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친구, 잠, 그 셋중에서 하나는 포기해야 해. 넌 뭘 포기할 수 있어?"
루미가 동생에게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난, 친구를 포기했었지. 그랬는데, 나중에 그 친구들을 찾게 되더라.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 같애.
미리는 그 셋중에서 아직은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는지 대답이 없다.
루미의 그런 발언이 나는 충분히 수긍이 된다. 지난 2년간 그애는 공부와 운동에 주력했고, 도시락과 가끔씩 가족들의 요리를 만드는데 시간을 쓸뿐 친구들과의 사귐은 최소한으로 줄였었다. 10학년때까지의 모든 습관을 쇄신하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애를 보면서 엄마인 나는 무척이나 뿌듯했었다.
그랬던 결과, 지난 주말 열렸던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루미는 인정을 받았고, 제 부모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새학기가 시작되고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다음인 10월 중순경 열린다. 집을 떠났던 학생들이 추수감사절 연휴에 맞춰 고향을 방문하게 되는 그때, 다시한번 학교에 모여 새출발한 이들과 교사들이 해후하고, 장학금 수여식을 갖는 날이다.
졸업식을 의미하는 COMMENCEMENT에는 "시작"이란 뜻이 있단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니, 이런 단어를 사용하나 보다.
루미는 이번 졸업식에서 "전교2등"상으로부터 시작하여, 킨스먼 클럽에서 주는 장학금, 12학년 대학코스 영어 최고상, 영어와 사회 점수 최고상, 체육 최고상과 평균 80점 이상의 학생들에게 주는 온타리오 스칼라쉽을 받았다. 이날 엄마와 캐나다를 방문중인 이모를 모시고 갔는데, 루미가 상을 받는데, 상장과 상품은 없고, 작은 봉투만을 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이곳의 상품은 모두 "금일봉"이다.
각 상마다 액수가 다른 돈이 들어있어, 이를 모두 합하니, 1,150달러의 상
금이 모였다. 루미는 이 돈을 내가 다 가져도 되냐고 몇번이나 물었었다.
대학입학에 산정되는 루미의 12학년 대학 코스 6개 과목 전체 평점이 94.5였다. 95점이면 대학입학시 일년에 3,000씩 12,000달러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0.5점 차이로 루미는 매년 2,000달러씩 4년간(B학점 이상일시) 받게 된다. 어쨋든 0.5점 차이로 마음이 조금 쓰렸는데, 이번엔 전교 2등이라니, 전교 1등의 학생에게는 캐나다 총독이 주는 메달이 수여된다. 이번에 메달을 받은 학생은 루미말로는 그야말로 친구도 없이 공부만 한 아이라 했다. 내속에서 솟아나오는 욕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졸업생 100여명, 많은 후원단체 및 업체 등이 60여개의 상을 수여했다. 상을 받은 아이들은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편지를 보낸다. 마을 주민들이 키우는 학생들인 셈이다. 루미도 제 고향 사람들의 후원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졸업식후 카페테리아에서 열렸던 다과회에서 루미를 가르쳤던 교사들을 만났다. 루미 칭찬들이 자자하다. 대학교육이 그애에게 맞을 것이란다. 아주 잘할 것이라고, 자랑스러운 딸을 두셨다고.. 코피를 몇번 흘릴 정도로 열심히 했던 그애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졸업생들... 40%는 대학진학 30%는 학교에 남아 1년 더 공부하고, 30%는 직업을 구한 것으로 보였다. 뒤로는 학부모들이 보인다.
루미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루미와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부 잘하는 딸"을 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우리 부부. ㅎㅎ
12학년 영어에서 최고상을 받은 송루미양. 이 상은 밀레리엄 서점에서 후원해서 상금과 함께 책이 부상으로 수여됐다.
이제 대학이야기를 하자. 요크 대학에 장학금을 신청했었지만, 여러 선생님들의 추천서에도 불구하고 연락오지 않았다. 다만, 내신 고득점자에게 자동으로 수여되는 입학장학금(위에서 언급한)뿐. 루미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졌을 것"이라며, 우리를 위로한다.
