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 생신에 다시 봅시다... 가족중의 한명이 이런 인사를 했다....
"사~ 사랑을 하려면, 요~ 요렇게 한단다.
이네 사랑 변치~ 마아알자, 굳게 굳게 맺은 사랑.
어화둥둥 내사랑, 둥당가~ 둥당가아~
어기둥당기 내 사랑.
꽃과 나아 비~ 너울너울 춤을 추고 우리네 사랑은
아이~ 아이~ 아이~ 두둥실 좋을시고~
둥당가~아 둥당가아~ 어기둥당기 내사랑
........"
나이, 지아, 유니 세 자매. 엄마의 혹독한 연습을 거친 듯, 춤사위가 날렵하고 귀여웠다.
세꼬마와 한남자, 그리고 그들을 붇돋우며 장고를 두드려대며 열창에 빠진 한 여자...
이날 행사의 하일라이트였다.
어렸을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딸9명의 시샘과 질투를 한몸에 받던 막내딸 가족의 멋드러진 열연은 나머지 자매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고, 온 장내를 감탄과 환호속으로 밀어넣었다.
성심을 다하되, 특별히 튈 것이 없는 평범한 잔치 기획에 젊은 바람을 불어넣으며, 약동하게 한 것도 많은 부분 막내의 공이 컸다. 한복입기를 은연중 강요하는 엄마의 바램에 "한복이 없어 못입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엄마가 원하신다"며 "없는 사람은 맞춰입고, 빌려입게" 압력을 넣었던 것도 막내였다.
하루전날 언니집에 모여서 남자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여자들은 찬송가 "내영혼이 은총입어"를 부르는데, 악보를 손에서 치워버리고 관중을 향하여 노래를 불러야 한다며, 지휘를 도맡아했던 것도 그녀석이다.
언니집과 엄마집 두군데서 나눠잤는데, 함께 잤던 막내가 새벽에 없어졌다. 그래서 보니, 엄마집으로 언니들 머리를 매만져준다며 새벽 5시에 일어나 갔다는 것이다. 누구도 못말리는 막내의 극성으로, 그날의 단장들은 그런대로 봐줄만 했고, 마음준비들이 조금씩 더 단단해졌던 것 같다.
행사 시작전... 조카들의 호기심이 충천해있다.
이민와서 첫해부터 지금까지 적을 두었던 교회의 목사님- 우리 가족의 역사를 아시는- 은 이제 원로목사가 되어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있으시다. 그분이 마침 휴가로 토론토로 돌아오셔서 엄마를 위해서 팔순 생일예배를 인도하셨다.
2부 순서는 가족별로 인사와 장기자랑을 겸해서 했는데,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에 떨어져서 못 온 자식들의 순서는 메세지를 받아서 읽어주었다.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큰아들이 보낸 편지, 내 대신 아들노릇해주고 있는 사위들에게 감사하며 엄마의 건강을 염려한 오빠의 글은 엄마에게 큰 선물이 되었었을 것 같다.
큰언니 가족은 이제 캐나다 태생 며느리까지 다섯명이 되었다. 외국인 며느리는 한복을 입고, 고운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중 언니말을 들으니 앵콜이 있었다면 "아리랑"을 불렀을 것이었다며 안타까와 했다.
"시인"이 다 되어가는 둘째언니는 엄마를 생각하며 몇편의 시를 지었다. 어떤 시를 읽을 것이냐로 약간의 진통을 겪을 정도로 엄마를 생각하는 애절한 마음이 잘 드러난 시들이다. 언니의 시는 우리 11명의 형제자매들이 자라난 내 고향의 향수를 불러왔다.
미국 시카고에서 올라온 세째언니는 남편과 함께 오지 못한 것을 너무 미안해했다. 그러나 언니만큼 엄마의 잔치를 내내 기뻐한 사람이 있었을까? 엄마는 세째가 너무 좋아했다며,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네째언니의 메세지는 다섯째언니가 전했다. 무릎관절 수술을 받을 예정이셨던 어머님은 심장에 문제가 있다며 마취만 하고 수술이 보류되었었다. 요즘 심장 검사를 받고 계시는데,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고 수술잘받기를 기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은 다섯째, 오웬사운드에서 전도사로 있는 언니의 순서.
참으로 솔직하고 담백한 언니의 멘트와 노래...에 모두들 감동받았다. 우리집에서 결혼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 믿을지 모르지만 독신생활이 그렇게 즐겁다는데. 성도와 똑같이 말씀공부를 하는 생활은 그 자체로서 너무나 만족스럽단다. 엄마를 위해 노래를 준비하느라 며칠밤 잠을 못자며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소리지르며 노래할테니 이해해달라면서, 연이어서 두 곡을 불렀다. 내 뒷좌석에 앉아있던 참석자는 "영원한 소녀"라고 칭송한다. 나이 50 중반에서도 소녀같이 살수 있다니, 그 언니의 복인 것 같다.
