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리 첫목적지까지 오느라 소비한 우리는 조금 피곤했다.
멍턴(moncton)은 뉴브런스윅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노바스코샤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가 근접해 있어서, 지도상으로 보기에도 세 군데를 여행하려면 그 정도까지는 가야할 것 같았다.
캠핑장은 번잡했고, 인터넷에 굶주려있던 아이들에게 희소식이 있었으니 인터넷 사용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접속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들고간 노트북으로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조금씩 인터넷을 맛볼 수 있었다. 아주 잠깐, 눈길을 준 다음 첫 페이지에는 아프간 피납자중 한명의 목사가 살해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피납소식을 듣고 떠나왔는데, 우중충했던 마음이 갑자기 더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한국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진짜 여행이 시작되려는 네째날 오전부터 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우리가 동해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방문했던 동네 사람이 추천해준 곳을 일단 가보기로 했다. Bouctouche라는 곳인데, 지금도 이 지역의 이름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보우터쉬(?)는 바닷가에 접한 마을인데, 하이킹하기에 좋다고 한번 꼭 가보라고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단다.
이곳은 불어권 마을이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그날 무척 더웠다. 선선했다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으리라. 해변을 따라서 난 길을 같이 걷자고 하자, 아이들이 온 인상을 썼다. 사실 그곳까지 안가도, 비치를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우리들이, 한가하게 산책을 하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을 수도 있었다.
바닷가라 살아있는 고동이 뻘에 널려있고, 물미역같은 해초, 아이들이 젤리피쉬라고 부르던 물색깔의 투명한 물고기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했지만, 땡볕 아래 그 길을 걸을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었던 것 같다. 거진 1시간 달려온 길을 되집어 가게 되니, 갑자기 어떤 것을 해도 그다지 즐거울 것 같지 않은 염려가 들기 시작했다.
프랜치 마을 해변가 .. 저이들 애인과 왔다면 해변가를 하루종일 걷는다 해도 좋다 했을 것을... 흥!!(아이들에게)
두번째 행선지로 노바스코샤의 핼리팩스를 GPS에 넣으니, 지도에선 가까와 보이는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나온다. 아이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건이 일어났다.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사줬다. 둘째는 치킨숩을 먹는단다. 차에서 먹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음식을 넘겨주었는데, 식당앞에서 우회전하다가 둘째가 무릎에 놨던 치킨숩을 엎은 것이다.
차를 한곳에 주차하고, 상황을 보니 뜨거운 국물이 다리에 쏟아져서 둘째가 운다. 옆에 앉았던 큰애는 동생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전에 둘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나 보다. 둘째는 울고, 나와 남편은 아이를 안정시키느라, 큰애에게 동생 도와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화내는 우리에게 큰애는 더욱 덤벼들었다. 동생과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큰애와 둘째의 심한 알력이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남편은 "너희들이 계속 그러면 좋은 아빠가 될수 없을 지도 모른다"며 한마디 던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날의 일정은 그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때 남편이 한 사인판을 보고 말한다. "마그레틱 힐이 여기다. 이곳에나 가보자"한다. 바로 하이웨이 곁에 있는 마그네틱 힐은 인터넷에서도 선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그네틱 힐 사인을 따라서 갔다. 그곳에 가니, 큰 놀이동산이 나온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그곳에 뭔가가 있을법해 마음에 안정을 준다. 마그네틱힐은 얻어듣기로 기아를 중립으로 놓는데도 차가 언덕길을 올라온다는 신비한 길이다. 테마공원이 옆으로 보이고, 사람들이 피크닉을 하는 작은 수풀옆에는 동물원이 있었다. 동물 알러지가 있는 큰애 때문에 동물원에 갈수도, 수영복 입고 본격적으로 노는 테마공원은 그냥 훅 둘러보고 갈 우리같은 관장객이 갈곳이 아닌 것 같고. 두리번거리며 마그네틱 힐을 한바퀴 돌았는데도 어디를 말하는지 알수가 없다.
두번째 참담한 실배를 하려는 찰나, 남편이 다시한번 찾아보자고 말한다. 나는 도로가에 마그네틱 사인을 박아놓았으니, 이곳이 마그네틱 힐이 아닌가 하면서 궁시렁댔는데, 다른쪽으로 가니 입장료를 받는데가 있고, 마그네틱 힐이 시작되었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언덕밑으로 한 300m 운전해서 내려간 다음, 옆의 차선으로 바꿔서 차를 중립(N)에 놓고 개스를 밟지말고 핸들만 잡고 올라오라는 것이다. 우리앞의 차들이 바로 그렇게 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고 내렸다.
아이들은 약간의 호기심의 눈으로 차를 타고 내려갔다. 분명한 언덕길인데, 우리차가 뒤로 올라오고 있었다. 중간에 차에 불이 들어와서, 나는 순간적으로 차가 움직이지 않아 개스를 밟았나 했다. 나중에 언덕위에 올라온 다음에 들으니, 개스를 밟지 않았는데도 차가 움직였다 한다. 중간에 불이 들어온 이유는 차가 너무 빨리 나가서 브레이크를 밟았단다. 하긴 개스를 밟으면 차에 불이 들어오지는 않지..
길에 자석이 달려있어 차를 끌어댕긴다는 그런 의미의 마그네틱 힐은, 사실은 지형적으로 언덕처럼 보이지만 내리막길이란다. 영 믿기지 않지만 말이다.
멍턴 시의 마그네틱 힐... 지나가다가 한번쯤 발걸음을 멈출만한 곳.
어쨋든 그래도 뭔가 한가지를 하고 나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트레일러로 돌아갈래?
