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미리가 지난 크리스마스때 그린 가족사진. 왼쪽부터 아빠, 엄마, 미리, 나래, 루미. 컴퓨터 그림그리기용인 타블렛을 이용해 완성했다.
올해부터 캐나다 온타리오주에는 공휴일이 하루 늘어났다.
온타리오 노동부는 "가족이 함께 하는 것처럼 가치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모두가 너무나 바빠 함께 모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매년 2월 세째 월요일을 Family Day로 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온타리오주는 브리티쉬 컬럼비아주, 알버타주에 이어서 가족의 날을 갖게된 것이다.
가족의 날을 맞아 하루 일과를 반추해보며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점심부터 이야기하자. 분식을 좋아하는 주방장(나)은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 잠시 고민했다. 국수는 다 떨어졌고, 그렇다면 수제비? 하다보니 수제비를 싫어하는 막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그럼 떡국과 수제비를 하는 건 어떨까?
그래서 두가지를 한가지 방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고기를 먹지않는 큰애가 있으니 우리집 국물맛은 멸치가 주를 차지한다. 그곳에 다시마와 양파를 넣고 푹 끓였다. 그 국물을 두 군데로 나누고 한쪽에는 반죽한 수제비를, 한쪽에는 떡국을 넣었다. 떡국은 물에 미리 담가놓지 않은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냉장고에서 며칠 묵은 오이를 무쳤는데, 오이가 좋지않아 그다지 맛이 없다.
큰애와 막내는 떡국을, 둘째와 우리 부부는 수제비를 먹었는데, 큰애가 말없이 수저를 놓는다. 너 떡국 안좋아하니? 물으니, 안좋아한댄다. 조금 있다가 막내가 묻는다. 떡국이 너무 딱딱하니 조금 있다가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막내는 쫄깃거린 음식을 싫어한다. 어쨋든 그러라고 했다.
식탁이 생기가 없어진다. 수제비를 좋아하는 둘째와 우리 부부는 일단 주어진 그릇은 다 비웠다.
조금 후에 큰애가 학교 밴드연습하러 가야 한다고 그런다. 휴일인데 쉬고싶다면서 입이 비쭉 나온다.
둘째는 학교 과제물인데, 두명에게 읽힌 다음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고쳐가야 한다며, 나의 교정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친구집에 갔다오겠다 한다.
큰애가 학교갈 시간이 되어가니, 남편이 큰애에게 "학교갈 것이냐?"고 묻는다. 큰애는 "Not Right Now!!" 볼멘 소리로 대답한다. 제 아빠의 물음에 퉁명하게 대답한 것이다. 남편은 "너는 가면 간다, 안가면 안간다 그렇게 대답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볼멘 소리로 말하느냐"고 타박한다. 말하자면, "지금 가는 게 아니구요, 조금 이따 갈거에요"이런 이쁜 대답을 원하지만 딸은 그런 "타인을 배려하는 언사"에 조금 문제가 있다.
남편과 나는 함께 큰애를 데려다 주러 나선다. 가는 길에 조금 더 운전해서 가게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로 한다. 나는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긴다. 요즘 카메라에 대한 공부를 하고있는데, 이를 시험해보고 싶어 안달이다. 햇빛이 많은 봄날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어쨋든 어디를 가나, 사진을 끼고 다니지 않으면 허전하다.
가는 길에 동네 공원이 보인다. 작은 연못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다. 오늘도 눈이 흩뿌리는 좋지않은 날씨지만, 무언가 찍을 거리를 쫓아 내 눈은 빛난다. 학교에 도착해서 내려주고 큰 식품점엘 들르니, 그들도 휴업중이다. 오늘, 모두가 노는 공휴일임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집으로 차를 돌린다.
돌아오는 길에 공원을 지나면서 남편에게 잠시 사진을 찍고갈까?하고 싶지만 참는다. 내 욕심만 차리는 것이 좀 뭣해서 말이다.
남편은 점심먹은 것이 충분치 않았는지, 라면있냐고 물어본다. 신라면이 하나 남아있다. 이번 라면을 끝으로 라면과는 "되도록 안녕"을 할참이다. 라면은 있으면 먹게 되니, 사지않는 게 상책이다.
어쨋든 라면을 끓이면서, 점심때 먹다남은 떡국의 떡을 골라서 넣는다. 점심을 먹지않다시피한 막내를 불러서 남편과 한그릇씩 떠준다. 나는 조금 남은 수제비를 데워서 먹는다. 불은 밀가루음식은 영 못먹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다. 만든 음식 다 먹어치운 것이 아주 곰탕지다. 떡국도 수제비도 모두 다 소비되었다.
라면을 해치우고 남편에게 오리가 있는 공원까지 산책하자 제안했다. 공원에는 샘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 이 동네의 물이 자랑할만 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물병을 가지고 가서 매일 물을 길어오면 어떨까 제안했다. 나는 사진을 찍고, 당신은 물을 긷고.
동네길을 걸어서 샘물까지 갔다오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쨍한 햇빛은 없었지만, 쨍한 공기가 있었다. 아주 맛있고 달콤한 공기와 물을 마셨다.
샘에서 솟는 물을 끌어올려 네군데의 수도꼭지에선 쉬지않고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맛은 정말 아무런 것도 첨가되지 않은 맹물맛이었다.
동네 공원.
사진사를 피해 먼곳으로 올라가신듯.
사실 가족의 날 행사로 "레드 파파야"라는 베트남 음식점에 가면 어떨까? 이야기했던게 지난 주말이었다. 온 가족이 다 좋아하는 음식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는데만 1시간 반이 걸리니, 어제 저녁쯤 되니, 막내가 더이상 식당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그만큼 달려가야 한다는 건, 사실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우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더이상 가족 구성원 모두의 흥미를 맞출 수 있는 일이 묘연하다.
큰애는 오늘은 "쉬고 싶어했지만" 어쨋거나 제가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둘째는 오늘도 역시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하키게임을 보고 온다고 나갔다.
막내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구입한 타블렛이라는 컴퓨터 그림그리기 도구로 이에 열중하고 있다.
엄마인 나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진찍기와 글을 쓰고 있다.
남편은 좋아하는 한의학 공부를 한다. 자주 내곁에 와서 나를 방해하면서 말이다.
음식도 그렇다.
식성 무척이나 까다롭다.
나중에 보니, 굶다시피한 큰애는 제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팬에 데워서 먹었더군.
나는 세 아이들이 골고루 좋아하는 음식의 교집합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때는 성공하지만, 오늘 점심같은 경우처럼 실패하기도 한다.
세아이 모두 좋아하는 김치, 참치 볶음밥. 지난 발렌타인데
이때 만들어주었지. ^^
"You don't have to..."
"강제성"이 있는 요구문에 쓰인다고 영어시간에 배웠던가? 그러니까, don't가 들어가 강제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 말을 무척 많이 쓴다. 엄마 아빠 어디 간다. 너도 가고싶으냐? 그럴때 아이들이 묻는다. "Do I have to?" 그럴때 하는 대답이다. 그렇진 않다. 네가 좋아하면 그렇게 해라.
너무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이긴 하나,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진 않는다. "해야만 하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가야 하겠지. 우리가 뭉쳐야 할때는 아이들에게 "You have to..."를 말할 것이다.
내일 학교가는 날이라고 둘째가 일찍 집에 들어왔다. 큰애를 데려오는데 흰눈이 철철 내린다. 눈내리는 밤, 집에 모든 가족이 함께 있어, 마음이 편안하고 한갓지다.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텐데,,, 겨우 몇년을 남겨두고 있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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