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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이 불안의 정체는?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지막 남은 숙제가 속을 알수없는 검은 바위처럼 내앞에 가로놓인 느낌이다.

이것이 이렇게 거대하고, 속수무책으로 느껴질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절반 이상을 헤쳐나와서 이제는 그간의 know-how로 식은 죽먹기일 것이라 생각해온 것은 큰 오산이다. 어쩌면 그간의 노하우는 아무런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의 것은 "요행이도"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말이다. 이제서 임자를 만난 게 아닌가싶다. 나의 숙제는 막내 "미리"이다.

 

방학이 되기전부터 1:4의 싸움이 벌어졌다. 뉴욕 친구집을 방문하겠다는 것이 막내의 주장이었고, 도움을 줄수는 있지만, 쉽지 않다며 그 결심을 무너뜨리려 했던 것이 나머지 4명의 작전이었다. 16살이 바듯 된 미리의 국경을 넘는 여행은 그리 쉽게 결정되어질 것이 아니었다. 제 친구의 결혼식 참여 때문에 나와 제 언니가 불필요한 동반여행을 해줬던 것으로 충분히 감사해할 일이었다.

 

그러나 친구가 비행기값을 내준다면서, 올 여름에 꼭 다시 방문해야 한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비행기표를 끊어준다는 것도 미안한 일이고, 긴 여행을 계획한 것도 마음에 안들고, 여름 시작전부터 뒤숭숭하게 만드는 것에 언찮기는 했지만, 결국 여행을 수락하기로 했다.

 

날짜가 임박해서야 비행기값이 너무 비싸니, 버스편으로 오면 어떻겠냐는 전갈이다. 버스여행을 해봤던 나는 미리를 혼자 버스에 태울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없는 시간내서 나와 남편이 뉴욕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것은 미리가 극구 반대한다. 버스여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가족회의가 열렸는데, 언니들이 미리에게 여러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핀잔했다. 미리는 코너에 몰리기도 한다. 그날 저녁,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인여행사에서 뉴욕 투어가 있는데, 그 차편을 통해서 보내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안났다면, 미리를 보낼 방법은 묘연했다.

 

어쨋든 여행사에 전화하고, 호텔에 도착했을때, 뉴욕 친구가 마중하며, 올때도 그 버스회사와 연락해 빈좌석이 있을때 돌아오는 조건으로 알아보게 됐다. 마음은 그런 방법까지 없어서, 아이를 주저앉히고 싶었지만, 이왕 머리에 떠오른 것 도움을 주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이가 혼자 가니, 국경에서 이민관에게 지적받을 것을 대비, 변호사에게 "여행허락서"를 공증받기도 했다.

 

어쨋든 어렵게 뉴욕으로 막내가 떠났다. 원래 1달을 말했던 데서, 2주간으로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거부당해졌다. 1:4였지만, 미리는 뉴욕에 있는 친구부부 2명의 힘을 얹어서 3:4로 모든 일에 제 의견을 똑똑히 내곤 했다.

 

그집을 결혼식때 방문해봤고, 당사자들도 만나봤음에도 나의 마음에는 그들을 믿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밖에 믿지 못함을 이번 여행사건을 통해서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어쨋든 미리의 뉴욕여행은 무시히 끝났다. 다시 돌아오는 데도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그쪽의 도움으로 떠날때 바로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아이에게서 안도를 느꼈었다.

 

엄마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니, 돌아와서 페이슬리 가게에서 일을 했다. 제가 쓴 돈을 값겠다고 하더니, 웬걸 버는 대로 소비하는라 바쁜 것 처럼 보인다.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옷사기, 액서사리 사기" 등에 큰 관심을 보이니, 조금 당황스럽다. 아이들이 멋을 부리기 시작할때, "엄마 눈높이"가 아닌 "자신들의 높이"로 펄쩍 뛰어오르게 되니, 그 간격이 너무 커서 영 불편하다.

 

어제는 일어난듯 하더니 소리가 없다. 머리가 길어서 좀 잘라내야 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뭔가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려온다. 한참을 있다 화장실에 가보니, 혼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짧은 머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혼자 머리를 자르면 제대로 자르기 어렵다는 데도 괜찮다며, 계속 가위질이다. 할수 없이 원하는 대로 내가 조금씩 손을 댔다.

