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5일자 교민사회의 한 일간지 기사제목이 "좋은 걸 어떡해~"로 나와있다. 고개를 끄덕인다.
김세환씨의 노래제목이자, 그날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준, 아주 적절한 제목이었던 것이다.
기사의 서두는 이 제목을 더욱 잘 설명해준다.
"목요일 밤의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1천여 아줌마 부대가 몰린 가운데 1일(목) 마캄의 르파크센터에서 열린 온주실협(회장 윤종실) 여성의 밤(8회)은 흡사 강렬한 록 콘서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화끈하고 격정적이었다."(캐나다 한국일보)
나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아줌마 부대..." ㅎㅎ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인의 주종 사업이 컨비니언스(편의점) 경영인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국서의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이땅에 오면 그쪽으로 발목이 잡히게 되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그 편의점 업체를 하나로 엮는 온타리오 실업인협회는 그 규모가 방대(2천여 멤버)하고 역사도 오래되어서 명실상부 최대 규모의 한인단체이다.
본부 실협 산하에는 지구협회가 있어 각 지역별로 회원들을 관리할 수 있으니, 대규모 행사를 치를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속한 오웬사운드 지구협은 그 규모로 막내쯤 되는 곳으로, 이번 행사에 9명의 여성회원들이 참석했다. 온주의 인근각처에서 회원들의 숫자가 많은 곳은 버스를 대절해서 오고, 작은 곳은 그곳의 남성회원이나 지구협 회장이 큰차에 회원들을 태우고 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인 아줌마들은 모두 1천2백여명...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하니, 화장품회사와 가방등 명품매장이 회텔 로비에 임시장터를 열고, 한국산 이불, 벼개, 옷 가게도 상설됐다. 나는 "가족사진 촬영권"을 공짜로 준다는 바람에 평소에 관심없던 화장품을 구매했다.
연회장은 이미 각 지구협별로 좌석이 배정되어 있다. 20% 정도는 화장과 머리꾸밈까지 파티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한 60%는 깨끗한 정장스타일, 그리고 그밖에 20%는 옷 못입는, 어떻게 치장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차림이었다. 마지막 20%에 속한 나는 내년에는 조금 더 신경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음식도 뷔페식이 아니라 웨이터, 웨이트리스가 서빙하는 정식 풀코스로, 둥근 테이블에는 장미꽃과 초가 은은히 타고 있다.
1부 순서는 캐네디언 방송국에서 일하는 2세 이지연양의 영어사회로 축사와 귀빈들 소개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 이름을 불린 사람과 나와서 인사말을 한 사람이 모두 남자들이었다!!! 내게는 그점이 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높으신 양반들이 끼어들어 인사말을 해야 모임의 권위가 선다는 발상도 그렇고 말이다. 또한 지구협 회장이 소개되면 여성회원들이 박수를 우르르치며 박수소리에 경쟁을 붙였는데, 남자협회장 아래 여성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상상이 되니, 그것 또한 별로 편치는 않았다.(나는 언제나 이렇게 꼬여있다)
여성들을 위한 잔치라니 발상을 확 뒤집어 아줌마들 위주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순 없었을까. 평범한 것이 더욱 어렵겠지만... 1부에서 무대조명을 받은 유일한 여성인 이지연양도 잘했지만, 그녀는 전문직을 가진 2세로 아줌마들과는 차이가 있으니, 사회는 아직도 명분과 신분 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디너가 끝나고 권용대(전문 MC란다)씨의 사회로 캐네디언 5인조 록밴드 라이어트의 연주로 2부 순서가 문을 열었다. 연회장이 음악의 홍수로 가득차게 되었고, 아줌마들의 숨은 열정은 바로 표현되었다.
무대 앞으로 나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건 기본, 박수소리와 웃음소리, 환호소리가 연회장을 울린다.
나훈아씨가 아니고, 너훈아씨가 나와서 나훈아씨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을 또한 열광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나훈아 특유의 어금니까지 보이는 웃음을 일부러 짓는등, 분위기 메이커역을 톡톡히 했다.
너훈아씨.. 노래 잘 부르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여러 가지로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나왔던 김세환씨는 아줌마들의 환호에 거의 "기가막혀" 했으며, 무대바로 앞에 장사진을 친 아줌마들을 종용하여 자리로 돌아가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이미 소녀같은 마음으로 돌아간 아줌마들은 김세환씨가 아니었더라도 환호할 준비가 되어있었을 것 같다. 나는 제1회 때 참석하고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매번 비슷한 파티를 경험했던 아줌마들도 많았을 것이니, 그녀들은 이미 일반 관객의 수준을 뛰어넘어 바람몰이를 하는 듯 싶었다.
김세환씨는 60세 환갑의 나이답지 않은 미소년으로 목소리까지 청아했다. 하루전날 캐나다에 도착했다는 그는 공연하면서, 아줌마들과 친한 친구들처럼 말을 놓기도 하는등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그는 우스개 소리를 여러개 했는데 특히 연예계 뒷이야기들을 들려줘서 모두 박장대소들을 하였다.
친구같이 느껴지는 늙은 오빠, 김세환씨. 그가 60살이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포도주도 각 테이블에 올려져있어 "끼"있는 이들은 여러잔을 들었는지, 김세환씨 공연중에 객석 몇곳은 소란스러웠다. 음주가 심했던 것 같다. 1천2백명이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겠지만, 도가 넘는 것 같은 구비구비를 잘 넘기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가졌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광적이었던 행사 뒷이야기를 하니, 언니는 "디스코장이었네!" 한마디로 촌평을 한다. 디스코장의 분위기를 잊은지 오래, 이제서야 그날의 분위기가 그랬었나 하고 맞춰본다.
"입은 것도" "생긴 것도" 그날의 분위기와 전연 안 어울렸던 것 같은 내가 그래도 설쳤던 것은 집에 남겨진 남편과 남편의 동갑내기인 언니를 위해 김세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무대앞으로 나가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그랬는데, 자리로 돌아가는 나를 잡아끄는 우리 지구협의 회원들과 함께 몸을 흔들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아줌마 부대 바이러스가 내게도 감염되었는지,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영상이 머리에 각인된다. 그래 일년에 한번쯤 이런 분위기 괜찮은 거야 하면서.. 밤 12시 차에 타서 핸드폰을 보니, 남편에게서 7번 전화가 왔었다. 그러고보니, 5시부터 7시간이나 몰입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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