루미의 변화를 내가 몇번의 글을 통하여 전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더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루미는 요크대학 기숙사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 부엌이 갖춰진 suite 스타일 기숙사를 얻었다. 5개의 방과 부엌및 거실, 두개의 샤워실이 딸린 화장실이 그애가 쓰는 기숙사다. 전체 6명이 지내는데 저희들끼리 스위트 메이트라 부른다. 현미밥을 좋아하는 루미를 위해 압력밥솥을 선물했다. 루미는 작아보이는 제방이 모든 물건을 다 간수할 수 있게 넉넉한 수납공간이 있다며 좋아했다. 이번에 방문한 루미의 방은 잘 정돈되어 있고, 밖에서 햇빛이 잘들어오는 아담한 곳이었다.
health and society가 그애가 공부하는 학문인데, 흥미로운 것들이 많단다. 다른 과목으로는 철학을 듣겠다고 해서, 수강신청할때 내가 말을 보탰었다. "철학"은 "정답"이 없는 학문이다. 너무 방대해서, 1학년때 조금 듣는 것으론 아무런 것도 알수 없을 것이라면서. 루미는 철학을 들으면 안되는 이유를 좀더 설득력있게 말해보라고 했는데, "그거 다 쓸데없는 공부야"하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그애를 말릴 수가 없었다.
이번에 루미를 데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애와 이야기를 하는데, 철학 과목이 아주 흥미롭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철학교수가 말하길 "너희들이 철학을 듣겠다고 했을때 너희 부모들의 반응이 이렇지 않았느냐"하면서 교수가 이야기를 하는데, "완전 엄마의 레파토리"여서 많이 웃었다고 말한다. 나도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철학을 하면, 논리적인 생각과 대화법, 논쟁법까지 익히게 되니,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고 그애는 설명한다. 그녀의 보폭이 넓어져서 앞으로 내가 쫓아가지 못할 것만 같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 한번 수업을 빼먹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교수들의 강의가 있고, 교수보조와 함께하는 "강의 리뷰" 시간이 있는데, 제게는 교수의 강의가 더 유익하게 생각된다고, 많은 지식을 한꺼번에 얻어들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강의실에서는 출석체크조차 하지 않는단다. 대학생쯤 되면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말인가 보다. 강의를 빼먹고 수업을 따라가기는 어렵다고. .
이제 18살이 되었으니, 그애라고 하지 말고 그녀라고 불러주자. 그녀와 오고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이야기 상대로 삼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조근조근 말해주니,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에 뒷좌석에 앉겠다고 하셨던 엄마는 우리 둘의 "영어" 대화를 못알아들었어도, 딸이 어쩜 그렇게 엄마를 즐겁게 해주는지, 루미가 참으로 대견하다고 칭찬하셨다.
루미의 8학년(중학교) 졸업식에서 나는 큰 실망을 했었다. 졸업장밖에는 받지 못했던. 그후로 부모의 욕심을 줄여야 하는 일들이 이어져, 기대치를 낮추느라 무척 노력을 했었다. 그애안의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 부분은 그애가 말한 "자기보고서"에 소개되어 있다.(캐나다 한인2세의 자기보고서 1편부터 연이어 3편까지 참고) http://blog.daum.net/mindyleesong/13722082
이제는 고비를 벗어난 것 같다. 살자면 별스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엔간한 것들에는 요동치지 않을 것만 같다. 루미를 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정해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만 "동기 부여"가 됐느냐 안됐느냐의 차이가 아닐까싶다. 고맙고 수고했다 루미야..
'나래 루미 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친구 만남과 중고가게 쇼핑까지..(토론토 끝) (0) | 2012.02.08 |
---|---|
파노라마 식당과 아이들..토론토(1) (0) | 2012.02.05 |
이 불안의 정체는? (0) | 2011.09.07 |
최고의 순간들을 사진에 담다..Prom 파티 (0) | 2011.06.01 |
아이들과 보낸 7일 (0) | 2011.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