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기다렸다.
"이제 마감입니다"하는 소식을.
OKBOSS(Ontario Korean Business Occupational Stress Study) 프로젝트 설문조사 부문이 끝났다. 총 1400 여명, 한인 소규모 자영업 종사자 700 여명과 직장인 700 여명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가 끝났다. 이제 이 자료를 토대로 분석 보고하는 작업이 남아있지만, 설문자로서의 나의 일은 끝났다.
총 12명의 설문조사자가 지난 4월부터 활동했다. 나는 50명의 자영업자와 28명의 직장인 인터뷰를 마쳤다.
처음에 전화로 노삼열박사에게 지원자 인터뷰를 받았다. 그분은 우리 지역에 장사하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지, 다른 직장인들은 없는지 물어보시곤, 한 50명 정도는 하실수 있겠네요, 하셨다. 그때 그보다는 많이 하겠지, 혼자 속으로 생각했었고, 그 최대한도를 100명으로 잡았다. 12명 인터뷰어들이니, 내 몫을 하려면 그정도는 해야할 것 같아서. 그랬는데 이렇게 마감이 되니, 시원 섭섭하다.
그러나 시간을 더 많이 준다고 해도, 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을 안다.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빨리 인원수를 채워서, "마감됐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초반에는 모두 열심들을 내었다. 설문대상자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섭섭지 않게 오니,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나 차츰 분야별로 인터뷰할 수 있는 대상들이 좁혀져 나가자, 모두들 힘들어했던 것 같다. 5월 6월에 급격히 올랐던 숫자가 나머지 몇십명을 채우는 데는 몇달 이상이 걸렸으니 그래프로 그리면 어떤 모양일까? 앞쪽으로 급경사이면서 뒤쪽으로는 긴꼬리를 지닌 완만한 내리막 언덕이랄까?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남았던 숙제는 여자 전문가 그룹과 남자 사무원 그룹이었다.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겠다. 여자이면서 전문가 그룹, 의사 변호사 간호사 약사 엔지니어 등등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고, 남자이면서 사무직에 있는 한인들은 많지 않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어쨋든 마지막 두 카테고리 100명 미만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2달 이상이 걸린 것 같으니, 누군가가 해서 그 숫자를 채워주기를 인터뷰어들은 서로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나는 많은 선물을 받았다.
가장 고마왔던 것은 내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한사람이라도 더 소개시켜 주려고 노력했던 여러분들이 있었다. 설문조사가 근 20페이지 250문항에 이르고, 그것도 사적인 것, 내면적인 것을 물어보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 누군가에게 소개시켜 주기 쉽지 않은 일이다. 대상도 까다롭고, 그들의 허락을 얻어내도 시간맞추기등에서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이 없었다면 설문조사를 순조롭게 마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특별히 기억나는 한분중에 인터뷰어의 수색작업에 걸려든 분이 아니라,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설문에 참여하겠다고 오피스에 연락온 분이 있었다. 코디네이터 에스더씨는 인터뷰어들에게 동시에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모집했는데, 내가 첫번째로 응답하여 내가 당선되었다.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2시간 이상 떨어진 미시사가에 계신분이기에 나에게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에스더가 그의 연락처를 주었다.
그분은 이력이 특이하였는데, 한국에서 의사였으며 이곳에서는 병원에서 검사실(lab)을 검사하는 특별한 분야에 있었다. 나는 어느 가을날 그분과 설문조사를 마쳤다. 그분은 이런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것에 관심을 갖고 나중에 내게 다시 연락이 와서 자신의 친구도 소개해주는등 애써주셨다. 여자 전문인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이사급, 고위직장여성을 소개해주기도 하셨다. 또한 간호사로 일하는 조카까지 동원 전문직 여성으로 간호사 몇분을 인터뷰할 수 있기도 했다.
