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은 온타리오에서 제정한 법정공휴일 “가족의 날(Family Day)”이었다. 패일리데이는 온타리오주 전체 대학들에 적용되는 “독서주간”(19일-27일)중에 끼어있었고 우리는 큰딸 나래를 전주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데리고왔다. 초중등학교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지만, 대학생들은 학교 “휴지기”를 맞은 셈이고, 주말과 월요일을 낀 연휴동안 아이들로 소란한 날들을 보냈다.
21일은 막내의 제안으로 팀 버튼(Tim Burton)의 전시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막내 미리는 그 며칠전 팀 버튼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팀 버튼이 누구인지, 그가 유명한 사람인지,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이런 것에 대한 아는바 없는 상태에서 토론토까지 가야된다는 말에, 안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미리는 제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은데, 차를 제공해줄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불러서 자세히 설명을 들으니, 팀 버튼은 만화가로 월트디즈니에서도 일했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예술가였다. 큰딸과 둘째도 팀 버튼의 전시회라면 가고싶다고 하는 바람에, 계획을 변경해 온 가족과 미리의 친구 2명을 합하여 7명이 움직이게 되었다. 전시회에 가게 된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그날만은 “가족의 날” 기념으로 입장료 무료이며, 일찍 줄서야 볼 수 있다는 소식이다.
팀 버튼의 전시회가 열리는 TIFF 벨 라이트박스 사이트를 방문해보니, 팀 버튼은 공포스런 만화를 주로 그리는 사람으로,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James and Giant Peach”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등의 몽환적이며, 공포스런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는 만화가일뿐 아니라 영화제작자로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배트맨등이 그가 제작한 영화며 글, 그림, 감독으로 종횡무진한다.
토론토에 도착, 남편은 우리가 관람할 시간 동안 토론토 삼촌댁을 방문하기로 하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남았다. 우리는 입장 시작 1시간도 훨씬 전에 도착, 앞쪽에서 기다릴수 있었지만, 줄은 시시각각 늘어나, 끝이 안보일 정도가 되어갔다.
팀 버튼의 그림은 내겐 좀 당황스러웠다. 우선 사람의 형체는 있지만,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을 들이댄 것처럼 형체가 변형되어있다. 긴 그림자나, 뾰족한 얼굴, 얇고 긴 몸등은 기본이고, 눈만 커진 사람, 목과 몸통이 분리된 사람, 인간과 집승의 교합체, 살아움직이는 뼈들, 무덤, 십자가, 귀신, 괴물 등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인간 근원의 깊은곳, 음습한곳, 죽음 너머등에 대한 그의 상상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떤 그림은 남자가 여자를 보는데, 그 남자의 눈이 튀어나와 여자의 옷을 벗긴다. 지퍼에 눈이 매달려 조심스럽게 지퍼를 연다, 그 눈은 그 남자의 몸과 꼬인 실같은 걸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쨋든 어떤 과장과 비틀림이 그의 그림 전부에 스며들어 있다.
옆의 그림만 해도 그렇다. Corpse Bride란 타이틀의 만화영화인데, 유령신부란 뜻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이란 결국은 우리가 볼수 없는 저 너머의 한계를 추구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불안의 근원을 자꾸자꾸 들춰내서, 들이대는 것. 공포에 관한 것은 어떤 것도 싫어하는데, 아이들은 이 작품들이 흥미롭댄다.
전시회 관람이 끝나고 두팀으로 나눠 식당을 찾았다. 큰애와 둘째팀에 속해있던 나는 “한국식다….ㅇ”을 발음하려다가 아이들에게 혼난다. “엄마, 이런 곳에 와서는 다른 음식을 먹어보세요. 언제나 한국식당만 찾는다니까…” 뭐 이런 비난이다. 우리들이 갔던 곳은 인도음식점, 점심부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은 여러 종류의 야채, 혹은 육류에 카레 소스를 입힌 것들이었고, 콩으로 만든 음식이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토론토 엄마집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께서 점심을 준비해놓으셨다 하신다. 막내 친구들까지 군식구가 있어서 식사 걱정은 마시라고 그전날 전화했는데, 엄마는 애써 음식을 준비하셨나 보다. 실망이 대단하신 목소리… 집에 가는 길에 들렸더니 과일을 내놓으셨다. 작은 평수의 엄마집에 장정 7명이 들어서니, 숨쉬기가 벅차다. 얼른 배, 사과를 깍아먹고 일어서는데, 준비했던 김치를 싸주시고, 오늘 점심거리로 만들어놓았던 것을 또 싸놓으셨다.