나머지는 엄마, 아빠만 갔다올께.
....
트레일러로 돌아가지는 않는단다.
그래 그럼 노바스코샤는 너무 머니, 가까운데 가보기로 하자.
여행은 알다시피 네가 보고싶은 것만, 흥미로운 것만, 대단한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실패도 한다. 그래도 우리가 나왔으니, 이곳저곳을 다녀봐야 할 것이 아니냐.
엄마가 오자고 해서 왔지...
그것도 그렇다. 이왕 왔으니 더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엄마의 강권이었더라도 네가 결정했으면, 최선의 것을 얻어가야 한다. "볼것"들이 네게 달려와주지 않는다. 네가 "찾아"가야 한다. 또 그것들이 가까운데 있기도 하고, 멀리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마음을 추스리고 찾아간 곳은 Hopewell Cape(호프웰 케이프) 에 있는 The Hope Rocks(바위) 공원이었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스윅 사이에 있는 펀디 만(Bay of Fundy)이 시작되는 곳으로 새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파인 해안으로 썰물과 밀물이 들고 나서 생긴 곳인데, 그 돌들의 모양이 볼만하다.
공원안으로 들어가니, 짧은 트레일이 있어서 땀을 식혀주고, 곳곳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우리가 간 시간은 썰물때여서 사람들이 물이 빠진 해변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바다물과 육지, 그리고 돌이 만나 절묘한 돌기둥을 만들어 놓으니, 뭔가 "정신이 번쩍 나는 볼거리"에 굶주려있던 우리를 배불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 어미가 이곳까지 끌고온 것이 어째 괜찮은 일이지 않느냐?하는 함성이 내 안에 있었는 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흔들리는 풍경을 찍어댔는데, 막상 호프웰에 오니 카메라 밧데리가 많이 남지 않았다. 일이 다 그렇지, 무언가 항상 부족하다.
자, 바위공원에는 뭐가 있나 한번 가보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바위공원의 한쪽
이것을 사진으로 하지 않고, 말로 설명해야 했다면, 과연 사람들이 이 풍광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을까? 사진의 고마움을 이럴때 느낀다.
저 큰 바위밑에 연두색, 빨간색, 갈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군지 나는 알지!
큰 자연앞에 서면 인간은 더욱 작아진다.
엄마, 이것좀 보세요.... 무언가 손에 들고 뛰는 둘째.
밑에 내려가서도, 진흙속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역시나 막내, 온갖데를 휘젓고 다녔지.
우리는 호프웰 방문으로 다시 기분이 조금 올라갔다. 오늘은 바닷가재를 먹기로 한다. 그 길로 계속 달리니, 앨머(Alma)라는 어촌이다. 바닷가재 보관소가 있다. 얼음같이 찬 바닷물에 가재들을 넣어서 관리한다. 무서운 발톱들은 고무줄로 묶어두었다.
수산물 가게에서 일하는 아저씨는 한두명씩 찾아드는 방문자들에게 가재를 소개한다. 최근에 잡았다는 연세 30살 잡수신 가재를 보여준다. 우리가 보통 음식점에서 먹는 가재들은 한 10살 정도 되는 것이란다. 아주 작은 7살짜리와 함께 놓으니, 비교가 된다. 가재가 왜 다른 생선에 비해 비싼지 알것 같기도 하다.
왼쪽이 30살 가재, 그 옆이 7살짜리 어린 가재.
앨머의 한 레스토랑에서 가재시식을 했다. 바닷가라서 가재값이 쌀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인분에 25달러씩 했다. 우리가 시킨 네접시는 가재가 예술적으로 삶아지고 장식되어 대령되었다. 어쨋건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것을 말해야 겠다. 남편은 나중에 "잘 먹었냐"는 내 말에 "아이들 발라주느라고 먹은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게살만 먹고 자라고, 부모들은 게껍질만 쳐다보며 입맛다시는 게 인생"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오전에 있었던 일은 아이들뿐 아니라, 나와 남편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들의 반목의 정도가 깊다는 것에 속이 상한다. 여행길은 그렇다. 어디 숨어있을 구석이 없다. 서로의 까칠함이 도드라져 나온다. 좋다면 좋은 일이다. 곪은 것은 터져야 하고, 또 그 곪은 것의 깊이를 우리가 알게 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나도 자랄때 동생과 많이 싸웠다. 내 애들도 자라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쨋거나 한번은 단단히 짚고 넘어가야 겠다.
이번 여행길 바로 전에 구입한 GPS는 특별히 작은 길을 찾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먼길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을 통과하여 가는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좀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구경처를 갔다가 다시 여장을 푼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시내에서 길을 찾다가 잘못 나가면 다시 방향을 바꿔 찾아나가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쁜 여자 목소리로 말하는 GPS에게 "샤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여행내내 친하게 지냈다.
캠핑장 주소를 넣으니, 온 길이 아니라 그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지시해주고 있었는데 펀디만 국립공원(Fundy National Park)을 통과하도록 되어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길을 가다보니, 지는 해가 바로 우리들의 머리위에서 떨어지고 있다. 그날의 해는 왜 그리 커 보였는지. 길가에는 사슴을 주의하라는 사인판과, 무스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표지판들이 있었지만, 사실 그런 짐승들을 길에서 보진 못했다. 그런데, 뭔가 보았다. "곰"이었다. 남편의 지적에 앞을 보니, 곰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큰 덩치는 아니고, 한 십대 정도 되어보이는..
우리들의 놀람과 동시에 곰은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밧데리도 거의 없어서 사진기를 손에서 놓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를 사진에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순발력이 있지는 않지만서도.
삐긋거리며 시작한 본격여행 첫째날...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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