 

점심때 자꾸 그애의 머리에 눈이 간다. 어설프다. 미장원에 가라고 말했더니, 그 말을 튕겨내듯이 받아낸다. 똑같은 말을 내가 많이 했다는 것이다. 막내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어서 서운하다. 혹시 사과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전에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과 미리가 가게에 있던 날이었다. 미리가 가게를 보던 중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무척 "슬픈 표정"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미리는 그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그는 "오늘은 안좋은 일이 있었다"며 몇가지 물건을 사가지고 나갔다는 것이다. 미리는 그가 나간 다음에 창밖으로 내다보았는데, 물건을 산 다음에도 오랫동안 차를 출발시키지 않고 머물고 있더랜다. 그래서 한참후에 작은 종이에 "모든 일이 다 잘될것이다"라고 적어 차유리창에 붙여줬다고 한다.

 

그 모양을 보고, 남편은 "너무 나서지 말라"고 미리를 야단했고, 미리는 그 야단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일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샘터에 물을 길러 섰을때 미리는 아빠와 함께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과 좀 있겠다며 뒤처졌다. 그 와중에 제 언니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아빠의 반응에 수긍할 수 없다는 문자를 보냈다.

 

제대로 된 사정을 알지 못하지만, 집에 있던 두 딸들은 "미리의 친절을 아빠가 야단했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동생편을 들었다. 누구나 못본척 할 수 있는 일을 미리가 관심을 가졌으며,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건,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성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이 돌아오자 자초지종을 내게 설명했다. 창밖의 그 남자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오랫동안 서있었으며, 미리는 제 관심 범위를 벗어나 참견했다"는 것이다.

 

늦게 들어온 미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은 "가게일을 내 팽개치고 그에게 관심을 쏟은 것도 아니고, 그저 그의 기분이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차 윈도우에 그런 쪽지를 붙인 것뿐"이며 나중에 그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갔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나이든 남자에게 어린 학생이 참견할 바 아니라고 말하는 아빠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나이를 떠나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고 주위에 이웃이 있음을 알려준 것뿐이라면서, 아빠의 사과가 있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날 저녁 나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고, 남편과 나는 오랜 시간 동안의 가게일로 말미암아, 손님들에 대해서 "드라이"한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을 인정하고, 미리의 관심에 대해서 "그런 관심은 자제하라"고 말할 근거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쨋든 사건은 "아빠의 사과"로 일단락 지어지게 됐다. 미리는 이 일로 인한 대화중에서 문화가 다른 부모님들이 가끔은 미스테리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많은 대화를 의식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말을 나는 덧붙였었다.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제 언니들과는 이제는 의사소통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는 와중에 막내하고의 대화터널을 너무 방치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애가 뉴욕 친구에 그리 절박한 것도 집안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에 있지 않았나 싶다. 집에서는 언제나 "베이비"로 대접받던 것밖에 없고, 그애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위로 두 언니들은 현재 공통점이 있다. 우선 먹는 것에서 "비건(vegan)"주의이고, 콘서트와 여행등 함께 많은 일들을 도모했다. 미리는 이런 일들을 친구들과 풀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또하나 미리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큰 장애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두 언니들과 한참 다르다. 언니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나쁜 음식"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것들을 미리는 먹는다. 엄마 음식이 사실상 맛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음식"과 미리가 "좋아하는 음식" 사이에서 나는 계속 갈등할 것이다. 제 언니처럼 식단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기적이 미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됐던 미리가 이제는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자고 한다.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고 내게 말한다. 이제 언니들은 모두 떠났고, 집에 한명밖에 남지 않은 미리가 내게 큰 숙제가 되고있다. 가슴 한켠에서 "자신없음"을 알리는 심장고동소리가 조용히 내안을 헤젓고 다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위로 두 아이들의 자립기가 "기적"이었듯, 미리와 나 사이에도 어떤 기적같은 통로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비밀이 많고, 친구와 나눠야 할 것이 많아진 미리가, 엄마를 조력자로 초대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장치를 교묘히 만들어야 하는데.. 아 불안의 정체가 너무 확연하다. 보다 논리적이 되고 한편으론 가슴이 따뜻해져야, 그리고 머리를 제손으로 자르더라도, 곧 다시 길어질 것이니까, 그리 염려하지 않는 강심장이 되는 것도, 미리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내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