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롤에게 탱큐다.
그녀의 언급이 아니었으면, 현실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쉐롤은 틴에이저 두딸과, 아주 어린 세 아들을 키운다. 도시에서 캐리어 우먼이나 하면 어울릴 스타일인데, 시골에서 농장을 하는 남편과 세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위로 두딸은 먼저의 남자에게서 얻은 아이고, 세형제는 산적같이 생긴 현재의 남편에게서 얻은 아이들이다. 위로 두딸이 우리 아이들과 연배가 비슷하다.
나는 그들 부부를 볼때마다 미녀와 야수를 생각하고는 하는데, 그건 쉐롤의 미모와 그녀의 남편 헷지의 그 우악스러움에 있다. 그런 쉐롤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체면유지” 정도로 자신을 꾸미고 다니더니, 막내아들이 3살쯤 되니, 본래의 미모로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다.
영, 살림할 것 같지 않은 쉐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엄마요, 아내로 음식과 양육에 온갖 정성을 들이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때의 대화 덕분으로 우리는 그저 아이들 이야기 주고받는 정도로 지냈는데, 올 여름에 들어서면서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딸들 직장 잡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 때문에 쉐롤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첫째딸은 햄버거 가게에 취직이 되었는데, 둘째딸이 아직 직업을 잡지 못해 사방팔방으로 알아보고 있다면서. 그녀는 집에서 30분 걸리는 햄버거 샵으로 큰딸을 매일 출퇴근시켜주고 있다 하였다.
쉐롤 말마따나, 많은수의 고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은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개중에는 학기중에도 1주일에 10시간 정도 일하는데 투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일하는 이유는 자신의 용돈을 직접 벌기 위함이다. 우리 아이들만 해도 사적인 일에 돈을 쓰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돈버는 재미"와 "돈을 아껴쓰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올해 여름 특별한 계획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저희들에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불황의 여파인지, 아르바이트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음을 우리집의 형편에서도 느끼고 있었다.
둘째는 여름이 되기전, 동네 레스토랑에 취직이 되었다. “돈쓸일”이 많은 그애는 아르바이트 타령을 하더니, 이력서를 제출하고 용케 취직이 된 것이다. 식당이 가장 바쁠때, 몇시간씩 일을 주곤 해서 열심히 다녔다. 식당에서 요구하는 까만 티셔츠에 까만 바지, 그리고 까만 운동화까지 장만했다.
주인도 그렇지만,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아주머니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하더니, 몇주후인가 말하자면 “해고”를 당했다. 말도 없이 그 다음주 스케줄에서 이름이 빠져버린 것이다. 제 친구 몇명도 그렇게 “해고”되었다니, 그나마 마음에 위로를 삼았을 것이다.
“해고” 당한 이유를 속시원히 알고싶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식당에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짐작을 해보니, 이제 16살을 앞둔 어린아이가 제대로 일을 했을까 싶다. 음식을 나를때 음식물에 손이 들어갔다든지, 손님 테이블을 제대로 잘 닦아내지 못했다든지, 복장이 단정하지 못했다든지, 어쨋든 경영자 마음에 흡족치 못하였을 것이다. 둘째는 친구들과 이 식당에 자주 갔는데, 이제는 주인 보기싫다고, 가지 않는다.
큰애도 작년에 여름에만 오픈하는 동네 간이음식점에 취직을 해서, 두달간 돈을 모았다. 그 모은 돈을 필요할 때마다 통장에서 찾아쓰더니, 올 여름이 가까와오면서 돈이 하나도 남지 않았댄다. 그애는 대학에서 쓸 노트북 사는데 보탠다며 같은 곳에 이력서를 냈다. 그 식당은 둘째가 다니던 레스토랑에서 인수해, 올해 주인이 바뀌었는데, 이력서를 잃어버렸다고 한장 다시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취직이 되려나 생각했는데, 어쩐 일인지 연락이 없다.
워낙 작은 동네이고, 일자리가 귀해서 여러 사람중에 골라썼을테니 이력서를 좀 늦게 접수한 것이 이유일 수도 있고, 또 동생은 바로 그집에서 “해고”당했으니, 언니에게도 불똥도 튀었을지 모르겠다.
이런 형편으로, 나는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구할수 있으려나 내심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쉐롤의 이야기는 내게 반짝하는 생각을 주었다. 몇시간 아르바이트 때문에 먼 거리까지 운전을 해주기까지 하는데, 우리는 사실 일할 곳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페이슬리 가게에 아이들을 취직시키자 하는 발상이었다.
집에서 일터까지 차로 30분 가야하니, 그것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남편이 한의원 때문에 매일 출근을 해야하니, 이또한 다행이 아닐수 없다. 남편이 한의원 일을 하는 동안에 내가 가게를 보곤 했는데, 나 대신 아이들을 시키면, 아이들이 일을 배우면서 돈도 벌고 나중에 그 경험으로 다른 일을 잡을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번개같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큰애는 그때까지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고, 또한 집의 가게에서 일하는 것은 부모의 돈을 가져가는 것이란 생각때문에 탐탁해 하지 않는다. 둘째가 그 오퍼를 받아들였고, 막내는 일단 일을 배운다는 차원으로 시작해보자 하였다.
예전에 잠시 일을 해봤던 둘째는 역시 금방 일을 배웠고, 며칠전 통장을 오픈해서 입금했는데, 850달러 정도가 모였다. 둘째는 통장을 두개 만들어 하나는 대학학자금 적금으로, 그리고 하나는 일반 통장으로 오픈했다.
막내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어제는 나와 함께 오늘은 남편과 함께 마지막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다음주부터는 혼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할 생각이다.
제언니의 대학진학으로 아이들은 학자금 문제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막내는 "대학펀드"를 만들어야 되는것 아니냐고 묻는다. 지난번 졸업식때 학교에서 상금도 받았다. 그것을 "종자돈"으로 하여 막내는 통장을 개설했다. 약간의 이자가 붓는Saving통장이다. 지금부터 모으면 학자금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만큼 모이려나.
남편은 겨우 트레이닝한 막내딸의 급여를 정식 직원처럼 계산해서 준다. 또한 5시간 30분 일한 것을 7시간했다고 불려서 임금을 주니, 지난주 몇시간 일하지 않고도 돈을 두둑히 모은 막내가 기뻐한다.
막내는 트레이닝 중에 잠시 시간이 나니, 의자를 끌어다놓고, 잡지선반에 있는 책중에 주간만화를 꺼내들고 읽기 시작한다. 제 언니나 엄마가 일할때 신문 잡지 보는 것을 언제 눈여겨보았겠지.
"얘야, 이 물건 가격좀 찍어서 선반에 올리자"하면서 일을 가르치면서 "이곳이 네 부모의 가게니까 네가 만화책을 볼수 있다지만, 다른 곳에 취직되어서는 네 시간을 일하는데 써야한다. 그리고 우리 가게에서도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조금씩 휴식을 취할수는 있지만, 맘놓고 책만 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일러줬다.
어쨋든 그애들은 관대한 주인을 만나 "해고"의 염려가 없는 이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가끔 부모놀자고, 일을 맡길땐 아주 안좋은 표시를 내긴 하지만서도.
여름이 끝나가는 마당에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일하게 된 것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이 질리도록 놀뻔 했는데, 그걸 방지한 것도 아르바이트이고, 나는 살림과 여름놀이에 좀더 몰두 할 수 있었으니까. 엄마는 집에 있어야 어울린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이들은 일터로, 엄마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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