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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몸이 좋지 않아요"

“She is not feeling well.”

 

수요일 저녁쯤이었을 거다.
다음날 “아침식사 클럽”이 있는데, 나와 같이 일하는 페기의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3년 넘게 한조를 이뤄서 매주 한번씩 만난 사람이니, 감기걸릴때도 있고, 갑작스런 여행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할때도 있었지만, 이번 전화는 좀 불길한 데가 있었다.

 

걱정말라고,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전화를 끊고, 학교로 나가서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었다.

그러고는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른 엄마로부터. 페기가 유방암에 걸려서 검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멍해진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페기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바른생활의 “모델”같아 보였다.
많지않게 등장하는 (동네사람들 중에) 내 칼럼속의 단골일 정도로, 그녀로부터 받은 영향이 적지 않다.

 

그녀를 보면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언제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어느날 불쑥 나타나 사람을 놀래킨다.

 

벼르다가 오늘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듣는 페기의 목소리. 치료를 위해서 3주마다 5시간 걸리는 윈저로 여행을 해야 하고, 5월쯤에는 수술을 해야할 것 같단다.

 

“나도 안다 네 마음을. 믿을 수 없지?
나도 그렇다.
윈저에는 언니집이 있어서 치료가 끝나고 약간의 회복기까지 언니집에서 지낼 수 있다.

옆에서 위로해주는 가족들이 든든하게 있다.
그리고 친구들도 있고, 또 하나님이 계신다.
좋은 의사를 만났으니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언제 혹을 발견했냐는 내 질문에 한 1년전쯤 되는데, 의사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게 암이었다고.

매번 정기검진을 받고, 몸에 좋지않은 나쁜 것은 입에도 대지 않고, 아침마다 동네를 산책하고, 시간날때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그에게 닥친 이 일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당신을위해 기도할께요.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무력하다. 그의 아픔에 근접도 못하는 내 마음이.

 

작년 여름에 그는 홈카를 샀다. 올해 뱅쿠버에서 있을 아들 결혼식에 대비해서, 홈카 트레이닝을 해서 차로 일주일은 걸리는 그곳까지 홈카를 직접 운전해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추수감사절같은 때, 홈카를 끌고 비치로 놀러갔다 와서는, 이제 조금씩 그 사용법에 익숙해져 간다고 좋아하곤 했는데.

 

목요일날 학교에 가면 나는 언제나 페기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먹고 난 접시를 담아놓는 설겆이통이 어느날 없어졌다. 할 수 없이 싱크에 넣고 설겆이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통을 대신 사용했는데, 그 함지박을 볼때마다 이 클럽의 운영책임자이기도 한 페기는 “내가 이번에는 꼭 새로 마련”할 거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기를 여러차례, 결국 그녀가 어느날 새로운 설겆이통을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그것도 여전히 너무 큰 것 처럼 보였다. 넓이는 조금 줄었지만, 높이는 훨씬 큰, 그야말로 그전것과 별로 다를바 없어보였다.

 

페기와 나는 그날 얼마나 웃었는지. 어느날 가게에 갔는데, 다른 큰 통들 옆에 있어서 적당해 보여서 사왔는데, 실패 했다고 다시 사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설겆이통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페기는 설겆이통을 볼때마다 “오~우 민디!!”하면서 웃곤 했는데, 지금 그의 마음엔 그런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결혼한 딸이 남편과 불화해서 걱정하던 일, 시부모와 관계가 편치 않았던 큰아들 내외가 최근에 둘째를 낳고, 서로 화해했던 일들은 그녀를 통해 듣게 된 소식이다.

 

앞으로 치료과정에서 페기는 수없는 난관을 지나쳐야 할 것이다. 그가 준비가 되어있던 그렇지 않든. 페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크고 작은 혹을 달고 살고 있는 지 모른다. 그를 보면서 내 마음을 단도리하고 싶어진다. 

 

페기가 함께 일하지 않아 슬픈 목요일,  그녀의 치료가 원만하게 이뤄져서 다시 한번 설겆이통을 보면서 웃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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