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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방황

나의 요즘의 고민이 무엇이냐?

 

목사님의 설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특별히, 현실의 기독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할때는 마음이 불편하다.

 

목사님의 비판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교회들이 너무 많은 조미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듣기좋은 것으로 복음을 변형하고, 사람들의 죄와 하나님의 거룩함은 제대로 전하지 않아, 믿기에 무리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열린 예배, 대화 예배등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해 일단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 것을 최상의 과제로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복음이 변질돼간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20세기초 세계대전이 끝난후 인문, 경험, 합리주의가 발전하면서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보신다. 예전이나 그때는 복음은 변함없으며, 시대가 변했다고  그 시대에 알맞는 방법으로 복음이 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죄”에 대한 처절한 자백과 회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고 볼 수 없으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중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에 얌전히 앉아있는 교인들에게까지,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인지, 철저히 자문하고, 테스트할 것을 권하신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욱 많을 수 있는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에 의하면 나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가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판단 근거는 무엇이냐.


죽을만큼 “죄”에 대한 처절한 자성이 있었는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룩했는가? 일생일대의 변화를 겪었는가? 등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맞는 말이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처절한 “죄”의 자성에 이르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부족하고 파렴치한 내가 이 세상에서 쓰여지는 몫을 생각할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믿지않는 것들로부터 구별되어, 믿는사람들과 만나고 교제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스럽게 지내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삭의 아내로 선택을 받았던 르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집을 떠나려고 하자,  그의  가족들은 그녀를 붙잡아두려 한다. 이럴때 가족은 떼내야 할 짐이기도 하다.

 

믿지않는 사람들은 들을 귀와 믿을 마음이 없어서,  복음을 듣기를 싫어하며, 우리가 할것은 “믿어보도록 구걸”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선포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생각은 악하여서, 그들의 비위를 사서 그들에게 환심을 산다고 한들,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시기도 했다.

 

특히 내가 상처받는 부분중의 하나는 믿는자와 믿지않는 자를 두 종류의 다른 인간으로 나눠보는 이런 경향이다. 하나님은 믿는자가 배반하는 자가 되고, 믿지않는자가 앞서가는 자가 되기도 한다고 하시지 않았나?

 

예배는 믿는자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여 그를 경배드리는 것인데,  불신자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온갖 예술적인 방법들을 다 동원하는 그런 예배는 이미 예배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일침하신다. 불신자들은 예배자가 될수 없고, 참관자라고 해야 한다는 것.

 

종교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목사님들… 특별히 타종교와 연합과 화합의 제스춰를 보이는 그런 목사님들에게 대한 비판이 엄하시다.


나는 그분들이 기독교의 이름 아래 있는데, 그들이 과연 비판받을 그런 “종교다원주의적인 말씀”을 선포할까 하지만, 목사님은 그런 면에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비판은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기독교내에서는 잘못 믿으면 그 구원을 약속받을 수 없으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생각된다.

 

내가 아는 친구중에 그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 교회에서 행하는 영성체 수련회에 참여해서 그곳에서 얻은 기쁨으로 기독인이 되었다고 확신하는 이가 있는데, 그럼 그는 무엇이란 말인가?하는 의문이 나에게 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다른 것으로는 우리에게 주신것이 없고, 오로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놓으셨다고 하신다. 신유든지  방언이든지 그런 것으로 복음을 전하게 할 생각이 없으며, 오로지 말씀을 아는 것으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을 읽지 않으면 그를 제대로 알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소위 우리가 믿고 있던 여러가지 믿음의 방법들이 오로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것같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는 왜 내가 방황하는 지 잘 나타나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되는 거겠지”하는 초신자적 믿음의 가정이었다. 동네에 있는 서양 교회에 가서 매주 일요일 오전 예배를 보면 된다. 그렇게 가족이 모두 다녔다. 감사했다. 작은 수고를 드리고, 그안에서 나오는 은혜를 그렇게 풍성히 입었었다.

 

그런데, 한인교회가 세워지면서, 이 목사님의 칼같은 설교를 들으면, 더이상 일주일에 한번, 예배 한번 본 것으로 신앙생활한다고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믿는다는 것은 내 온힘과 온 마음을 바쳐야 한다는것을 배워간다. 이러는 와중에 남편은 어려운 설교듣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들도 한국말을 잘 못알아듣고 영어교회에 익숙해있어서 적응하지 못했다. 지난 1년 동안에 나를 빼고는 한인교회 부적응자들로 남겨졌다.

