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시간 2009년 1월1일 새벽 2시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2008년 12월 31일 11시 59분 50초쯤 되어서 김치속을 만들다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뉴욕의 타임 스퀘어앞에서 카운트다운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숫자를 거꾸로 셌다. 54321... 이렇게 새해를 맞이했다.
아직 깜깜한 새벽이지만, 숫자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다.
나는 나머지 김치속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왔다. 꽤나 살림꾼처럼 보일까? 새벽까지 열심을 내면서 칼질했으니 말이다.
고단하게 일을 한 남편은 저녁 11시쯤부터 잠에 빠져들어갔다. 평상시같으면 무우도 썰어주고 했을텐데, 오늘의 그는 피곤함을 무기삼아 좀 무심해보인다. 나는 새벽에 무우를 썰면서 그의 잠을 방해했다. 도마에 떨어지는 칼날소리가 그동안 내가 그에게 해댄 잔소리처럼 들렸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이번에 마늘을 기계에 넣고 드륵 갈았다. 이 소리는 소음이다. 얕은 잠이었으면 쉽게 깼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무반응이다. 나는 제풀에 지쳐 그 모든 것을 해냈다. 아침이 되면 절여놓은 배추를 헹구고, 김치를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사실 오손도손 새해를 맞이해야 할 이유도 없고, 또 그런 갈망도 없긴 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시들해진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의 설레임을 달래주기 위해 저녁 나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전화해보니 식당들도 일찍 문을 닫았더라, 그래서 집에서 사과 소스를 만들고 샤브샤브를 만들어먹었다. 거창하지 않으나 또 너무 서운하지 않게 한해보내기를 했다.
새해 첫날이 별것은 아니어도 새로운 다짐을 할수있어서 좋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이런때가 없다면, 어느때 이런 일을 할까?
반성하다 보면 새해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타나겠지.
* 경제..지난해 좀 규모없는 소비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예기치않은 일들도 연달아 터졌다. 세계 경제의 하향곡선에 발맞추어 우리도 그 여파를 느꼈다. 흥청댔던 기억이 미처 가시지도 않았는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마이너스 통장이 우리 가정에게 경고한다.
* 인간관계.. 가족들과는 꽤 많은 만남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크고작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내가 주축이 되어서 모였던 한번의 모임이 크게 삐끗하는 바람에 나와 남편이 다투기까지 했었다. 나는 이 일 이후로 가족들 모임에 앞성서는 걸 좀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쨋든 이민생활의 큰 힘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교회식구들과의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예의바른 만남들이 있었고, 많이 약한 것은 사회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비지니스 때문에 먼곳으로 이주한 후로는 "노력하지 않으면" 친구를 만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좀 허전하지만 어쩌겠는가?
* 아이들.. "마술처럼 그렇게 잘할수 없어요!"라고 나래가 매몰차게 말했다. 다른 것은 관두고라도 엄마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것도 시키지 않았으면서, 저절로 잘하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닥달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있고, 다정할줄 알았다. 나래 말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잘할 자신은 없지만, 엄마 노릇을 좀 똑똑히 해보고 싶다.
* 기타.. 다음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6년쯤 된 것 같다. 다음이 블로그를 시작하기도 전이었으니까. 블로그로 바뀌면서 블로그 기자를 모집했다. 블로그뉴스 초창기 시절, 운이 좋아서 몇편의 글들이 채택이 되었다. 그 덕에 2007년 우수 블로거가 될수 있었다. 그리고 2008년 새로운 우수블로거들이 뽑혔다. 이번에 뽑힌 블로거들은 정말 쟁쟁한 사람들이다. 처음 시작할때보다 블로그 기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10만명이 넘었고, 앞으로도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블로그뉴스가 활성화되면서 이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VIP"라는 로고가 사라지니, 사실 이제서 제대로 평가받은 것 같긴 하다. 이제 조용히, 편안하게 놀아보자. 글을 계속 쓸수 있을까라고 많은 블로거들이 고민하는 것처럼 나도 잠시잠시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들 눈치 안보고 그저 편하게 해오지 않았는가? 뭔가 기를 쓰고 했어야지, 접더라도 명분이 있을 것이다. 쉬엄쉬엄 걷듯이 하면서 엄살을 떨수야 없으니까.
나이가 이쯤되니 이제는 신기한 것이 없어져간다. 처음에 이민와서 이나라 사람들의 문화, 예의, 사고방식등이 흠모의 대상이더니 그저 그렇고, 많은 인터넷 글들은 모두가 비슷하게 살고있다고, 살아갈 것이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같은 손님이 같은 물건을 같은 시간에 사가면서 같은 말을 하고 나간다. 나는 같은 표정으로 같은 행동으로 돈을 받고 거슬러주고, 같은 말을 하고 그를 보낸다. 아, 정말 반복이 아닌 것이 이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러니 할말도 쓸말도 없어져간다.
그런데 눈보라쳐서 한치앞이 안보이는 거리를 식은땀을 흘리며 운전하노라면, 같은 거리를 같은 속력으로 달려야 좋은 것이라는 것을 대번에 깨닫게 된다. 더이상 "일상적인 것"에 대해 불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들쑥날쑥인 채로 다시 2009년을 열심히 걸어가 보자.
'너나, 그리고 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신중 마신 술이 태아에게 미친 영향...FASD (0) | 2009.03.07 |
---|---|
오웬사운드에서 보낸 멋진 1박2일 (0) | 2009.02.27 |
위안부 "나비" 토론토공연을 기대하며 (0) | 2008.10.29 |
내가 옷을 자주 갈아입는 이유.. (0) | 2008.09.16 |
모노비전 라식수술을 아시나요? --- 짝짝이 눈의 유용성 (0) | 2008.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