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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우유를 너무 많이 사는 아줌마

- 엄마, 시장보는데 아시안 아줌마가 카트에 우유를 많이 실었더라구. 그래서 식구가 많구나, 생각하다가 보니...

- 그래, 그분 한국 아줌마일거야, 가게하시는. 가게에 필요한 우유를 사는 거야. 바로 네 엄마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한국분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어.

- 하하, 호호


둘째는 토론토살이를 하면서, 덩치작은 아시안 아줌마를 만나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다. 가게 들어갔을때 가게 보는 아줌마를 볼 때도 그렇고.

폼나는 엄마의 모습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 모습이 바로 내모습이 아닐수 없다.


가게하면서 굴욕적일 때가 대형 식품점에 가서, 할인하는 물품을 카트에 한가득 사야 할 때다. 도매상보다 훨씬 가격이 싸니,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런 것들을 사다팔아야 이문이 남으니 말이다. 특별히 우유는 담배와 함께 가격이 민감한 품목이어서 많은 가게 주인들이 배달받는 것보다 도매상이나 대형식품점에서 사다 나른다. 배달오는 가격이 그런 데서 파는 것보다 훨씬 비싸니,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고객 서비스를 위해서 발품들을 판다.


도매상에서 사는 것은 그래도 면이 서지만, 가게 손님들과 종종 마주칠 수도 있는 대형식품점에서 우유등, 같은 품목을 여러개 살 때면, 뒤가 켕기는 게 사실이다. 월마트등에서는 종종 파격세일을 하니, 냉동 피자, 시리얼, 캔종류등 한가족이 먹기엔 너무 넘쳐보이는 물품들을 사나르다가 가게 고객과 눈이 마주칠땐, 잠시 숨고싶은 게 우리 가게 주인들이다. 


대량구매로 저가판매를 하는 대형식품점에 이미 실컷 얻어맞아, 기력을 회생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생존에서 밀리지 않으려, 다시 그곳으로 가서 저가의 물건들을 사들여 다시 판매하는 소형 편의점의 형편이 점점 딱해져간다. 


이제는 도매상이 따로 있지 않은 시절이 되어가고 있다. 오웬사운드 NG(National Grocery)도 일반인에게 문을 연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도매상에서 소매도 하는 형편이니, 싼데 찾아다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일 수밖에 없다. 자본과 인력에서 밀리는 소형업체들은 갈수록 입지가 적어지고 있다는 건 그리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사실, 편의점의 현실을 짚어보려는 건 아니었다. 깊은 지식이 없을뿐 아니라, "엉망진창인 유통구조"에 대한 어떤 복안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인편의점 업계를 총괄하는 협회가 있어서 뒷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부족한 듯하지만, 우리들이 살아나갈 길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가격으론 승부할 수가 없으니, 편리함, 위치, 친절함 등으로 손님들을 끌어야 한다.


가게에 있다보면 할머니들이 온다. 혼자 움직이기 힘들어보이시는 나이 많으신 분이 오면, 나는 쫓아다닌다. 그야말로 1리터짜리 우유 한병도 들 힘이 없어보이신다. 바닥에 깔아놓은 카펫의 끝이 약간 말려올라간 것에도 걸려 비척거린다. 그런 분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할머니에 대한 친절이라기보다는 내 가게에 대한 걱정 때문에(어떤 사고를 막으려는) 그런 것일수도 있다. 물건도 날라주고, 계산해서 봉투에 넣어 밖에까지 나가 할머니가 끌고다니는 "걷기 도움용 카트"에 넣어드린다. 그러고보니 요즘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군것질에 온 신경이 쏠려있는 니콜이라는 꼬마는 얼마나 "껄렁껄렁"하게 생겼는지, 볼때마다 기가막힌다. 니콜은 계산이 서툰데다가 세금을 곧잘 잊어서, 그애가 오면  오랜 시간 실랑이 하게 된다. 니콜은 일단은 가져온 돈을 다 써야 가게를 나간다. 가격이 적혀있어도 물어보는 것도 많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아이다. 돈과 물건을 알맞게 가져오는 적은 없다. 다시 빠꾸시키면 다른 물건을 오랜동안 골라서 가져오고.. 간신히 물건을 산 다음에 남은 돈 몇센트는 낱개껌으로 마무리하고 손을 털어야 가게를 나간다. 지난 할로윈 이후로는 가게에 뜸한 것을 보니, 할로윈때 캔디 수확을 많이 했나보다. 단것을 그렇게 많이 먹으니, 그 몸이 남아날까 걱정된다. 주로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유독 사탕 종류를 좋아하는 것같다. 이곳 사람들은 단것을 먹으면 "하이퍼"가 된다고들 말을 하는데, 그녀석은 그런 중독증세를 갖고있음에 틀림없다. 가게를 제집처럼 드나드니, 우리야 좋을지 모르지만, 이제 초등 2학년 학생이 갈길이 먼데, 단것에 눈이 팔려, 정신을 못차리고 있어서 안타깝다.


가게 주인이라는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훈계할 생각도 한번 하지 못한다. 훈계라고 해봤자, 그애가 들을 것 같지도 않지만, 이 나라 문화가 법에 어긋나지 않는한 남일에 참견한다는 것에 그리 관대하지 않으니.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 니콜과 한번 말문을 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이 갈수록 가게일이 그다지 "흥미"있는 일이 아니며, 보람찬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면 위축된다. 미련없이 때가 되면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가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일상영어를 배우고, 내 노동력으로 돈을 벌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니. 언젠가 큰딸은 초라한 어떤 가게에 "언제나 화가 난 것같은 모습으로 가게를 지키는 가게주인"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했다. 내 일터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고, 억지로 하는 듯한 인상을 손님들은 눈치챈다. 가게 환경을 쓸고닦아 반들거리게 해놓고, 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는데.


내가 가게에서 많이 쓰는 말중에  "You  too"가 있다. "Have a nice day" 하면서 손님이 떠날때 나는 "You too"한다.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많지 않다. 그 사람이 보여준 관심만큼, 그보다 조금 더 적게 관심을 표한다. 아주 인색한 아줌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상을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비싼 데도 찾아오는 손님들이니 아주 고맙다. 



나의 지난 날들을 반성한다. 가게의 이문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한 싼 물건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는데 소홀했고, 가게에 손님이 없다면서 그 시간을 드라마 보는데만 소비했던 것등도 말이다. 내 가게이니, 내 마음대로 할수는 있지만, 가게의 미래를 위한 보다 창조적인 노력은 단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도. 어떤 손님이든지, 내 가게에 오는 사람들은 귀빈으로 대접하고, 할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지난번 대화에서 어떤 분은 가게에 오는 손님들의 대소사를 파악해서 개인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셨다. 친분을 맺는 것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내게 도전이 되는 말이다. 사실 캐나다땅에 살면서, 마음을 터놓는 캐네디언 친구 한명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창피한" 일이다. 얼굴이 떠오르는 가게의 고객들은 그저 고객들일뿐인데, 그런 좋은 환경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부끄럽다.


반성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었는데, 글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일할 수 있고, 약간의 돈을 벌수 있고,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한국인의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가게라는 존재의 고마움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2015년에는 한번 열심히 가게 경영을 해보자. 싼 가격에 배달해주지 않는다고 공급자들을 불평만 하지 말고,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  얌전히 앉아서 배달오는 물건만 받아서 장사하는 것이 품위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장사"에 눈이 휘번덕여져야 한다. 그러고나서야, 할말을 찾을 수 있게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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