그리고 여섯째 언니... 요즘 캐나다에서 적응하느라 눈물을 쏙빼고 있다. 워털루 대학을 다니는 아들 민욱이를 대동한 언니는 "엄마가 장한 어머니상"을 받을 뻔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어렸을때 엄마가 장한 어머니상에 추천되었노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셔서 엄마에게 전했더니, 엄마 왈 "자식 많이 낳아 고개를 들 수 없는데, 장한 어머니상은 당치 않다고, 선생님께 그대로 말씀드리라"고 하셨댄다. 어린 마음에 자식이 많다는 게 그렇게 부끄럽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노라고.
여섯째 언니와 아들 민욱이 그리고 엄마.
그 언니는 누군가가 자매가 몇명이냐고 물으면 한국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만 포함해서 말하고, 캐나다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숫자만 말하기도 한다면서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다. 우리는 "박사 가족"으로 소개받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불려졌다. 남편이 오는 6월15일 미국 American Liberty University(ALU)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수여받는다. 2년전부터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했으며 지난 4월 학위논문이 통과해 6월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다. 남편의 성실함이 이뤄낸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성취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다.
여덟째 동생은 당돌하고, 맹렬한 여성이다. 가족이 많은 데서 싸움하면서 살다가 독자로 큰 남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일구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목소리가 커서 부부싸움에서 질때가 없다는데. 나중에 제부의 이야기가 들려온 것은 적조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이렇게 많은 가족을 갖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싶었댄다. 부인의 기세에 눌려 말을 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까지... 장기자랑을 연습시키려다 포기했다며 자신의 입담으로 분위기를 돋군 동생... 다른 셋의
표정이 이를 말해주는 듯.
막내는 아홉째 딸의 편지를 읽어주었다. 러시아 근방의 작은 나라 아제르바이잔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고 이제 한달후면 귀국할 아홉째는, 집안의 잔치에 빠져서 서운하다면서, 딸노릇하지 못한 것을 돌아오면 열심히 하겠단다. 그러면서 결혼식 청첩장 사건을 이야기 했는데, "한월수 이기덕씨의 구녀 이미자" 이렇게 쓰여있는 청첩장을 보고 말들이 많았는데, 어떤이는 "구녀가 뭐야, 구미호라는 말인가 뭔가?"했다면서, 그러나 자신이 구녀인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딸이 많은 집안이다 보니, 엄마는 아이들을 결혼시키지 못할까봐 걱정하셨댄다. 장모가 그렇게 딸이 많으니, 아들을 기대하는 집안에서는 꺼림직할 수도 있었을 것도 같다. 엄마의 자식들은 모두 아들, 딸 골고루 낳아주었는데, 마침 내 차례에 이르러 딸을 내리 셋을 낳더니, 막내동생까지 딸셋을 낳아서 엄마의 걱정에 불을 지를 뻔하기도 했다.
그저 셋에서 그쳤으니 망정이지, 한 다섯딸쯤 낳았더라면 "그엄마에 그딸"이란 소리를 들을뻔했다.
막내네 가족을 뒤이어 이날 사회를 봐줬던 사촌오빠 가족이 인사를 했다. 캐나다 정착 겨우 2년째인 이 오빠네는 이제는 키치너라는 중도시에서 한인사회의 유지가 되어가고 있다. 못하는 것 없는 사촌오빠가 여러 사람 도움이 되는데다가 한국식품을 운영하니, 유명세를 타는 듯싶다. 인상좋고 사람좋은 사촌오빠네가 있어서 우리 가족의 남자 기근현상에 해갈을 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막내 아들 재용이가 춤을 추고 큰아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장소가 비좁아서 큰 공연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참석자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씀은 "인터뷰"를 통하여 조금 밝혀냈다. 아들을 낳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자손이 귀한 집에 딸이 열명인들 어떠냐"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너무 순종했던 결과였다고 하셨다. 남들은 믿거나 말거나, 우리 딸들이 딸이라 구박받지 않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귀하게 키워졌던 것을 상고해본다면 그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이 날의 대표사위 4명과 사촌오빠까지 다섯명이 "어머님의 마음"을 부르고 딸들이 나와서 찬송가를 이중창으로 불렀다.
그리고 이 사진..... 이것이 공식행사의 마침표였다.
엄 마 사 랑 합 니 다
정신차리고 보니, 가족기념사진도 찍지 않고 아이들은 모두 옷을 갈아입고... 큰언니 부부는 할머니들 모셔다 드린다고
자리를 비우고. 겨우 이렇게나마 전체 사진을 찍었다.
여섯명의 딸.. 아래왼쪽부터 세째, 엄마, 다섯째, 위 왼쪽부터 일곱째, 여덟째, 열째, 여섯째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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