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람을 맞았다. 늦잠자기로 유명한 토요일날, 아이들 스케줄에 맞춰주느라,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큰애는 배구 연습게임이 있어서 체슬리(옆동네)의 고등학교로 가야했고, 미리는 타라(그 옆동네)의 교회에서 열릴 “걸 가이드 Fun 데이”에 가기로 했다.
쌀쌀한 아침, 길에 나서자마자 안개가 자욱히 끼었다. 전방 몇 미터 앞도 안보일 정도로 마치 가루눈이 온 천지를 덮은 것 같은 그런 촘촘함이 널려있는데, 먼 들판은 그동안 쌓여서 녹지않은 눈을 바탕으로 그저 하얀 입체 도화지같다.
“야, 오늘 같은 날 술래잡기 하면 좋겠다”가 누구입에선가 나오고, 큰애는 “맞다. 하얀옷입고 저곳에 그저 서 있어도 아무도 못찾을 껄”했다.
좀 으시시하긴 하지만, 흰옷입고 흰 들판에서 이리저리 안개사이로 다니는 맛도 그럴싸할 것 같다. 단순히 상상만으로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어쨋든 우선 큰애를 내려놓고, 막내 집합장소에 가니, 너무 일렀다.
막내와 나는, 그 동네의 식당문을 열었다. 작은 동네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풍채좋기로 우리교회 목사님을 상기시키는 식당아저씨는 날랜 몸으로 혼자서 그 모든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있다.
막내는 찬우유와 블루베리 팬케잌을 나는 구운빵과 잘익힌 계란 프라이를 주문했다.
따뜻한 커피는 앉자마자 날라져왔고.
30분을 말끔히 그렇게 보내고, 막내를 내려놓고, 혼자 드라이브하는 길은 마치 꿈속같았다. 평소 많은때, 운전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나는, 어젯밤의 충분한 잠과, 오늘 아침의 포만감으로 다른때보다는 조금 좋은 상태였던 것 같다.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있었고, 나무들은 안개가 그대로 얼어버려 섬세한 흰옷을 입기 시작했다.
성에꽃이라고 내가 이름붙였던 나무들의 또다른 정체가 하늘로 못날아올라가고 그저 얼어붙은 “얼음안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적막한 길을 지나면서, 차를 세워놓고 몇번 사진을 찍는다.
아스라하게 펼쳐진 아침길을 달리니 무언가 평상시와 같지 않은 분위기에 휩싸여 생각에 잠긴다.
나이가 들면서 보니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에 있다. 나를 포함해서 언제 어디에서 가까운 사람의 부고가 들이닥칠 지 모른다. 아는 사람들 얼굴 위로 부고를 떠올리는 경거망동을 내 맘속으로 해볼때, 그의 인생이 그때쯤 죽을만큼 완벽해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한 본인은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해도, 그 믿음대로 죽음관문을 잘 통과할 것인가는 누구도 모르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죽음의 준비가 이 삶의 과정이라는 최근의 목사님 말씀도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죽음은 다른 삶으로의 이행이라는 이야기며, 그 다른 삶을 온전한 곳으로 통과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아있게 된다.(그러나 이 문제는 또한 얼마나 어려운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생의 삶 이외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스도인이 내세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될 수 있다는 걸 요즈음 깨달았다.
그런데, 인간의 죄된 심성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의 “구원” “죽어서 잘 사는 법”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 하니, 그것 또한 사람들의 욕심을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은 결코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가 보다.(참 잘난체 하고있다)
이런 절대절명의 일들을 눈앞에 두고, 아이들의 작은 하루의 스케줄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가?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죽음과 신과 삶을 하루종일 묵상할 수는 없지 않겠나, 하는 것.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분법으로 놓고, 그렇게 따로 굴려갈 수는 더우기 없는 것 아닌가?
삶이 점점 무거워진다. 날아올라갈 것처럼 가벼웠던 것이 날개에 조금씩 습기가 차오른다.
시골길은 신호등도 없고, 다른 차들도 없고, 어쩌다 스톱사인이 있을뿐이다. 마주오는 차들은 가끔 보이지만, 내 뒤에 선 차도 내 앞에 선 차도 찾아보기 힘든 그런 길이 많다.
어제밤에는 부루스 로드 20번을 지나쳐야 했었는데, 그 길은 한적한 시골길을 가로지른 조금 큰 도로에 속한다. 그 길을 통과하기 전에 반드시 스톱해야 하는 그런 길이다. 스톱사인에서 멈추지 않고 달리다가 충돌사고를 일으켜 죽은 큰 회사 사장도 있었고, 사고빈발지역으로 내 맘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 길을 맥놓고 달리다가 스톱사인에서 차를 세우지 못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브레이크를 조금 밟아보았지만, 차는 이미 길 중간에 들어서있고, 나는 오고가는 차를 확인하곤,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그 길을 통과했다.
내 차가 가는 그 시간에 그 길을 맘놓고 주행하는 다른 차가 있었다면, 우리는 서로 충돌하게 됐을 것이다. 가슴이 떨려왔다.
“때는 늦으리”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그렇게 나의 깨달음이 더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안에, 그 안에 중요한 믿음의 분량을 확보해두고 싶다.
영적인 혼돈을 잘 보여주는 두 책 “다빈치 코드”와 “장미의 이름”를 올해 들어 읽고있자니, 진리를 찾고자 하나, 그 길을 비껴지나간 인간들의 지성과 고뇌를 절절이 느끼게 된다. 작가가 쓴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단한 몸부림이 개별적으로 들어온다. 등장인물들의 학문적인 날카로움과, 지식의 방대함에 놀라면서도, 인생이 그렇게 무의미한 일에 통채로 바쳐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개는 아침햇살에 걷혀진다.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움으로 빛났던 흰빛의 나무들도 그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그가 잠시 걸쳤던 외출복을 벗어놓고, 겨울의 나무색 그대로, 그렇게 서있을 것이다.
사라질 아름다움에 천착하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찾는데에 나의 생이 쓰여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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