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헌해는 낡아지고 볼품없어진다.
며칠전의 일들이 이미 생기를 잃고, 벽장속에 묻혀야 하는 신세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2007년을 끝내지 않았다.
끝냄이 없으니, 2008년 시작도 여의치않다.
마무리를 하기위해 타임머신을 타보자.
올해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어떻게 안 모일수가 있어?"하는 날카로운 막내동생의 외마디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났다. 사실, 그냥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연락시작.. 녹슨 머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가장 고민이 되는 건, 역시 선물이다. 성탄 시즌이 되면 백화점, 선물가게 문전성시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가게에서는 스카치테이프가 동이 난다. 어떤때는 작은 선물보다 더 비싼 포장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작년에 선물을 사지 않기로 하는 "원칙"을 세웠다. 낭비가 심하고, 주는 사람은 고생했는데, 받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고, 막바지에는 무언가를 사기위해 의미없이 "돈"을 던져버리듯 쓰게 되는 것도 그렇고. 여러가지 폐단이 있어서 그리하기로 했었는데 막상 모여보니 캐나다생활 30년이 넘은 언니는 여전히 선물준비를 하였고, 몇몇 사람들도 한두가지씩은 들고 나타났었다. 나는 원칙을 준수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대하는 꼬마 조카들에게 실망을 주었던 일은 두고두고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올해는 "선물은 자유" 로 못박았다. 나는 어린 조카들 선물을 샀고, 틴에이저 이상의 조카들에겐 돈을 준비했다. 한결 수월했다.
트리밑에 선물이 쌓여간다. 인정있는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라도 준비를 했더라.
자자 모여바바!! 3살부터 80살까지.. 대가족입니다.
선물의 규모를 줄이니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가 빛이 바랜 셈이니, 어떤 프로그램을 넣어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때 번개같이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 "가라지 세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어른들이 선물을 받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니, 가라지세일을 하면, 한두가지 차례가 가게 될 것이고, 뭔가 풍성한 잔치가 될 것 같았다. 집집마다 남아돌아가는 물건들이 많다. 그전에는 거저 주었지만, 대대적인 "장"을 벌인다면,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작은 돈을 주고 사갈 수 있으니, 재미반, 기금마련반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모두에게 연락.. 음식은 각자가 한접시씩, 그리고 필요없는 물건 가져올 것을 "명"했다.
후후후
이렇게 쉬운 손님초대도 있을 것인가? 나는 청소하고, 칠면조를 굽고 육개장을 끓여놓았다. 그리고 한국서 얼마전에 날라져온 각종 젓갈을 담아놨다. 시간이 널널하여 1시간 정도 잠까지 잤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24일밤 가족들이 음식을 들고 모여들기 시작, 20여명의 파티가 그날 저녁부터 벌어졌다.
선물을 꽤 많이 준비한 사람도 있어서, 선물뜯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어린꼬마들의 볼이 풍성처럼 부풀어오른다. 나는 전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양말, 과자" 등등의 작은 선물을 받았다.
이날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아이들의 댄스였다. 십대가 대여섯명이 모이니, 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요즘춤을 어른들 앞에서 선보인다. 그들의 부드러운 몸매와 흔들림에 어른들은 넋을 잃는다. 아이들 춤추는 옆에서, 탁구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복식까지.. 단식은 사촌오빠, 복식은 여자팀(나와 언니)이 이겼다.
뭔 이름의 춤이라더라! 재용(오른쪽)이는 "끼"가 다분해 보였다.
애들아, 인사하고... 앞다리가 쑤~욱, 뒷다리가 쑤~욱...
올챙이 개구리 된 춤추자...
또하나..는 화투치기.
이민 20여년 동안 거진 잊고지냈다.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바다에 빠치고 온 한국풍습중의 하나였는데, 옛것이 그리울 때가 되었는지.. 이틀째 밤까지 있었던 막내동생 부부와 언니 둘, 그리고 우리 부부 6명이서 상위에 담뇨를 깔고 화투장을 날렸다. 남편의 감춰졌던 장난스런 표정, 수준없는 화투꾼들 중에서 혼자 심사숙고하면서 치다가 홀딱 망한 제부의 중얼거림까지.. 혼자 있을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날 화투의 챔피언은 "민디"였다.
아참, 가라지 세일 이야기를 끝내자.
물건이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왔다. 옷이 가장 많았고, 약간의 주방기기, 집안에 남아도는 치약, 치솔까지.. 그리고 지나간 한국영화 비디오도 꽤 많았다. 나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멋진 까만코트를 20달러에 샀다. 몸에 맞지않게 된 언니가 울며 겨자먹기로 내놓은 그 옷.. 내가 입던 싸구려 옷들과 정말 비교되는 고급품.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뒤범벅된 그날의 장터는 성황리에 끝났다. 그날 만들어진 돈은 거진 200달러..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토론토의 언니집에 가서 한차례 더 가라지 세일을 했다. 언니의 집에는 특별한 모양의 그릇들이 많다. 어쨋든 모두 모여진 돈이 300달러. 게다가 두 자매가 100달러씩을 기부했다...
오랫동안 조카들에게 주려고 한구퉁이에 놨던 스케이트가 "가라지 세일"
품목으로 나왔다. 네 켤레 2달러 받고 팔았다.
왜 이렇게 목숨걸고 돈을 긁어모았는가 하면, 엄마에게 새 소파를 사주기로 우리끼리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이민와서 몇년후에 샀던 옅은 분홍색 가죽소파는 스프링이 주저앉아 엄마집 소파밑에는 온갖 방석이 그 밑에 들어가 있다. 늘어진 스프링을 고정시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눈이 나쁜 엄마는 그 소파가 얼마나 낡았는지 잘 모르는지, 가끔 소파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너무 좋다고 손을 훼훼 내두르시곤 하셨다. 그러나 주름진 가죽사이에 낀 새카만 때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우리들은, 사실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들을 위해서 소파 사기를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화투"로 딴 돈까지 쓸어모아 총 500달러가 되었다. 다음에 엄마집에 가면 해사한 소파를 만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오늘 토론토 식구들이 소파 쇼핑을 하기로 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과 상관없이 흘러갔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세상의 풍습대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특징적인 만남을 도모했다는 것 정도일까?
'너나, 그리고 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방암 검사의 모든 것 (0) | 2008.04.29 |
---|---|
가족의 날 단상 (0) | 2008.02.19 |
달빛인가, 눈빛인가 ... 대낮같이 밝은 새벽에 (0) | 2007.12.24 |
히잡(hijab) 거부한 소녀의 죽음 .. 종교와 문화 굴레의 비극 (0) | 2007.12.14 |
고희 맞은 어머님께 (0) | 2007.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