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사진이 안나오지?", 어쩌면 저와 똑같은 말씀을... 아마도 모든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싶습니다. 잘 나왔어요. 사진찍을때 웃지 않는 것이 좀 흠이긴 합니다만... 어머님은 사진기를 내리면 꼭 웃으시더군요. 그것이 문제인 것도 같네요..
어머님, 당신의 70회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무늬만” 큰며느리, 오늘 큰절 올립니다.
어머님 생신을 맞아, 마치 처음 생각하는 것처럼 어머님의 일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40 초반에 홀로 되셨다지요.
돌아가신 아버님은 아주 자상하셨다는데. 이모님께서는 제 남편이 아버님을 많이 닮았다는군요. 그렇다면 뵙지 않았어도 짐작이 갑니다.
그런 남편을 떠나보내고, 망망대해에 네 자녀와 남겨졌던 어머님을 같은 여자로써 그려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먹먹해 옵니다. 현실은 가혹한지라, 그 역경중 어떤 것 하나도 스스로 비켜 지나가는 것없이, 모두 어머님께 그 뾰족한 날을 들이밀었을 것입니다. 하소연할 대상을 잃어버린 아픔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머님 가슴안에 있겠지요.
언젠가 남편이 그러더군요.
아버지께서 내 나이때 돌아가셨다고.
그래요. 어머님, 당신의 큰아들, 그리고 저 많이 늙었습니다. 많은 어르신들 앞에 “나이주름”을 잡는 것은 어머님과 저 사이에 흘렀던 불신의 강을 이야기하기 위해섭니다. 그때 당신의 며느리 나이 어렸습니다. 당신께도 첫 며느리였겠지만, 제게도 첫 시어머님이셨습니다. 나만을 생각했던 그 당시, 어머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님께 실망드렸었지요.
어머님을 모시고, 남편과 나.
이제 시간이 지나, 유야무야 그 상처들이 아물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의 미소에서 저를 용서한 증거들을 발견합니다. 맞지요?
어머님과 제가 인연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의 아들 송영진을 제가 남편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같이 성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그를 키워줘서 말입니다.
지난번 어머님과 한국식품에 갔었지요. 토론토 갤러리아 식품점 말입니다. 그곳에서 남편이 안면있는 부부를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셨대요. 어머님을 바라보며, “우리 엄마 생전 모습과 똑같으시네..”하면서 눈을 못떼더라구요.
화려하지 않고 자연스런 어머님의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이 시대는 누구나 조금씩 두드러져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까? 몸뻬바지를 즐겨입는 어머님을 보면서, 우리집 아이들은 뭐라 하는줄 아시는지요? “할머니가 귀엽다”고 그럽니다. 이제 어머님도 곧잘 하시는 캐나다식, 인사법 -서로 껴안아주는-을 나누는 것을 보면 어머님이 아이들에게 안긴 것처럼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럴때 저도 어머님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님, 아들을 부려먹는 며느리, 살림못하는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 꼼꼼하지 못한 며느리 때문에 속상하셨지요? 어떻습니까? 요즘은 좀 쓸만하지 않나요?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 며느리를 얻으신 것이에요.
혼자 살고, 일하시면서 동네 분들과 즐겁게 지내신다는 말씀, 언제들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머님, 아들곁으로 오시고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어머님을 받아들일 마음밭을 만들어놓겠습니다.
인생 70을 표현하는 “고희”는 두보의 시 “인생 칠십 고래희”에서 왔다는군요. 드물게 맞는다는 말이래요. 말하자면, 70을 넘겨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어머님의 남은 생이, 모쪼록 편안하기를 빕니다.
생신을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어머님 생일잔치에서 인기를 끌었던 칵테일 바. 바텐더 일을 배운 시동생(오른쪽)이 서빙하고 있다. 이날 나도 진달래 빛깔의 "바닷바람"이라는 칵테일을 마셨다.
세련된 두 어머님. 칵테일을 한손에 들고, 여유롭게 한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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