팀 버튼 전시회에 같이 갔던 캠, 아스핀 남매.(왼쪽에서 두번째, 세번째) 미리(왼쪽)가 흰색, 검정색 교차무늬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보니, 팀 버튼이 애용하는 무늬였다.
오는길에 한국식품점에 들러 몇가지 반찬을 산다. 엄마가 김치를 해주셨는데, 싱싱한 김치거리를 보니, 또 사고 싶어진다. 요즘은 “야채 사재기에 중독”된 나를 발견한다. 특히 첨보는 야채를 집어든다. 집에가서 이리저리 요리를 해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갓과 부추를 샀다. 집에는 가정교사(인터넷)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에게 물으면 갓김치 담는 것 별로 어려운 일 아닐 것이다.
미리 친구 아스핀이 김치거리를 샀다한다. 그래서 그녀의 봉투를 보니, 배추 1단, 고춧가루가 들어있다. 시장보는 걸 도와줬어야 했는데. 아스핀의 엄마는 김치를 좋아하는데, 그전에도 집에서 만들었다 하였다. 고춧가루 대신 카얀이라는 아주 매운 이곳의 고추가루 종류를 넣고 만들었다고. 아스핀에게 물으니, 맛있게 김치를 먹었댄다. 그녀는 그녀의 방법대로 가정교사(인터넷)에게 배워서 하는가 싶다. 내가 가르쳐준다면,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아 제안을 하지 못하겠다. 내 방법대로는 넣어야 하는 것도 많고, 절차도 까다로와 그녀가 김치를 담가 먹을까 싶다. 대신 엄마의 김치를 썰어서 작은 김치통에 담아서 보내줬다.
24일에는 큰딸 나래와 외출해야만 했다. 우리가 속한 온타리오 한인 실업인협회에서 주는 장학금 수여식이 있는 날이다. 대학2학년생 이상이면 신청자격이 있고, 실업인협회에서는 몇년전부터 신청자 전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며칠전에 엄마에게 실망을 준터라 이번에는 점심시간에 가서 식사를 하겠다고 알려드렸다. 오기만 하라고, 식사준비 해놓겠다는 데가 어디 다른데 있던가? 엄마집에서는 언제나 귀빈 대접이다. 남편과 나와 나래를 위해서 엄마는 또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으셨다. 이번 엄마 음식중에서는 파래무침이 참 맛있었다. 새콤 달콤한 그맛, 갯가에서 자라서, 해조류의 찝찌름한 맛을 좋아하나보다. 남편은 간김에 엄마에게 침을 놔드리고, 다시 엄마의 냉동고를 뒤져 그전에 쪄놓은 떡을 챙겨왔다. 착한 정부에서 매달 주는 돈으로 청렴(?)하게 사는 엄마의 냉장고, 냉동고에는 얼마나 먹을 것이 많은지, 엄마는 절대 가난해질 수 없는 것 같다.
실업인협회 회의장에는 속속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번에 수혜학생은 114명이란다. 작년보다 2배나 그 수가 늘었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뒷자리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조용히 난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눈을 휘둥그레뜨고 날 바라보는 그는 캐나다 첫 직장의 상사였던 분이다. 선배라고 해야 하나. 존경하던 그분의 옆에는 건장한 청년 한명이 앉아있다. 아이들이 서너살때 함께 놀았던 것 같은데, 그 선배의 막내 아들도 장학수혜자였던 것이다.
실업인협회 회장, 한인회 회장, 총영사등등이 나와서 축사를 했다. “자랑스런 한인의 자녀들이 사회에서 성공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답사를 했던 장학생 대표는 정 티나 양으로 행사장에서 눈에 띄는 여학생이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눈을 끄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비단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지, 연구좀 해얄것 같다. 그녀는 “한국인 부모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학과가 아니고, 연극학을 전공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인 부모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학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의사, 변호사, 약사 등등. 아이들도 이면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적성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가는 학생”도 있겠다. 수혜학생들의 명단과 학교만 나열되어 있어서 전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학생들의 전공을 알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인회 백경락 회장에게서 장학금을 수여받는 송나래양.(옆사진)
나래는 사회자였던 이지연씨가 “완벽을 넘어선 영어”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것 같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액센트가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이지연씨는 City-TV 리포터로 영어가 필요한 한인행사에 사회자로 곧잘 얼굴을 내민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2개의 이름들이 있다. 한국이름, 영어이름, 그리고 이런 날을 보면 두개의 언어로 진행된다. 이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다. 다양성을 익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까. 이지연씨같은 한인2세들이 무수로 배출될 것이다. 한인2세들이 활발하게 뛸 캐나다땅을 상상해본다.
