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나, 그리고 우리

히잡(hijab) 거부한 소녀의 죽음 .. 종교와 문화 굴레의 비극

"너 집에 좀 가야겠다."

아샤(Axa)는 학교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녀의 오빠에게 끌려갔다.

오빠가 그녀를 오전에 집으로 끌고간 것은 치렁치렁한 그녀의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아샤가 이번에도 "히잡(hijab)"을 그녀의 머리에 둘러 머리카락을 감추는 무슬림 여자들의 전통복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무슬림(Muslim) 집안이다. 8남매의 막내인 아샤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부모의 요구대로 무슬림 복장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히잡을 두르고 나갔어도, 그녀는 학교에 도착하면 재빨리 히잡을 벗고, 다른 소녀들처럼 변신한다. 아샤의 언니는 동생이 학교에서 집안의 규칙을 어기면 아버지에게 이르곤 한다.

 

아샤는 오빠와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의 타박 때문에 집을 나가기도 했다. 갈곳없는 여자들을 보호해주는 쉘터에서도 있었는데, 가족들의 절절한 애원편지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 편지에는 "식구들이 네가 나간후로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있다. 히잡은 네가 원한다면 쓰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면 쓰지 않아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쉘터의 소장은 이 편지의 내용을 믿고 아샤를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아샤의 식구들은 여전히 아샤를 간섭하고, 충고하고, 혼냈다. 아샤의 친구들에 의하면 아샤가 집에서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자주 고백했단다.

 

아샤는 집을 떠나 친구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몇주간씩.

 

이날 아침도 친구집에서 있던 중이었는데, 학교가는 길을 지켜섰던 오빠에게 들킨 것이다.

이날 아샤는 그의 아버지에게 목졸려 죽게 된다. 그게 지난 10일 월요일 아침의 일이다.

 

아버지손에 죽은 소녀, 아샤. 그녀의 추모책상에 친구들의 메모와 카드가 놓여있다.

========================================================================================

 

지금까지 밝혀진 신문 내용을 재구성해보았다. 재판에 의해 조금 더 자세하게 드러나겠지만, 아버지가 딸을 죽인 내용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16살, 11학년 아샤(그녀의 본명은 Aqsa Parvez, 스스로 아샤라 불리는 걸 좋아했다)의 짧은 생애는 이렇게 해서 끝났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

 

다민족 이민사회인 캐나다에서 문화충돌이 이처럼 격렬하고 처참하게 드러난 예도 많지 않다. 또한 이사건은 십대자녀를 둔 이민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화의 표본을 보여주고도 있다. 한국인을 비롯, 많은 민족들이 자유분방한 이사회의 문화를 자녀들이 재빠르게 수용하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빽빽한 바지, 가슴선이 드러나는 달라붙는 셔츠, 그리고 치렁치렁한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캐네디안 십대들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아샤에게 왜 없었을까.

 

 히잡쓴 여인, 고운 색상의 스카프이지만, 대부분 우중충한

단색을 많이 쓴다.

 

 무슬림 여인의 전통 복장. 모든 것을 가렸다.

 

"남들처럼 살고싶은 것"에 제 목숨을 담보해야 했다는 것은 머리가 절로 흔들리는 일이다.

 

아샤의 아버지 무하마드 파베즈씨(Muhammad Parvez)는 택시운전사로 일해왔다. 엄마는 딸을 잃고 아들(경찰 공무방해죄)과 남편을 철창에 보내놓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을 것 같은 이 집안을 생각해보면 기가막히다. 종교를 강요하는 부모,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

 

무슬림측에서는 "누구도 히잡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고, 강요에 의한 것은 참믿음으로 볼 수 없다"며 저들의 종교를 변호하고 있지만, 이렇게 간단히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히잡을 두르고 축구공을 차는 소녀의 모습도 미디어에 소개되기도 한다. 전통과 종교를 우러르며 그것을 지켜주고 봐주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종교가들의 설득력있는 "문화충고"도 신문지상에서 이런 식으로 만난다. 이런 경박한 사조에 대한 철퇴가 아닐 수 없다.

 

세대차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문화차이가 심각하다. 물론 우리가정에서도 일어난다. 나는 자라목처럼 자꾸 머리가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농담처럼 둘째에게 "네가 가장 캐네디언 같다"고 놀린다.

 

그녀는 음식도 매운 것을 먹지 못한다.

때가 되면 하키경기를 찾아서 스케이트장을 찾아간다.

학교 댄스파티엔 빠짐없이 출석하고, 어떤 땐 다른 학교의 파티까지 불려간다.

심심하면 아이들과 모여서 놀고 싶어한다.

친구집에서 가끔씩 슬립오버하면서 놀아야 하고, 또 가끔은 친구를 집에 불러서 재워야 한다.

못다한 말은 장시간 전화로 해결한다.

집에서보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옷은 최신식으로, 화장은 매일 아침 공들여 해야한다.

 

둘째는 겨우 14살이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얼마나 구식인지. 거의 하나도 그애를 이해할수가 없다. 속깊이 토론하고, 나의 요구조건을 이런저런 기회에 제시해도 그녀를 고치긴 힘들어 보인다. 

 

이런 것들이 심화되어 머리가 지끈거릴 즈음, 이런 사건이 터졌다.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커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버렸건만,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내가 자라던 그때를 상기해내며, 딸을 가르치기엔 이 사회가 너무 다르다. 자유속에서 규율이 잡히도록 만들지 않으면, 딸은 그녀의 십대시절을 부모와 말다툼한 것만 기억하게 될지 모른다.

 

그애 말대로 집에서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 것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의미있다는 말, 보통의 이곳 십대들처럼 지내고 있는데, 마치 "잘못되는 딸"을 보는 듯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말도 상고해볼 일이다.

 

내 눈안에 잡아놓고, 아이들을 기를 수 없다면 스스로 제 갈길을 찾아가게 내 마음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문제는 아이가 어렸을때 내가 그 많은 자유를 주어놓고, 이제서 제재하려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빠른 기차를 타고 여행가는 딸을 맨발로 쫓아가는 느낌이다. "둘째야, 엄마를 좀 기다려다오"하면서.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