 

그런데, 그런 결과가 마치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것같은 아픔이 있다. 아이들과 매주 아침, 서양교회를 나가지만, 우리 목사님 기준으로는 서양교회는 썩 인정해줄 수 없는 집단?이다. 기독교 국가라 자인하는 캐나다에서 기독인들이라 생각하는 캐네디언들을 목사님은 옳은 방법으로 구원의 메세지를 전해야 할 사람들로 생각하신다. 목사님의 단상은 “너무 사는 방법이 편해서, 하나님도 필요없어 보이는 것 같은 캐네디언들”이다.
그들이 경건하게 교회에 앉아있어도, 제대로 된 말씀을 듣고있지 않다고 단정하시는 것 같은 뉘앙스를 매번 받는다.

 

어쨋든 서양교회갔다온 다음에 모두의 점심을 먹이고 나는 다시 한인교회로 향한다. 말씀 알기에 열심인 그곳 교인들과 나는 조금 간격을 두고 있다. 멀다는 건 두번째 이유겠지만..
그곳에서 열리는 새벽교회도 나는 나가지 않고, 금요예배와 월요 기도모임도 참여하지 않는다. 겨우 수요 성경공부와 주일예배를 참석한다.
수요공부만 해도, 1시간 30분간 목사님의 강해설교이니 이제 목사님의 가르침에 어느정도 귀가 적응되어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지난주에는 집에서 고린도전서를 읽었다.
사도 바울의 말이 있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장 14절)

 

이런 구절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내가 너무 조잡해서 가족들이 건들여지는 말씀안에서야  울림을 받게 됐다는 것을 알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구절뿐인가. 예수님께서 가족내에서 믿는 것으로 인한 다툼과 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부분도 있다.(우리 목사님이 자주 인용하시는데 찾지를 못하겠다. 내가 화평을 주러 온줄 아느냐…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성경은 어떤땐, 서로 상반되는 주장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 것중에서 한가지를 집중해서 보면, 성경해석의 오류를 만들게도 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할때, 우리 목사님은 사랑의 하나님의 개념보다는 인간들이 상상할수도 없는 “거룩하고 경건한 하나님”을 가르치시려고 노력하신다. 왜냐면 사람들이 “사랑과 은혜”라는 한가지로 하나님을 떠올리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징계의 하나님과, 경외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드러내려고 하시는 것 같다.

 

목사님은 “구제”가 가지고 있는 맹점도 역설하시는데, “구제”는 누구나 할수 있는 것이며,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내가 구원받았는지, 그런 것들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구제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이 아니라, 진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주된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생각할때 구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삶의 한가지 방향같은데, 우리 목사님처럼 “구원”이 심각해서는 사실, “구원”을 위한 성경읽기와 연구, 기도등만으로도 벅찰 것 같기는 하다. 그런 확신도 없으면서 구제로 무언가를 보상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구제와 선교로 명성?을 얻고 있는 종교인들을 비판할 때 주로 말씀하시고, 구제와 선한 사업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는 서양교회를 향한 비판에도 등장하게 된다.

 

나의 한인교회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일지,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나도 모르겠다.

 

목사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 있다면, 성경을 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목사님 말씀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성경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인다. 내가 제대로 믿지못했다면, 나는 늦었지만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쉽게 믿었는데도, 내치지 않으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성경책 참 좋아요. 내용은 물론이고 장정과 편집, 그리고 제본 모든 것이요.

한국갔을때 제주도 언니가 영어가 있다고 나를 주든데.. 찬송가는 사랑의 교회

서점에서 샀는데, 같은 출판사 <아가페> 것을 우연찮게 골랐어요.

영어, 한국어 나오는 두 책... 제 재산목록 1호입니다.

 


 

성경책 자랑 조금 더 하려구요.

영어가 인터네이셔날 버전이라 읽기에 쉽구요.

글쎄, 보기 좋은 활자로 되어있는데, 책 페이지를 보면,

어떤 곳은 두쪽이 같은 페이지에요. 왜 그런가, 호기심이...

목사님들이 에스겔서 2장 몇절입니다 하면서 페이지를 가르쳐주잖아요?

다른 책과 다른 페이지로 되어있는 곳은 이렇게 중복 페이지를 만들어서 맞추어

놨더군요. 놀라움 자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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