로 만족하게 나왔고, 취약부분인 "음악"과 "체육"을 평균점수 이상으로 올려서 잘했다고 하긴 했었다. 6, 7학년 담임을 했던 Mrs. Oberle가 상장과 상금을 전달해주었다.

 

사실, 성적표를 보면, 아이가 반에서 몇등을 했는지 알수가 없다. 개인의 점수옆에 반평균을 알려주는 것 외에 다른 단서가 없다. 지난 8년간 나는 미리의 성적이 반에서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상대평가가 아니고, 절대평가이면서, 각 과목에 선생의 구체적인 의견이  적혀있다. 어쨋든 8학년을 졸업하면서, 최우수 학생으로 화려하게 매듭을 지었으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수 없다. ^^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아이들의 학업편차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7학년 8학년 합반으로 운영되는 작은 시골마을이고, 졸업생은 겨우 18명이다. 교사의 관심이 골고루 미치지 않겠는가? 아이의 반에는 출중한 공부벌레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어쩌다 미리가 이런 상을 받게 됐으니 말이다.

 

 

위로 두 아이를 졸업시키면서 얻은 결론중 하나는, 초중등학교 실력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빛나는 상장을 받았던 아이들이, 뒤처지는 것도 보게 되면서, 상장에 목매는 게 그리 현명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래서 세째딸에 이르러서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비워졌는데, 예기치않은 이번 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성적에 목매는 "동양엄마의 속물근성"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졸업식에서 미리는, 제가 좋아하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시종일관 "흥분" 상태였다. 물론 상을 받기전부터. 그런데도 본인도 상상하지 않았던 상을 받고보니, 무대에 올라 덜렁거려서 여러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다. 막내딸의 친구들이라 그런지, 아무리 파진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었어도, 여학생들도 여전히 "애기들"같이 보인다.

 

페이슬리에서 이곳으로 이사오기를 싫어했던 미리가, 새 터전 마일드메이에서 작은 이정표를 하나 세우게 되어서 참 기쁘다. 대학을 갈 자신이 없다며, 칼리지를 가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오던 녀석이 이제는 조금 더 용기를 낼 것 같다.

 

냉장고에 작은 카드가 붙어있다.

 

Mirie,

Thank you for the lovely plant. It will look great in my flower garden!

Have a great summer and enjoy highschool.

It goes by so quickly.

I am counting on you to keep up your grades, but have some fun along the way. Come back and visit. You will be missed.

Mrs. Oberle

 

미리,

사랑스런 화분 준것 고마워. 우리집 정원에 심으면 보기 좋을거야.

여름 잘 보내고, 고등학교 생활 즐겁게 하기 바래.

정말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너의 앞으로의 시간들(학업) 지켜볼거야. 그러나 그 길에 "즐거움"도 함께 하길.

자주 방문해줘. 너를 그리워하게 될거야.

 

미세스 오버리

 

오버리 선생님은 미리가 처음 마일드메이 학교에 가던 첫해와 두번째해에 담임을 하셨다. 날카롭게 생겨서 나는 조금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분은 미리의 잠재능력을 일깨워주셨고, 호기심많은 미리를 잘 인도해 주신 것 같다.

 

미리가 어떤 화분을 사서 드렸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고보니, 졸업을 하는 마당까지 나는 선생님들 선물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둔한 엄마 대신에 고마움을 스스로 표현하는 딸이어서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다. 미리 담임을 했던 브라운 선생님은 자신의 교사경력 6년 동안 이번 아이들처럼 "괴상"하고 "독특"한 아이들은 처음이라며, 호기롭게 웃었다. 약간은 "괴상"한 미리의 엄마인 나는 선생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것 같다. 미리야, 앞으로 너를 바라보는 눈들이 좀더 많아질 것 같다.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