직장에서 간부급으로 있는 한인여성을 만날 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정들을 거쳐야 했다. 40분의 설문조사 시간을 얻기 위하여 그녀를 소개해주신분, 에스더씨, 그녀, 나, 그녀의 비서 이렇게 5명 이상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조정했다. 마지막으로 비서가 보내준 일정에 오케이 사인을 해야, 스케줄이 확정되었다. 그날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서둘렀더니 1시간 전에 도착, 두번의 검문을 거친 후에 시간이 되어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날 10시 30분 그녀와의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일어났었다. 나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의 가치가 참 많이 다르다, 뭐 이런 것을 느끼긴 했지만, 상관없다. 그 바쁜 시간에 설문에 응해준 그녀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낀다. 50대 1.5세로서 그렇게 고위직에 오른 그녀를 만났다는 것도 내겐 행운이었고, 그녀도 아들 둘을 키우는 나와 비슷한 엄마라는 것을 발견한 것도 즐거웠다. 그녀는 비서가 계속 알람을 울려대는 데도, 나와의 면담 시간을 약속시간을 15분 정도 넘기면서까지 사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번 일로 토론토에도 자주 갔다. 도시는 조금 예의가 없게 느껴졌다. 한인타운에 가까운 크리스티 전철역에서 잠시 앉아있었는데, 더운날 사람들이 지쳐 자리를 찾는데 4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2명이 앉고 가운데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남녀를 보았다. 중국인들이었는데, 부부였을까? 서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큰 소리로 내집 안방처럼 이야기를 나누니, 그다지 보기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Trust me I am a liar"라는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 "Trust"와 "Liar"란 두 낱말이 묘하게 상충되면서 두 낱말의 부조화가 빚어내는 상스러움을 거기에서 느낀다. 유머일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시는 묘하게 사람을 배반시킨다.
조금 마음아팠던 것은 비지니스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다. 어느분은 "화"가 도를 넘어, 금방 터질 것 같아 조마조마하기도 하였다. 이미 작성된 질문에 대답만 하면 되는 설문조사로는 자신의 사정을 다 털어놓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좀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하고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었다.
꼭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사연들을 갖고 살아나가고 있었다. 두어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싣기도 하였다. 물론 허락을 얻고. 기회가 된다면, 더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만날 사람은 그후에라도 만나지게 될 것이므로.
인터뷰 대상자들을 찾기위해 키치너 워터루 한인실업인협회 임원들을 만나서 협조를 얻어냈고, 그들이 발간하는 뉴스레터에 인터뷰요청 내용을 싣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고 전화를 해온 사람은 단 1명. 대신 키치너 워터루에서 식품점을 하는 사촌오빠가 여러 사람을 소개시켜줘서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에 9명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것이 나의 최고 기록이다.
처음엔 망또처럼 멋지게 토론토대학교, Camh(Centre for Addiction and Mental Health), OKBA 등의 굵직굵직한 단체를 등에 걸쳐서 모든 것이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에 협조적이지 않은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망에 좀 주저앉아있기도 하고, 또 용기를 내서 후다닥 일어나기도 하고 했더니 시간들이 흘러서 끝을 맺게 되었다. 이제는 그 망또들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지면을 빌어 마음을 써준 모두에게 진정으로 감사함을 드린다. 내 일임에도 나 역시 아무에게나 손을 벌리지 못했다. 전화연락 한번도 없다가, 무언가를 해달라고 연락하는 일 하지 못하겠더라. 이런 소심함으로 부끄럽지 않게 끝낸 것은 정말로 당신들 덕분이다.
한가지 자랑을 하자.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는 홍보담당을 맡았다. 중간중간 기사를 내보낼 때는 내가 작성해서 신문사등에 보냈다. 나는 이 일을 기쁨으로 했고, 오피스에서는 이런 내 작업에 대해서 보상해주기도 했다.
이제 자료를 취합 분석하는 일만 남았다. 이부분은 노삼열, 김일호 박사께서 하신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았던 만큼, 관심들이 있을 것이다. 한인들을 대상으로한 대대적인 설문조사 작업,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형편을 알리는데 일조하고, 그들을 도와줄 어떤 정책들이 나와준다면 더할 나위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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