아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학생부터 부모가 아이의 장학금을 수령한 사람도 있었고, 양부모중 대부분 한쪽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 것 같다. 부모중 한명은 가게를 지켜야 하는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좀 서글프기도 하다.
대학생쯤 되면 부모를 생각하게 된다. 바로 돈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캐나다 학생들은 자신이 학비와 용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닌다. 그렇지 못하면 정부의 학비융자를 받게 된다. 그런데 한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최대한 협조를 해준다.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의 희생과 경제적인 도움에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 것 같다. 그 부모의 부담을 줄이려고 방학때 아르바이트들을 열심히 하게 되고 말이다. 19살이 넘어서니 정부에서 택스 리턴이 나래 이름으로 나온다. 석달마다 100달러 미만으로 나오는 그돈을 아주 고마와하면서 쓴다. 무일푼이 되기 전까지 돈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대학생활 동안 최대한 절제하면서, 지출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25일에는 세아이와 워커턴에 있는 White Rose 식당에 갔다. 친환경을 추구하는 소박한 식당이다. 약간 말이 어눌한 주인청년은 식당 서빙도 하고, 음식도 만든다. 나래가 고등학교 다닐때 단골이었던 곳이다. 멕시칸 음식이 많은데, 나는 2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그것 모두 수프(soup) 종류라고 해서, 웃음거리가 됐다. 안에 감자등 야채를 소스에 버물려서 넣고 얇은 밀가루전병같은 것으로 싸서 튀긴 음식인 사모사와 버섯, 브로콜리 수프를 먹었다.
불공정거래가 만연한 커피의 경우 이 식당은 공정거래로 사들인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를 팔고, 각종 무공해 곡물을 포장해서 팔고있다. 지역 농부들과 연계해서 하는 것 같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나는 이집 커피맛이 좋아서 커피콩을 샀는데, 집에서 만든 것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나래와 루미는 집에서는 매일 work out을 한다.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나래가 없을때는 나도 곧잘 루미와 요가를 같이 하곤 했는데, 둘이 모이니, 엄마는 한참 왕따이다. 둘이 하는 격심한 운동은 내가 따라할수 없어서 방해하지 않고 그들의 운동중 웃음소리를 즐기는 것으로 그쳤다.
26일 저녁에는 “It’s Complicated”라는 영화를 함께 봤다. 옆방에서 인터넷 채팅을 하며 가끔 들른 막내를 제외하고 말이다. 메릴 스트립이 주연인 이 영화는 “이혼 가볍게 하지 마라. 옛 배우자가 좋다”는 주제를 가진 영화이다. 코믹하고, 스토리가 간단해서 가족들이 함께 보기 좋다. 외국영화를 보기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아이들이 함께 보자고 하니, 꼼작없이 끝까지 봤다. 헤어졌던 옛 남편은 장성한 아이들과 옛부인에게로 돌아오고 싶어하지만, 때는 늦었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였는데, 메릴 스트립은 얼굴에 주름도 많아서 어떨땐 70대 할머니로 보이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그녀가 예쁘단다. 아이들과 영화를 시청하다보면, “예쁜것”에 대한 시각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식과 캐나다식이 다르다고 해야겠지. 그런 시각차를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에 갔을때 뚱뚱이 취급을 받았던 저희들의 경험담이 꼭들어간다. 한국인들은 너무 “마른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27일 아침 나래는 남편과 구엘프로 내려갔다. 둘째는 숙제가 많아서 교회가지 못하겠다는 허락을 그전날 받아놓은 상태다. 막내에게 교회갈 준비하라고 하니, 오늘은 안가고 싶단다. “뭐시야!!” 그러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뒤에 슬금슬금 다가온 그녀에게 “네가 알아서 해!!”라고 쏘아줬다. 한참 기우뚱 서있더니, “고맙다”고 볼에 뽀뽀하고 사라진다. 안가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날 나는 혼자 교회를 다녀왔다. 약간 화나기도 했지만, 어쩔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교회가면 “죄인이고,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매번 배운다고 큰애가 내게 말했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말은 둘째가 했었다. 저희들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쉽지 않을게다. 엄마도 힘든데. 어쨋든 아이들과 “Big Talk” 할때가 다가오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애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 나도 흔들리면서.
아이들과의 일주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크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갈수록 왜소해져간다. 가끔은 영어 때문에 아이들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똑같은 말을 수십번 반복한다는 것도 아이들에게서 듣는다. 때로는 아이들이 요리한 특별한 식탁에 초대되기도 한다. 살아나가는 시간만큼, 동지애의 두께가 쌓여간다는 사실이 고맙고 신기하다. 오리지널 5명(영화에서 나오는 대목이다)으로 엮인 우리들, 앞으로도 잘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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